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전날

그 순간

오랜 세월동안 당신이

고된 일들과 긴 항해 끝에

자신의 나라, 자신의 섬, 수만 평의 땅, 수백평의 집,

그리고 자신의 방 한가운데 서서

마침내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왔나 돌아보며

그것은 내 소유야, 하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 나무들은

당신이 깜싸고 있는 부드러운 팔을 풀어버리고

새들은 다정한 언어를 거두어들이고

절벽들은 갈라져 무너지고

공기는 파도처럼 당신에게서 물러나

당신은 숨조차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야, 하고 그들은 속삭인다

넌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어,

넌 방문객일 뿐이었어, 매번

언덕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자신의 것이라

선언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너의 소유였던 적이 없어.

넌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한 적이 없어,

언제나 우리가 너를 발견하고 소유했지.

-캐나다 시인 Margaret Atwood-

부활절은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기 중 하나다.

나는 크리스마스보다 부활절을 더 좋아한다. 그 시작이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어렸을 때 읽으며 감명을

받았던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 그리고 하디의 소설

'테스'  속에 나오는 순수한 사랑의 기쁨과 비극들이  부활절을

배경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매년 부활절만 되면 어린시절 그 감동들이 되살아나 왠지

마음이 설레이곤 한다. 올부활절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부활절 때 쯤이면 버지니아는 수선화를 필두로 해서 각종 꽃들로

온통 치장이 된다.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숨막히는 꽃들의 축제다. 그 아름다움과 감동을 글로 묘사한다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외경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어느 시인은 "꽃은 존재의 사치다." 라고 노래했었다.

나의 그의 시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술이 삶의 사치인 것처럼,

꽃은 신의 사치스런 선물이다.

인간들이 먹고사는데는 꽃이나 예술이 없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더 잘먹고 더 잘살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빵으로만 행복할 수가 없다. 행복을 위해서

 빵 외에 그 무엇(?)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그 무엇을  '사랑' 이라고 이해했다.

사랑은 삶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화룡첨정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논리, 철학, 이념, 도덕, 웅변... 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텅빈 하늘에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꽹리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꽃은 사랑의 상징이다. 꽃은 소유할 수가 없다. 꽃은 소유하겠다고

꺾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버린다.  사랑도 소유하려고 하는 순간 사랑의 생명력인 자유을 잃고

시들어버린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의 가슴으로

깊게 보아야 한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항상 바라보고 있는 대상의 뒤에 숨어있다.

꽃을 깊게 바라다보면 꽃 뒤에 숨어있는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깊게 바라다보면 그 뒤에 숨어있는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사랑의 신비한 연금술이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한다.

한 기독교 수도사가 바위 위에 앉아 깊은 기도에 빠져 있었다.

마침 그 곁은 지나가는 한 선사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수도사는 "하나님과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만약 하나님이 당신 곁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럴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 곁은 떠나지 않습니다."

수도사는 목청을 역간 높여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 곁은 떠나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야 하나님만 홀로 남으시겠지요..." 하며 수도사는 얼굴을

붉혔다.

사랑을 소유하려고 집착하지 말라. 두려워 하지도 말라.

사랑은 늘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04/02/2021 일 아침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