‘동요’는 말 그대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얼핏 보면 동요가 교육적이고 어린이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제게는 동요가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져 어린이에게 어린이다움을 강요하는 노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동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구분이 아니라 ‘동심을 누리는 것’에 있습니다. 

예전에 작은 교회를 담임할 때, 교회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예배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뜻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작은 교회만의 장점을 살려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온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몇몇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서동시 쓰기’였습니다. 성서 본문을 함께 읽고 묵상한 뒤, 예수께서 안아 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우리 안의 어린 마음 그대로를 담아 미사여구를 최대한 지양하여 시를 써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참으로 즐겁고 유익하고 은혜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시적 표현에 감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 됨에 있어서 어린이들의 영적 어드밴티지를 절감할 수 있었고, 순수함과 단순함에 복음의 비밀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제 모습에 얼마다 단단하고 겹겹인 외피가 있으며 온갖 가식의 굳은살이 배어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져 어린이에게 어린이다움을 강요하는 노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어린이 마음을 위한 노래’를 동요라 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린이들도 동요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물론 그 누구도 좋은 노래와 나쁜 노래를 분명하게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술이나 영화와 같은 비주얼 영역을 보면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 받는 명작이 있고, 유행적으로 그 시대의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들이 있고, 상업적인 디자인이나 만화가 있고, 외설적인 사진이나 영상이 있듯이 음악에도 분명 여러 가지 층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만들어 낸 동요’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음악을 두루 만나되 되도록 좋은 음악을 만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음악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 이전에 만남의 여정입니다. 교육의 본질은 그 내용이 아니라 좋은 만남을 주선하는 것입니다. 스승의 가르침 보다 스승의 인격과 태토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진정한 음악교육은 어른들이 좋은 음악을 충만하게 누리는 모습이면 충분합니다. 그 모습을 따라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음악 여행을 기쁨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모든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들립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어린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린이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교육의 시작입니다.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쳤던 한국 음악교육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철없는 시절에만 동요를 부를 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남자아이들은 힙합에, 여자아이들은 아이돌에 빠집니다. 음악과의 진지하고 진실한 만남으로 인도하지 않고 학교의 과목으로서 가르치기만 하는 동안 서양 클래식과 전통국악은 전공자들만을 위한 엘리트 음악이 되어버렸습니다.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이 불더니 가실 줄 모르고 있습니다. 결코 특정 음악 장르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조금씩 그 맛을 느껴가고 있으며 특히 임영웅 같은 가수는 ‘이 시대의 성악가’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저 또한 그의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 그 또한 오랜 무명 시절의 인생 경험과 이제 서른이 되어 인생의 연륜이 있기에 그 노래의 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트로트를 부르고 그 노래를 들으며 잘한다고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트로트는 원래 두박자로 된 미국 춤곡 ‘폭스 트로트’에서 나온 말입니다. 음악학에서는 두 박자를 본능적인 박으로, 세 박자 계통의 음악을 보다 진보된 것으로 여기는데 우리 민족은 아리랑이나 도라지 타령 등 귀족이 아닌 평민들이 부르는 민요에서조차 삼박자가 대부분일 정도로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품격 있는 민족입니다.    

말하기 조심스럽고 쉬이 인정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트로트는 사실 ‘전통가요’라기 보다는 아니라 일본의 엔카(演歌)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소위 ‘뽕짝’이라 했던 본능에 충실한 엔카의 두 박자 리듬은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지배 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민족 음악 혼을 잠식했고 지금까지 그 지배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가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희로애락을 해학과 절제로 승화시켜 표현했었는데 그 어떤 여백의 미나 문학적 예술적 여과장치 없이 인생과 사랑, 그리고 그 욕망과 애환을 본능적인 감각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분히 일본적인 표현법입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그 역시 이미 우리의 일부가 되었기에 칼로 무 자르듯이 할 수 없고 모든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기 마련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것이라 나쁘고 서양 것이라 좋다고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 같아 굳이 이렇게 긁어 부스럼을 내 봅니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좋은 음악들이 너무나 많은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트로트와 힙합과 아이돌 음악에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좋은 음악 소개하기도 아까운 시간을 오늘 만큼은 다소 민망하고 부담스런 이야기로 채워 보았습니다. 그래도 맺음은 희망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즐겁고, 다채롭고, 깊이 있고, 진실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 우리 모두의 음악 여정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