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들의 대화는 줄임말이 많다. 그 줄임말에는 글의 조합을 살펴 금방 알아차리는 말도 있지만 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해 가끔은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묻기도 하고, 또 그냥 모른척하고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 왕조의 파피루스에도 어른과 젊은이 간의 세대차가 크다고 한탄하는 글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한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의 말은 외계어 수준이다. 그러니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는 특히 청소년기의 학생들과 말을 할 때는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들어야 한다. 

누차 얘기했지만 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낀 세대다. 1989년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2학기를 맞으러 학교를 갔더니 그때 전산반을 맡으신 물리 선생님이 학교에 처음 들어온 컴퓨터를 소개해주셨다. 내 세대 이하는 생소하게 여길 도스 프로그램을 썼던 때다. 전원을 켜면 부팅 속도가 하늘과 땅을 잇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조차도 신기하게 여겼었다. 까만 화면에 초록 커서가 깜빡깜빡거리며 명령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크기는 얼마나 컸고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던가. 그러던 것이 2000년 밀레니엄 세대를 맞이한 이후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넘어갔다. 나도 폴더폰 마지막 차를 타다가 10년 후 겨우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는 늦깍이 컴맹 선수였다. 마음은 여전히 아날로그 정서와 감성에 묻혀살지만, 몸은 디지털 세대의 한복판으로 밀려 들어간 지 오래다. 그래서 간혹 새로운 컴퓨터 관련 프로그램을 아름아름 물어 사용할 때는 몇날 몇일은 고생꽤나 해야 한다. 

안물 안궁! 이 말을 하기 위해 서론이 길었다. ‘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를 줄여 이르는 말인데, 얼마전 이 말에 딱 맞는 일을 겪으면서 퍼뜩 생각이 났다. 따뜻한 봄날 오후, 잔뜩 쌓여있던 연탄재를 정리하러 보일러실에 갔다가 아랫 마을의 아주머니가 산책을 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만약 그 아주머니가 산책 동료가 있었더라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느릿느릿 그러나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며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이집에 사는지부터 언제 이곳에 왔는지, 자신이 이전에 알고 있는 주인 아줌마인지, 아니면 며느리인지 겨우 1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걸어오면서 속사포처럼 묻는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며 내가 왜 지금 연탄재를 정리하러 나왔는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침에 하려 했던것을 오후로 미룬 자신을 책망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스스로 책하더라도 받아줄만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 갈 생각을 안한다. 더 가까이, 연탄 보일러가 있는 곳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내심 불안하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고, 또 자꾸만 나의 집 이곳 저곳을 살피는 것이 여간 마뜩치 않았다. 그렇다고 핀잔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 눈은 아주머니의 시선을 회피했고, 손은 계속 연탄재를 담은 봉투입구를 봉하는데 집중했다. 연탄재를 모아둔 곳에 다 옮기고 난 뒤 여차하면 집으로 들어갈 태세였는데, 아주머니는 눌러앉을 기세였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첫 물음이 신랑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8년 전에 내려온 나를 귀농인으로 알고 남편도 같이 왔겠거니 하는 아주 확신에 찬 물음이었다. 이 물음부터 내 비위가 상하기 시작했지만, 궁금하다고 하니 답을 해줬다. 남편은 없다. 놀란 표정의 아주머니는 사별했느냐 한다. 아마 젊은(?) 여자가 혼자 있다고 하니, 이혼했느냐 묻기는 뭣해서 에둘러서 돌려 물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자 아주머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갑자기 나를 향해 매우 반가운 소리를 낸다. 나는 안다. 농촌에 내려와 거의 9년 차에 접어들면서 농촌 마을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하고 혼자 있는 이웃을 향한 궁금증과 물음을 이제는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아주머니가 반가워하며 다가오는 목소리에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여기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의 첫 마디가 입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하며 말을 이어가려고 할 찰나, 내가 먼저 아주머니의 말을 끊었다. 아주머니, 저에게 중매하려는 얘기 하실라면 아예 말하지 마소. 그러자 아주머니는 또 괜찮은 사람~~~ 이러길래, 갈거였으면 진즉이 갔을거라 했다. 이번엔 또 아이 없는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한다. 정색을 하고 괜찮다고 하니, 또 남자에게 디었냐고 한마디 더 한다. 아이고머니나~~~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음에 오실 때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오시라 했다. 그때 다시 이런 얘기하시면 모른척하겠다 하면서.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때서야 중매 하나 물 건너간 것을 아쉬워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면서 마스크로 가린 입에서는 그렇지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 하며 서로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

그날 처음 본 아주머니였고, 처음 말을 섞었다. 그런데 중매를 선뜻 한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 수 있는지, 그것이 농촌 마을의 독특한 관심거리이자 참견이다. 이런 일은 종종 겪었다. 남녀노소 그랬다. 처음 겪었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워서 그 감정이 며칠 갔다. 그 당황스러웠던 감정이 올라왔을 때 상대방에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화가 났을 정도였다. 그런 것이 지금은 적응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상대의 무례함에 정확히 내 의사를 표현함으로서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말라고 종용하게 되었다. 

안물 안궁!
가까운 사이일수록 수평선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밀을 표현해야 관계가 오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잘 안된다. 어떤 때는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나도 위의 아주머니처럼 불쑥 들어갈 때가 있다. 이런 류의 말은 입에서 나가는 순간 ‘아차!’임을 스스로 안다. 그러면 얼굴은 화끈해지고, 등줄기는 서늘해진다. 안물 안궁 했으면 좋았을텐데 오지랖이 문제다. 아주머니는 내게 안물 안궁 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나 그 덕에 나도 배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안물 안궁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도 너무 많은 것을 물으려고도 하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자.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봄의 시작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며 즐기듯.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