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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이용도 목사님의 생애 중 일화 -그의 일기집에서[펌 기사] 거지 아이 억성이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연민과 사랑 이야기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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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17일 (금) 00:00:00 [조회수 : 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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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펌 기사는 이용섭님이 검색하여 나도기자로 올려 준 것입니다. 아래는 출처 

[본문스크랩] 이용도 목사의 생애 /작성자 : 이덕휴목사 | 나의 관심정보 2006/11/17 12:24   lys979111 http://memolog.blog.naver.com/lys979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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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목사의 생애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을까? 어린 거지 아이 억성이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연민과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예배당은 너무 추워서 말을 하기가 힘들다. 意氣 저상하여 설교도 힘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조그만 거지아이. 뚜껑 없는 주전자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손과 발은 홍도같이 빨갛게 얼었다. 바람은 눈 위에 칼같이 사나운데, 저런, 인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하나님의 保佑之澤이었는가. 아 죄악의 세상이라. 자기만 살려고 눈에 불이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乞兒를 본 척이나 하고 지나가랴. 마음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여관으로 대리고 와서 두루마기를 벗어 둘러 주고 아랫목으로 인도하여 이불로 둘러 줄 때 나의 마음 너무 민망하여 슬픔을 이길 길이 없었다.

오 주여 이 아이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너 조반 먹었니? 못 얻어먹었시오. 때는 열한시 반이다. 뜻뜻이 먹어도 떨리어 견딜 수 없는데 아, 어이 생명이 살아 남았노? 엊저녁은 어디서 잤니? 家街에서 잤어요 그래 무엇을 덮고 잤니? 아무 것도 안 덮고 잤어요. 어제 저녁같이 추운 밤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밖에서 잤다. 밤에 물그릇이 땡땡 언 어제 저녁에 아, 나는 너무도 호강스러웠다. 北風寒雪 추운 밤에 거리에서 울며 떨고 있는 아이를 생각지 않고 나만 혼자 이불을 두 개씩, 포대기 깔고 편안히 자고 있었구나.

오 나에게 禍가 있으리로다. 너 혼자 잤니? 네. 아 혼자서 어떻게 밤을 샜노. 엊저녁에 밥은 얻어먹었니? 네. 무슨 밥? 찬밥이오. 그래 찬밥을 주드냐? 네. 아이의 눈에는 원망과 고독이 아직도 끝이지 않았다. 나의 눈에도 참회의 눈물이 그칠줄을 모르노라. 몇 살이냐 여덟 살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쌈하고 양잿물 먹고 죽고 아버지는 미쳐서 달아났어요... 아,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기한에 우는 乞兒. 네게는 죄가 없다. 네게 무슨 죄가 있으리. 눈물이 앞을 가리워 日記를 쓸 수 없어 수건을 눈에 대고 그냥 한참 울었다... 오 하나님이시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이 가련한 乞兒를. 네 이름이 무어냐? 億成이에요. 성은 崔가요. 오 崔億成이로구나... 너 예배당 아니? 알아요 예수 믿는 사람 너의 동리에 있니? 많아요 여기도 예수 믿는 사람 많아요 오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도처에 많거니와 너를 긍휼히 여길 신자는 없었구나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다만 自己의 욕심만 위하여 믿는 체 하는 現代 교인아. 너에게 禍가 있을진저. 여관 主人이 문을 연다. 이는 주인집 아이가 나의 乞兒 데리고 들오옴을 보고 들어가서 告하였기 때문이었다.

떡국 한 그릇 시켜오라고 하고 나는 조금 未安을 느꼈다... 여관에 부탁하여 물을 끓여다가 乞兒의 얼굴과 手足을 씻기고 얼어터진 발가락을 헝겊으로 처맨 것을 끌르고 씻고 빅쓰를 발러 줄세 나의 憐恤이 극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씻어주고 싸맨 후 나의 內衣와 저고리 입었든 것을 입혀주고 양말을 신기고 버선을 덧 신겨 줄 세, 아, 이는 乞兒가 아니요 我子요 愛兒인 感이 興起하였도다.

그러나 저에게 맞는 것으로 입혀주지 못하고 나의 입었든 헌 것, 큰 것을 억지로 입히매 主님을 이리도 소홀히 대접한다는 感이 끓어올라 적이 민망하다. 주인 마누라 드려다 보더니 버선이 어찌 큰지 長靴 신은 것 같구나 하고 웃고 가는지라. 저녁밥을 같이 먹고 밤에 같이 자다... 나의 옆에서 자는 더벅머리를 보니 이는 꼭 羊과 같었다.

이는 나의 羊이 었든가? 아, 귀엽고 可愛로운 어린 羊아 기한에 울며 거리에서 방황하던 孤羊을 찾었노라. 오 주여 나는 목자 노릇하기 어렵사옵니다. 내가 이 어린것을 어이 하오리까 주여 나를 도우사 이 어린것을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얼굴이 미소가 나타나고 그의 입은 平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기쁨이 가득하였도다. 저의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고 저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었다. 오 네가 울어 내가 울었고 네가 웃어 내가 웃었으니 이 어인 인연인고. 이것이 과연 목자와 양의 인연이었는가?..."

거지 아이를 씻기우고 상처를 매만져주고 먹여서 재워 놓고도 가슴이 아파서 우는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그 중에 그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산정현 집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겨울 산정현 집회 때에 회당에서 밤을 세워 기도할 때, 내 맥박은 끝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숨이 곧 끊어질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안수기도를 원하는 이가 한 분 왔습니다. 나는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으니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그 머리 위에 손만 얹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내 심중에 일어나는 감격은 컸습니다. 내 숨이 끊어지려는 순간에 남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격했습니다. 내가 숨이 지더라도 그 부인은 축복을 받을지니 나는 죽어도 내 대신 주님께서 그를 축복하실 것이 믿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기도는 축복의 기도가 아니라 '나는 남을 도울 힘이 없사오니 주 친히 축복하옵소서.'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힘이 나고 말문이 터져서 둘이 다 충분히 감격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이용도 목사. "예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하게"되었다고 고백하는 이용도 목사의 산정현 집회에서 보여준 사랑은 예수의 사랑의 신비 속에 하나가 되어 보여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은 자연을 포함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고독해 보이는 까마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고,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모든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만물과도 화합하고 서로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속에서 자란 이용도 목사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안을 줄 아는 모성적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려서 그를 폭은하게 감싸주고 안아 주고 업어주던 어머니의 모습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유한 물이 강한 돌을 굴려간다. 유한 골짜기 물이 단단한 굳은 반석을 쪼개고 깨쳐 모래를 만든다. 강한 것(石)의 힘보다 유한 것(水)의 조화가 실로 묘하도다. 유는 우주의 본성이었나니 유가 강을 주관하였나니라. 우주 만유의 본성은 小요 弱이요 柔이었나이다."

이용도 목사는 여성성인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의 본성인 부드러움이 강함을 주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도덕경의 上善若水를 생각하게 합니다. 노자는 최고의 선덕은 물과 같은 것이어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남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 또한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 데 처해 있어야 되고, 비천은 늘 그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용도 목사의 삶은 포용적이고, 여성적이며, 그의 내면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생명력이 있었으며, 優位보다는 無位에 높아짐보다는 낮아짐에 처해 있었습니다.

일제하의 가난과 질고 속에서 몸부림치던 힘없는 민중들의 상처받은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들을 줄 알던 사람, 그들의 아픔에 통곡할 줄 알던 사람, 민족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을 눈물의 설교를 통해 뭇 영혼들을 생명수로 촉촉이 적셔주던 사람, 배가 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고 웃으면서 가야금을 뜯을 줄 알던 사람, 무언, 겸비, 기도,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던 사람,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하게 돌진하던 사람, 쫓기고 버림받은 사람을 조건 없이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 오직 예수를 그리워하고 예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무교회 서적도, 사회주의 서적도, 불경 서적도 읽기를 권했던 한없이 열린 영성을 갖고 있던 사람.

이용도 목사는 삶 속에서 철저히 죽어, 죽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 몸,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 솟아오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하나가되는 삶,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깨어져 無가 되고 空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자신을 온전히 비워 영원히 넘쳐흐르는 생명의 물결 위에 자신을 실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용도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나는 나의 일에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그냥 생명강수 넘쳐흐르는 대로 떠나려 갈 모양! 그러다가 어디 걸리면 머무르고 또 쓸려 가면 가다가 깨어지면 깨어지고!"

-이용도목사에 대한 자료 - 네이버 지식검색에서(당당뉴스 운영자)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에 나타난 성서이해
-이용도 목사를 중심으로-

박종수
강남대학교 신학부 구약학 교수

1. 서언

이용도 목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성서관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와 같은 주제로 논문이 발표된 적은 거의 없다. 그것은 우선 그의 성서관을 살펴볼 수 있는 설교문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변종호가 편집한 <이용도의 저술집> 후반부에 이용도의 설교문을 게재하긴 했으나, 그것은 편집자의 기억에 의한 요약문에 불과하다. 이용도는 일기를 비롯한 서간집, 그리고 자신이 창작한 연극대본과 장년주일학교 공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들 저작물 안에서조차 그의 성서관을 엿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언급한 성서구절은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보여주기보다는 대부분 증거본문으로 문말미의 괄호 안에 간략하게 제시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이용도의 성서관에 대한 글이 전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연구는 이용도를 "한국적 예수중심의 신비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용도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대두되면서 그를 여러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용도의 신앙과 사상은 그의 성서이해에서 출발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성서관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이용도 신앙의 대체적인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이용도의 성서관을 살펴보기 위해 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신구약 성서에서 그가 자주 인용한 성서구절은 어떤 것들인가를 살피고자 한다. 그가 즐겨 읽었던 성서구절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 이용도 신앙의 성서적 토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일기나 서간문, 그리고 그의 저작물 안에서 성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부분을 분석함으로써 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이 비록 제한적이며 간접적으로 시행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밝혀진 이용도의 성서관이 그의 삶과 신앙생활을 지배했던 원동력으로 자리잡았음을 밝혀준다면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될 것이다.

2. 이용도의 성서이해
이용도는 그의 일기에 수많은 성서구절을 인용했다. 그 가운데 어떤 구절들은 설교를 위한 성서본문으로 사용된 것들이며, 어떤 것들은 하루 생활을 정리하면서 명상한 것들이다. 어떤 것들은 성서 안에 나타난 주제들(예를 들면, 믿음이나 기도 등)과 관련된 성서구절들을 나열한 것도 있다. 설교를 위한 성서본문이나 명상을 위한 성서구절들은 이용도의 성서관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주제와 관련된 성서구절이 한꺼번에 나열된 부분은 이용도 자신의 견해라기보다는 단순한 성서인용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필자가 택한 성서구절은 이용도의 성서관을 비교적 잘 드러낼 수 있는 구절에 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택한 성서구절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일기만 해도 그렇다. 1928년도 분의 일기는 6.25동란때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1933년도의 일기에는 성서구절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가 언급한 성서구절들은 대부분 일기에서 나타난다. 이용도가 쓴 서간문과 저술 및 설교요약문에도 약간의 성서구절이 발견된다.
필자는 간접적이나마 이용도의 성서관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구절들을 모두 113회의 범주에서 분석하였다. 그 가운데 구약성서의 본문은 모두 23회, 신약성서의 본문은 모두 90회를 차지했다. 다른 목회자와 기독교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용도의 신앙 역시 신약성서에 주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즐겨 택한 성서 각 권은 다음과 같다.


이용도가 제한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서는 창세기, 출애굽기, 시편, 아가서에 집중된다. 그는 창세기 3-5장을 즐겨 읽은 것 같다. 창 3장에 소개되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영에서 육으로, 믿음에서 의심으로, 感에서 知로의 타락을 의미한다"는 용도의 신앙은 생명신앙을 대변한다. "지식으로 다른 것은 얻되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그의 주장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 인류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일기, 1930. 1. 27). 창 4장의 아벨이야기는 이용도의 십자가 신학을 보여준다.

나는 다만 주의 뜻을 품고 그냥 죽임을 당하려나이다. 주의 뜻을 품고 죽임을 당하면 그 피는 곧 의로운 피이지요. 아벨의 피같이 땅에서 불의를 향하여 영원히 호소하는 피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러므로 가만히 주의 뜻을 품고 호소하는 피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러므로 가만히 주의 뜻을 품고 그냥 순종하려 하나이다(일기, 1929. 12. 18).

자신을 아벨과 동일시하면서 "아벨의 피처럼 불의에 항거하는 피가 되겠다"는 용도의 결단은 성서의 메시지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신탁으로 받아드렸음이 분명하다. 예언자 아모스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받아드렸던 이용도는 예수와 바울의 고난 역시 하나님의 종이 겪어야 할 당연한 핍박으로 여겼다(이용도 목사 저술집, 13). 아벨이 아무 반항을 하지 않고 가인에 의해 살해되었듯이, 자신 역시 그와 같은 운명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용도는 창세기 3, 4, 5장을 읽고 불만족함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신앙과 문학적 재능이 있는 성도가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번역할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랬다"고 말함으로써 당시 성서번역의 문제점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성서번역 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큰 진전이 없는 것 같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영문학도이자 신학도였던 이용도는 성서 번역이 종교적 영성을 발현하는 데 일조하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했다(일기, 1930. 3. 26).
출애굽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29년 1월에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1929년 1월 4일부터 12일 어간에 걸쳐 이용도는 출애굽기 본문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출애굽기가 인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용도로 하여금 1929년의 새해벽두에 출애굽기를 거의 매일 같이 묵상하게 한 동기는 무엇인가? 1928년 연말과 1929년 연초에 이용도는 두 번의 큰 영적인 체험을 한다. 1928년 12월 24일 새벽 3시쯤에 이용도는 성전에서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진귀한 영적 전쟁을 경험한다. "크고 까만 몸뚱이에 수족에는 삼지창 같이 검고 날카로운 손톱 발톱이 있고 그 눈방울은 사발같이 큰 것이 둥글거리고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은 것이 앙상히 드러나고 머리에 큰 뿔이 둘 있는" 마귀가 용도의 기도를 방해하며 집어삼킬 듯이 덤볐다. 용도가 필사적으로 마귀를 몰아내자, 마귀는 성전에서 물러나 어떤 권사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용도는 마귀를 권사 집에서 몰아내고 남은 마귀까지 통천 시가에서 몰아내는 영적인 싸움을 새벽 내내 전개하였다. 변종호는 이 때 이후 이용도가 "하늘의 권능과 용기를 얻어 기도와 설교와 신앙 생활에 더욱 더 굳센 힘과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회고한다(이용도 목사전, 38-39).
이용도에게 두 번째 큰 경험이 1929년 1월 4일 새벽에 발생한다. 창세기 17장을 읽은 다음 용도는 자신에게로부터 "죄가 떠나감"을 느끼고 "주의 손목을 붙잡자 큰 불이 내림"을 체험한다(일기, 1929. 1. 4). 아브라함이 구십구세에 야웨께서 그에게 나타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1-2)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사함을 받고 온전해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주신다(창 17:5). 이처럼 모든 사람이 안고 있는 죄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진리) 앞에서만 조명되고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죄사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대인의 사고는 이사야 6장에도 드러난다.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을 보고 이렇게 외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아브라함이 온전해진 다음 열국의 아비가 되고, 이사야가 죄사함을 받고 예언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용도 또한 "성화(聖火)로서 죄인을 소살(燒殺)하는 성몽(聖夢)을 꾸었다"고 적고있다(일기, 1929. 1. 4).
이용도가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을 경험한 후에 성화로 자신의 죄가 소멸된 것을 체험한 것은 이후 전개될 그의 예언자적 행보에 큰 암시를 준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적인 권위를 무기로 그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의 도(道)를 전하다가 죽기로 결단한 것이다. 1929년 1월 5일, 6일, 8일, 9일 네 차례에 걸쳐 그의 일기는 출애굽기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영적 체험은 출애굽기의 메시지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선 192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에 겪은 체험에서 그가 본 마귀(사탄)는 애굽의 권세가 아닐까? 물론 그의 일기에 의하면 용도가 본 사탄은 통천시내의 교회를 위협하는 악한 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에서 용도가 대적한 사탄은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애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했다"는 출 1:12에 대해 이용도는 다음과 같이 주해한다: "아멘-주의 백성은 괴롭게 할수록 더욱 더 퍼지고 번성하여 봄들(春野)에 붙는 불을 막대기로 때림과 같으니 칠수록 불똥은 이리저리 튀어 불의 기세는 더욱 더 강성하여짐과 같도다"(일기, 1929. 1. 5). 이용도에게는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애굽이 당시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었던 일제의 무리로 여겨졌을 것이다.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이 명한 대로 하지 아니하고 남자를 살린 것은(출 1:17), 일제의 압제 밑에서 기독교인이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 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일기, 1929. 1. 6). 이용도가 1928년에 남긴 크리스마스 성극 <애굽의 이스라엘>에서도 그의 민족애가 잘 드러나 있다. 미리암의 친구가 하는 말-"(애굽인들이) 그리고는 글쎄 (이스라엘의) 젊은 사람을 다섯 명이나 수갑을 채워 가지고 막 끌고 가더래"- 속에서 우리는 이용도의 민족애가 그의 성서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출애굽 시대에 수갑이 있었을까? 일제의 순사가 수갑을 채워 독립투사들을 끌고 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대목은 이용도가 성극을 통해 출애굽기의 내용을 주체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여겨진다(이용도 목사 저술집, 60).
이용도가 번역편집한 장년주일 공과에도 그의 주관적 사상이 드러난다. <용감한 지도자 모세>에서 이용도는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해방운동의 선구자로 소개한다. 용도에게는 모세가 자기 동족을 치는 애굽사람을 때려죽인 사건이 폭력에 의한 민족해방운동으로 비추어졌다. 모세의 "용기는 매우 장쾌하나 이는 대사(大事)를 치를 수 없는 혈기의 용맹이다. 그 결과로 모든 계획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자기의 동포라도 자기를 따르지 않고 도리어 반항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로 부른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경거망동하는 혈기를 죽이고 영적 능력을 주시어 당신의 의(義)의 병기가 되게 하신 것이다"(이용도 목사 저술집, 97). 이처럼 이용도는 모세의 경우를 자신의 경험과 동일시하면서 국권회복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이용도는 1924년 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5년 동안을 만세운동을 하다가 네 번이나 투옥되었고 3년 이상의 시일을 감옥에서 살았다. 감옥에서 나온 용도에게 신학교 입학이 권유되었고, 그 때부터 그는 비폭력 신앙운동으로 전환하게 된다(이용도 목사전, 23-33). 모세의 삶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민족의 독립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용도의 성서관은 분명히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삶과 유리되지 않는 성서이해는 이용도의 신앙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주었다. 혈기가 왕성한 이용도의 독립운동이 예수의 십자가 운동으로 변함으로써 무저항 비폭력주의를 실현함과 동시에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는 신앙인의 길을 간 것이다. 여기에 민족의 희망이 있다고 용도는 확신했다.
그는 또한 <용감한 지도자 모세>에서 "히브리 족속들은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게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한국의 "하늘"을 "하나님"과 동일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토착화적 성서해석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한 모세가 주전 1578년에 출생하여 1459년에 사망했다고 함으로써 모세가 역사적인 현존인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는 흔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가 장년공과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떤 서적을 참고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며, 성서인물의 생존기간을 산출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용도 역시 20세기 말부터 활발해진 역사비평적 성서연구 방법론에 익숙해져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이용도 목사 저술집, 94). 구약성서에서 이용도가 즐겨 찾은 성서구절은 당연히 아가서이다. 아가서의 성서구절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횟수는 별로 많지 않지만, 그의 작품 곳곳에 아가서의 문학적 어투가 스며있다. 구약의 아가서와 신약의 복음서(특별히 요한복음)가 이용도 신학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아가서에 대한 그의 성서이해는 별도로 취급하기로 하자. 이용도가 언급한 그 밖의 구약성서 구절들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약성서에 대한 이용도의 애정은 구약성서보다 앞선다. 90회에 걸친 신약성서에 대한 언급가운데 48번이 복음서에 나타난다. 신약성서 중에 거의 50%에 가깝게 복음서를 애독했다는 것은 그가 예수의 어록에 남달리 집착했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십자가를 온몸에 지고 고난의 길을 걷고자 했던 이용도에게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용도가 남긴 글에서 마가복음을 언급한 사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가 각 복음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 누가, 요한복음에 대한 인용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마가복음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마태와 누구복음이 마가복음의 내용을 거의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누구복음을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사회복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난한 자와 병든자, 고아와 과부, 그리고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여인들에 대한 배려가 잘 나타나 있는 누가복음은 이용도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성애적(聖愛的) "무한포용"(無限包容)의 사랑 또한 이용도 신학의 중요한배경이 되고 있다(유동식, 575). 이미 다섯 번이나 결혼했던 여인이 예수를 만나 생수를 얻고 변화되었듯이(요 4:1-26), 우리 또한 "예수의 생수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 이용도 설교의 핵심이었다(이용도 목사 저술집, 238).
복음서 읽기를 즐겨했던 이용도에게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복음서에 어린이들을 위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설화가 없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신 설화가 많았었지만 그 때에 복음을 기록한 제자들은 아동 존중감이 극히 적었던 까닭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어린이에게 대한 설화도 중히 여기지 않아 기록치 않았으니 크게 유감이다. 그 복음기자들은 적어도 오늘 우리만큼 아동교양의 문제를 중시하였으면 아이들 상대의 설화가 많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1)그럼 자, 그 외의 설화로 교재를 삼는 것이 어떨까? 옳다. 거기에는 다소 폐해는 있겠지만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2)성경만으로 우리의 교재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면 우리의 역사, 선교사 기타의 과학을 넣을 수 있겠는가? 옳다고 생각한다(일기, 1929. 1. 13).

"예수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많은 이야기를 전했지만 복음서의 기록자들이 그것들을 전하지 않았다"는 이용도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예수의 말씀 가운데 어느 것이 제자들에 의해 취사선택됐는가를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 문제가 있지만, 아동들을 위한 기독교교육에 그가 대단한 관심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성서 외에도 필요하다면 제한적으로 다른 설화로 교재를 삼아도 좋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의 성서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경만으로는 아동을 위한 교육이 충분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어른과 아이들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성서교육관이다. 성서가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드러낼 수는 없다. 성서기록자와 독자 사이에는 수천년이라는 시대적 간격과 지리적, 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의 성서연구 방법론은 토착화신학의 단초를 보여준다. 성서유일주의를 경계하면서 보완적으로 우리의 설화와 역사를 기독교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용도의 주장은 앞으로 한국기독교가 견지해야 할 중요한 견해라 여겨진다. 다만 주의할 것은 성서 밖의 자료들이 예수의 진리를 드러내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성서에 대한 그의 열린 사고는 현대 기독교인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인류 문화가 이룩한 보편적 진리와 성서의 진리가 서로 보완적으로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이 땅에서 꽃피기를 기대하는 그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단서이다(박종수, 1995: 20-21).
이용도의 창작 성극(聖劇)은 그의 개방적 성서관을 잘 보여준다. 1927년에 창작한 <춘풍>은 이용도의 문학적 재능과 함께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춘풍은 반드시 불어오고 조국은 그 춘풍에 녹아들어 수난의 때를 벗어난다는 성극 <춘풍>은 이렇게 시작한다:

차디찬 엄동에 설한 풍아
잔인한 네 손을 걷어쳐라
따뜻한 양춘이 재를 넘는다
따뜻한 양춘이 재를 넘는다
깨여라 범나비 종달새야
적막한 강산에 애달픈 꿈
춘풍은 일어나 꽃향기 날리고
숨죽은 강산을 불러 깬다
(아이생활 1927년 4월호)(이용도 목사 저술집, 41).

용도의 성서관은 그의 문학적 재능을 통해 감미롭게 표출되었다. 그의 성극 <애굽의 이스라엘>에 소개되는 비가(悲歌)는 당시 한국인이 느끼는 공동체의 비애를 담고 있는 우리식 성서관을 보여준다:

슬프도다 이스라엘아
어이 우리 여기 왔던고
우리의 이 근심 언제 다하나
가나안 내 나라 내 나라 조상의 뼈가 묻힌 그 나라 언제나 갈지
언제나 갈지 가나안 내 나라 언제나 갈지(이용도 목사 저술집, 61).

가나안을 "조상이 묻힌 땅"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해야할 당위성을 증거한다. 하지만 성서의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용도가 말하는 "조상의 뼈가 묻힌 그 나라"는 다분히 한반도를 암시한다. 모세의 어머니가 아기 모세에게, "어쩌면 이런 때에 태어났더란 말이야?"하면서 통곡하는 장면은 저 머나먼 이스라엘 시대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용도가 살고 있는 작금의 핍박을 뼈아프게 전하고 있다. 모세의 어머니가 아기 모세를 앞에 두고 부르는 노래에서 이용도가 얼마나 민족의 장래를 걱정했는지 엿볼 수 있다.

슬프도다 이스라엘아
어이 우리 여기왔던고
우리의 이 눈물 언제 마르며
우리의 이 근심 언제나 하나
잘만 자라라 우리 장수야
죽고 삶이 네게 달렸다
어서 자라라 우리 장수야.
우리의 죽고 삶이 네게 달렸다
(아이생활 1928년 11월호)(이용도 목사 저술집, 66-67).

장래를 기대할 수 없는 기성세대를 뒤로하고 미래를 짊어질 신세대에게 민족의 희망을 거는 모세 어미의 마음이 바로 이용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용도의 성서관은 성서의 한계를 이미 초월하고 있다.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성서가 미처 말하고 있지 않은 부분을 과감하면서도 감미롭게 더하고 있다. 모세 어머니의 하소연은 성서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용도는 그녀의 입을 빌어 자신과 민족의 간절한 소원을 표출한다. 이것은 분명히 이용도의 과감한 성서해석이다. 현실의 삶 속에서 체험된 신앙을 성서해석에 반영하는 그의 재능은 성서의 세계를 한층 더 풍요롭게 한다. 이러한 성서이해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롬 1:17을 인용하면서 이용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바 하나님을 믿음은 다른 모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또한 나를 믿게 되나니 내가 나를 믿지 않고 어찌 살 수가 있겠는가!(일기, 1927년 2. 1).

이용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만이 아닌 믿음에 대한 확신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성서해석 또한 자신의 삶과 민족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3. 아가서 이해에 나타난 이용도 신앙
이용도의 아가서 이해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아가서가 그동안 기독교전통 안에서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가를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역시 아가서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했다기보다는 전통적인 성서이해를 자신이 처한 환경과 신앙적 체험을 통해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느날도 그 날보다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 날은 아가서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날이라; 모든 성문서는 거룩하나 아가서야 말로 거룩한 것 중의 거룩한 것이라"(미쉬나 야딤). 이렇게 소리지르면서 랍비 아키바는 아가서가 성문집에 포함된 것을 정당화하고 극찬했다(Exum, 41). 이것은 다분히 그가 아가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적인(性的)인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를 이처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서해석은 서로 만난다. 유대 공동체에게 아가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사랑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기독교 공동체 역시 아가서를 그리스도와(혹은 하나님) 교회 혹은 신자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유비적(allegorical) 해석은 두 공동체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고 전승되어 왔다(Murphy, 150-155).
머피(R. E. Murphy) 역시 아가서를 단순히 인간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아가서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한다. 그 이유로 그는 성서본문이 원래의 청중에게 선포되었던 종교적 상황과 그 의미가 후대의 독자에게 전달된 내용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사실 야웨와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종종 남녀간의 성적(性的)인 사랑의 관계로 묘사되었으며(사 1:21; 렘 3:1; 겔 16, 23), 예언자 호세아는 고멜에 대한 사랑을 통해 보다 분명한 상징행위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사랑의 관계를 동시대인에게 보여주었다(호 1-2). 머피는 이에 더하여 사랑에 관한 성서의 보도는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사랑을 더욱 자주 밝혀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가서의 유비적 이해를 옹호한다(Murphy, 153-154).
이러한 전통적인 아가서이해와 견해를 달리하는 그 밖의 의견도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파크(Marcia Falk)는 그동안 제기된 아가서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상기한 1)"알레고리적 해석"에 이어 제기된 견해는 아가서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그리고 두 시골처녀를 등장 인물로 하는 2)일종의 "드라마"라는 것이다(Falk, 101). 세번째 견해는 아가서를 고대 시리아의 결혼식노래와 유사한 3)"결혼축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웹스터는 아가서가 결혼식 상황에서 유래한 시모음집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아가서의 모든 노래들이 반드시 결혼이나 부부간의 사랑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중적인 사랑노래나 제의적인(cultic) 사랑노래라고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는 그 안에 담긴 은유적 표현이 전통적인 유비적 해석과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Webster, 87). 네번째 주장은 아가서가 고대 근동의 풍요제의(fertility cult)에서 유래한 일종의 4)"예배서"(liturgy)라는 것이다. 믹(T. J. Meek)은 아가서에 대한 그의 예배학적 접근에서 아가서는 고대근동에 만연된 태양신과 모후신(mother goddess)과의 결혼을 축하하는 신년축제에서 유래한 잔재라고 주장하면서 아가서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Meek, 94, 107, 111). 이에 더하여 차일즈는 아가서를 지혜문학의 산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5)"인간의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a celebration of human love)라고 말한다. "죽음 만큼이나 강한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지혜전승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Childs, 575).
이용도는 아가서의 유비적 해석을 초월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신자라는 관계를 넘어 자신을 아가서의 여인 주인공과 일치시켰다. 그는 철저하게 예수와 한 몸되는 신비한 성애적 사랑을 체험하였다. 1931년 8월 4일 밤 이용도는 이사야 53장과 함께 아가서 1:1-5을 강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밝혀진 바 없다(일기, 1931. 8. 4). 그러나 그 해 1월 27일자 일기는 이용도 목사의 아가서 이해와 그의 예수 신비주의 사상이 한데 어우러져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신앙에 주를 결실치 않고, 그냥 앙시할 때 주는 우리에게 끌리는 것이었나이다.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아 6:5), 너는 나의 마음을 빼앗음이여 네 눈으로 한번보고 네 목에 더러운 사슬 한 꾸러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도다(아 4:9)." 이렇게 주님은 나에게 끌리시고, 나는 주님에게 끌리어,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一化).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 바 되어, 결국 나는 주의 사랑 안에 있고 주는 나의 신앙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아- 오묘하도소이다. 합일의 원리여! 오-나의 눈아, 주를 바라보자.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자(일기, 1931. 1. 27).

여기서 이용도는 전통적인 아가서 이해를 따르고 있다. 남녀간의 지극한 사랑의 서정시에 자신이 등장인물이 되어 주님의 동반자가 된다. 아가서 4:9에서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듯이, 영적으로 여자된 용도는 주님의 마음을 송두리채 뺏고자 한다. 그 사랑은 이내 합일이 되어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은 일체로서의 사랑, 즉 신비적인 사랑의 체험이 실현된다. 이용도는 그러나 아가서에 대한 전통적인 유비적 해석에 머무르지 않는다. 단순히 아가서를 주님과 그의 백성간의 사랑이라는 차원을 뛰어 넘어 아가서의 남녀 관계를 자신의 영적체험으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이해는 현실과 영적세계가 구별되지 않는 신비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래서 용도는 머리로 사랑하는 주님이 아니라 직접 만져보는 감각적 사랑을 희구한다. 그는 이미 아가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유비적 해석의 범주를 뛰어 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예언자가 신탁(神託)을 받기 전에 환상을 보면서 입신(入神)의 경지(황홀경)에 빠지는 모습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일기, 1929. 12. 3). 용도는 아가서를 대할 때마다 자신이 예수와 합일을 이루는 체험 속에 빠져들었다고 할 정도로 아가서에 심취해 있었다. 이용도는 자신의 일기에서 예수 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있다:

오- 주여 당신 품에 꼭 안아주시옵소서. 나는 거기서 안심하겠나이다. 세상고통에 쪼들린 몸을 편히 쉬겠나이다. ... 나는 젖먹는 아이(렘 1:5), 이제 겨우 앉고 또 겨우 기는 아이라. 두발로 달음질쳐 주님 앞으로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 이에 주님은 당신의 품에 꼭 껴안으시고 나는 그 품에 안기었나이다(일기, 1931. 1. 24).

비록 아가서에 대한 직접적인 글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 지라도, 이용도 목사의 일기나 편지에서 아가서적 표현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것들이 아가서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이해를 밝히는 데 어느 정도 공헌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가운데서도 주님에 대한 성애적(性愛的) 표현들은 분명히 그의 신비주의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결국 우리는 이용도의 아가서 이해와 그의 신비주의 사상은 함께 다루어 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용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1920-30년대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민족이 극도로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이다. 3·1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일제는 문화정치를 통해 문화말살과 함께 우리의 민족정신을 철저히 파괴하는 시대였다. 차성환은 이 때의 민족감정을 "패배주의적이고도 도피적인 정서"의 만연이라고 표현한다(차성환, 102). 변종호는 1930년대를 일제의 멸魂정책, 멸祖정책, 멸神정책, 멸生정책, 멸種정책, 청장년 징용 직살, 처녀정신대 공출, 학도병 징집시대로 요약하고 있다(이용도 목사 연구 반세기, 179-183).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하나는 사회복음화 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되는 신비주의 운동이다. 차성환은 이용도는 사회를 변혁시키고 개혁시키는 쪽 보다는, 제도화된 기성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는 신비주의적 운동의 경향을 띤다고 분석한다(차성환, 104-105). 박봉배는 당시에 교회가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기술한다:

일본이 만주사변에서 支那事變으로 옮겨가면서 그 기승을 부리던 시대,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상당한 탄압이 가열되던 시대,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상당히 침체상태에 빠졌다. ...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탈출구가 완전히 봉쇄되고 만 상태에서 기독교는 자연히 타계적 신비주의에로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박봉배, 125-126).

하지만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1899년에 인게(W. R. Inge)가 신비주의에 대한 정의를 25개나 나열했던 점을 볼 때 신비주의를 규명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Dupr , 245). 어떤 면에서 보면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희구하고 그리스도 역시 신자(信者)와 하나됨을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다(요한 14:20). 따라서 신비주의자로 구분된 자는 신앙의 질적인 차이에서보다는 하나님(혹은 그리스도)을 개인적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의 정도에 따라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용도는 그 정도가 일반 기독교인에 비해 지나치리 만큼 강했다는 점을 볼 때 그를 신비주의자로 부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뒤쁘레(Louis Dupr )는 신비주의의 특징을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한다: 1)신비주의는 일반적으로 신비적 체험(mystical experiences)에 대해 기술하며; 2)종교적 체험의 직접적인 인식(noetic quality)을 강조하며; 3)신비적 경험이 수동적으로 표현되며; 4)초월성(transiency)과; 5)신과의 일체성(integration)을 강조한다(Dupr , 246). 기독교를 포함한 일반적인 신비주의를 위에 언급한 다섯 가지로 분류한 뒤쁘레의 견해가 어느 정도 타당하다면 신비주의는 공동체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개인적 차원을 강조하며, 이 세상적인 것보다는 저 세상(혹은 초월적 세계)을 희구하며, 전통 위에 서 있는 제도권의 종교이념과는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특별히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신앙체험을 중시하는 경향은 때론 수도원주의를 낳기도 한다. 이는 신앙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는 제도권 종교와 마찰을 일으킬 요소가 다분하다.
성서에서 이러한 신비주의 요소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신약문헌은 요한복음서이며, 구약에는 전통적으로 아가서가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믿어져 왔다. 뒤쁘레는 요한복음 안에 있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두 요소를 지적한다: 1)요한복음은 기독교인을 확실한 체험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장 잘 드러내며; 2)하나님과의 밀착(intimacy)을 우주적 사랑관계로 표현하고 있다(Dupr , 251). 오리겐은 아가서를 신비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인물로 기억되며,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에 이어 어거스틴, 클레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모두 아가서를 하나님(혹은 그리스도)과의 에로스적 사랑관계로 묘사한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Dupr , 252-255). 이용도 목사의 서간집에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입술에 입맞추는 순간을 노래하는 버나드의 노래가 발견된다:

그대는 念念之思하여 주님의 사랑을 찾고 찾으라. 그리하여 저 깊은 사랑의 내전에까지 찾아 들어가자. 그곳은 사랑의 지성소니라. 거기에서 그대는 주의 정체를 포옹하라"(서간집, 158).

이용도 목사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여류 신비주의자인 메히틸트(Mechthild von Magdeburg, c.a.1210-c.a.1285) 등의 독일신비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변선환 박사는 그의 신비주의를 "아가서적 요한적 신비주의"라고 부른다(변선환, 154). 변선환은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신과 인간사이의 본질적 합일로 보지 않고 인격의 신비적 합일로 보았다(변선환, 166).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합일은 그의 일기에도 나타나 있다:

주님의 형상이 되어 본다는 것은 念도 못낼일이라고, 해도 그저 이 꽃과 같이 말없이 피었다가 말없이 질 수 있었으면! 화초상의 점두에 가서 여기 저기 팔리워 다니는 그런 꽃이 아니고, 뜰안 한 모퉁이에 말없이 피었다가, 또한 그곳에서 고요히 지는 작은 장미꽃과 같이, 나도 고요히 그를 사랑하고 말없이 그를 위해 죽고 싶어라. 예수를 유일 최대의 애인으로 삼고, 언제든지 그 만을 사랑하다가 그를 위해 이 생명을 바치고 싶어요(일기, 1931. 12. 7일).

여기서 그의 수동적 신비주의가 드러난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고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그야말로 희생적인 사랑이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박봉배는 이용도의 수동적 신비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이런 신비주의의 극치의 경험에 있어서도 이용도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엄격한 구별을 짓는, 그리고 신비적 합일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따르는 기독교적 신비주의의 한계점을 결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용도는 기독교적 신비주의의 전통을 따라 극히 윤리적인 성격을 너무나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박봉배, 133).
그밖에도 이용도의 신비주의는 막스 베버가 말한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무차별적인 탐닉의 형태"로 나타난다(차성환, 119에서 인용). 민족의 아픔을 십자가의 수난으로 승화시키며, 자신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길을 갈 때 만이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이룬다고 믿었던 이용도는 1929년의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탄생일인 이 복스러운 날에 기독교인이 아닌 우리도 당신의 앞에 엎드리나이다. 우리 불신자도 당신을 사랑하고 또 경배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아세아로 더불어 혈족의 관계를 맺은 까닭입니다. 약소한 민족 우리들은 세상의 한 노예로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갑니다(일기, 1929. 12. 21).

용도는 주님의 신부로서 십자가를 지고 그의 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그곳이 곧 주가 계신 성전이요, 이용도와 주가 만나는 상담실이다. 거기서 용도와 주님은 극적인 포옹을 한다. 그야말로 십자가의 고통 뒤에 오는 구원의 환희요, 감격적인 해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용도는 저 어린애, 걸인, 천녀(賤女), 곤충, 금수, 초목 모두를 스승으로 삼고 십자가의 고난과 함께 주께로 향한다(일기, 1929. 12. 19). 어찌보면 이용도는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리기 위해 그렇게도 몸부림친 것 같다. 이런 이용도의 사상을 박봉배는 "금욕주의(십자가 수난의 고난), 열광주의(눈물과 열정주의), 신비주의 등의 혼합적인 성격"이라고 규정한다(박봉배, 127).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경향은 그의 아가서적 표현에서 극치를 이룬다:

들어라, 와서 들어라. ... 너를 ?으시려, 주님은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오시지 않았느냐. 그래도 너는 그를 싫어버리고 그냥 울고만 있구나. 그의 품에 안기라, 그리고 세상을 다 버리라, 주님의 사랑의 유방을 잡으라(일기, 1932. 4. 18).

이용도의 이러한 성애적 사랑은 주와 직접적인 사랑의 관계를 희구한다. "주님의 사랑의 유방"이라는 표현이 이용도에게는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다. 이미 남녀의 성적 차이를 극복한 이용도의 신비적 사랑은 그리스도와의 실질적 합일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예수에게 이미 잡힌바 되었고 예수의 침실에 들어오도록 허락 받은 이용도는 사랑의 화신이 되어 뭇 백성을 예수에게로 이끌고자 했다(박종수, 1994: 52-68).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이용도의 신비적 경향은 그의 아가서 이해에 확연히 드러나고 있으며, 동시에 아가서는 그의 신학적, 목회적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아가서 주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용도의 아가서 이해를 위해서는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그의 아가서 이해와 신비주의와의 관계성은 우리에게 그의 성서관과 신앙에 대한 적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결어

민족의 고난을 십자가의 신학으로 승화시켰던 이용도의 열정적 신앙운동은 현대의 기독교인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의 성서관은 자신이 남긴 일기나 서간집 또는 성경공부 자료나 성극집을 통해 표출되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이용도의 성서이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용도는 아가서와 요한복음에 나타난 성애적 사랑을 예수와 합일의 경지로 가는 매개체로 보았다.
둘째, 출애굽기에 대한 이용도의 성서해석은 민족애를 바탕으로 한 무저항 신앙운동의 관점에서 전개되었다.
셋째, 이용도의 성서관은 삶 속에서 체험된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넷째, 성서지상주의를 극복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성서의 보완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다섯째, 십자가의 고난을 자신의 예언자적인 사명으로 간주하는 차원에서 성서를 이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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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82.126.233.36)
2006-11-17 21:53:40
귀한 기사
감동입니다. 깨닫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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