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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행성의 손님으로 살기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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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3월 21일 (일) 23:57:58 [조회수 : 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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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건설을 기획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비밀스런 정보를 활용하여 그 지역의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친인척이나 지인들에게 으밀아밀 정보를 건네면서 그들은 ‘꿩 잡는 게 매’라고 생각했을까?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하려고 온갖 굴욕을 감수하며 살아온 이들의 마음에 후림불이 당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어쩌면 객체화된 권력에 길들여진 사람들일 것이다. 직무와 관련되어 취득한 정보를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슬기로운 투자 생활이 아니라 직무 유기이다. 공공의 것을 사유화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죄의 뿌리이다.

인간은 모두 이 땅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하는 나그네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늘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유한함에 대한 뼈저린 인식과 더불어 무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산다. 한정된 공간 속에 안전하게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삶의 지평을 확장하고 싶은 열망이 우리를 몰아대기도 한다.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며 사느냐가 관건이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장소로부터의 소외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삶을 안전하게 누릴 장소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지만 현실은 그런 장소로부터 우리를 자꾸 밀어낸다. 

성경은 에덴 이후에 태어난 첫 사람인 가인이 형제 살해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신의 개입은 언제나 사후적이다. 동생을 죽인 가인을 찾아온 신은 ‘네 동생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대답을 얼버무리는 가인에게 신은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고 말한다. 무고한 사람의 피를 받아 마신 땅은 더 이상 효력을 나타내지 않는다. 농사꾼이었던 가인은 그 땅을 떠나 유배자가 된다. 가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이주하여 놋이라는 곳에 정착한다. 놋은 ‘방황’ 혹은 ‘방랑’이라는 뜻이다. ‘너‘의 살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이 장소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가인의 후예들에게 정신적 허기와 갈증을 달래고, 삶의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할 내밀한 공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형편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땅과 집이 그런 고유한 장소가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초원에 사는 이들과 만나려고 게르에 들른 적이 있다. 게르는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며 살아야 했던 유목민들의 지혜가 반영된 구조물이다. 언제든 해체할 수 있고, 다시 조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나절이면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집이지만, 유목민들은 그 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찾아오는 손님을 흔연하게 맞아들이는 환대의 공간이다. 남루한 옷과 이불, 간소한 살림살이가 전부였지만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부유하지만 가난한 이들도 있고, 가난하지만 부유한 이들도 있다. 누구나 부유하기를 바라지만 그 마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결핍에 눈길을 주며 사느라 이미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핍에 대한 자각은 타자들을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로 대하게 만든다.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욕망의 불길이 우리를 사르는 동안에는 삶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공간을 훼손하면서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비평가인 조지 스타이너는 ‘우리가 훼손된 행성의 손님이라는 사실을 무겁게 의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손님이 되어야 한다. 손님이 된다는 것은 주인의 법과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손님은 떠날 때가 되면 머물던 자리를 자신이 처음 왔을 때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이사야는 자기 시대의 부자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누군가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것, 그래서 그들을 절망의 벼랑으로 내몬다는 것은 참 두려운 일이다.

(* 2021년 3월 13일자 <경향신문> 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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