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회복을 위한 교회 전통을 생각하자.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둘러싸고 기독교계 안에서 갈등이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15년째 기독교계의 반대로 인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말에 진주에 갈 일 있었습니다. 그때 한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는 일제 강점기 때 백정과 일반인이 같이 예배를 본 ‘동석 예배’를 실현해서 한국의 인권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교회입니다. 그 시대에 백정이 동등하게 예수님 앞에서 예배를 같이 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그 교회에서 용기 있게 단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에 반발하던 교인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일을 한 교회였고, 그래서 기념관도 만들어서 그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글쎄 교회 담벼락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교회 이름으로 걸려 있더군요. 일제 강점기 때의 백정은 지금의 동성애자들보다도 더 차별받던 이들이었고, 그런 백정을 받아들인 교회가 이런 현수막을 내걸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차별을 넘어 평등을 향한 교회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한편으로는 차별금지를 반대한다니요.

차별금지법 제정이 대세인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대를 앞서간다느니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다느니 하는 말은 성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 밖의 여론조사에서는 80% 전후로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여론이 높습니다. 교회 안의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오는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한기총이 한 여론조사만 결과가 반대일 뿐입니다. 이런 조사결과는 기독교계의 성직자들이 신도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신도들일수록 동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성정체성에 대해서 그리고 성적 지향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직자와 청년층의 인식상이 괴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실이며, 이렇게 교회가 독단적인 성경해석을 통해 동성애를 공공연히 차별한다면 교회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라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에 대한 교회내의 오해는 주로 동성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소수자만을 위한다.” 또는 “동성애와 동성혼을 합법화한다.” “동성애 설교는 처벌받을 수 있다.” “거리에서 전도하다 붙잡혀 가거나 처벌받는다.” “기독교 시설에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고용하면 처벌받는다.” 등 심지어는 “소아성애나 수간을 합법화하려고 한다.” 는 등의 주장까지 난무합니다. 법률안을 한 번 만이라도 읽어보고 하는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주장을 교회의 성직자들이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게 말이 되다니요.

교회가 과거 군부독재시절에 인권의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 노력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서 인권유린을 당하는 게 중요한 인권문제였다면 지금은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것, 그래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게 중요한 인권문제입니다. 과거 교회가 용기 있게 인권을 주장했던 전통을 되돌아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평등법은 동성애를 조장하기 위한 법률도 아니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한 법률도 아닙니다.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건 인권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는 마귀가 들어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고, 정신병에 걸린 이들도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성전환을 해서 이성애자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1970, 80년대에 성소수자들의 성정체성을 되돌리기 위한 전환치료센터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만들어져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고해졌고, 그에 따라서 전환치료센터 같은 것들은 이미 사라지고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국사회에는 마귀를 쫓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들은 성소수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주게 됩니다. 최근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자살하는 일은 그만큼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너무 괴롭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에서 문제 삼는 차별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 광고 등입니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재화·용역, 교육·직업훈련, 행정·사법절차·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합니다. 쉽게 말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 교육의 기회를 차별적으로 주는 것, 행정이나 사법절차에서 소수자라고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반대한다?
달리 말하면,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법, 그리고 우리나라의 헌법을 재확인하고 구체화하는 법률이 차별금지법입니다.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과 같은 같은 법률이나 이를 실현하는 기구가 없는 나라가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 중에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거짓에 휘둘리지 말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기독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성경 말씀 한 구절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부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가 차별 없이 하나 되는 그런 교회를 이뤄주시길 바랍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