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회원 진급 논문심사, 교육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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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감리교를 바라보는 시각과 평가, 판단이 다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감리교가 좋다. 
감독선거의 부조리와 정치편향, 극단적인 진보와 보수의 갈등, 몇몇 은퇴 목회자의 성직매매, 세습논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감리교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장로님으로 섬긴 곳이고, 내가 이날 이때까지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써 아마도 죽을 때까지 감리교 목사로 살다가 죽을 확률이 높다. 

자랑스러움도 적지 않다. 
일사분란한 행정체계는 타 교파 목회자들도 인정하는 바이고, 신천 장로의 3년간 진급과정도 꼭 거쳐야 할 필요 단계로 자랑스럽다. 게다가 목회자가 안수 받기 위해선 반드시 3년간 과정고시 및 자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때 준회원 과정 논문심사를 통해 개인이 지닌 소양과 학적 능력을 확인하고  목회자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덕목과 기본적인 실력을 요구하기에 다행이며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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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군목 때의 일이다. 최전방인 강원도 철원에서 2년간 근무하다 포천 일동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해 연대장은 000대령이었는데 기독교인은 아닌 것으로 기억된다. 첫 만난 날, 업무보고를 위해 연대장실을 방문하자 환하게 웃으며 차 한 잔하자고 환대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내게 교단이 어디냐고 물었다. 의아했다. 군대내 기독신자들은 교단의식이 약해 교단에 대해 잘 모르는데 신앙인도 아닌 이가 교단을 물어보다니.... 이상해하며 <감리교>라고 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휴~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목사님.”이라고 인사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연대장님은 인사 업무가 주특기인데 예전 부대에서 어느 군목과 심한 갈등을 빚은 듯했다. 
그 때의 군목은 000교단이었는데 상당히 자기 중심적이어서 인사과장을 비롯한 장교들과 많은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예전에 한번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감리교 군목이 왔다니까 무턱대고 좋아하신 거였다.(물론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판단이고, 선입견이다. 나도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같은 가짜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훌륭한 타교단 목회자들이 셀수 없이 많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 연대장이 부대를 떠날 때까지 좋은 관계 속에서 룰루 랄라 하면서 소위 "군대 생활 꽃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끔 감리교 목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회의를 느낄 때마다, 혹은 내가 타고있는 감리호(監理號)가 깊은 수렁에 침잠되거나 침몰하는 느낌을 받을 땐 그분의 질문을 되새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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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교역자 회의를 하고 있는데 낯선 번호가 찍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아보니 나긋나긋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정학진 목사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에스더라고 합니다.....” 
삭은 양철지붕이 끊기듯 간간이 끊기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60이 넘은 중년여성의 목소리였다. 대충 답하고 끊으려는데 불현 듯 논문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얼마 전 논문을 보냈습니다. 금년에 목사님 통해 논문지도를 받게 된 준회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잠깐만요....” 
자세를 곧추 세우고 전화를 오른손으로 옮겨 받았다. 왜냐면 며칠 전 받은 준회원 진급논문을 잠깐 훑어봤는데 완벽한 논문이었다. 그런데 이 논문이 연세 많은 중년부인의 작품이라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더 더욱 놀라운 건 내게 전화한 사람이 외국인이고, 그래서 발음이 어눌했던 것이다. 한국말이 편하지 않거나, 그런 자리가 어려웠거나, 그도 아니라면 전화상으로 처음 만나는 지도목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친절하게 하다보니 눅진눅진, 나긋하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정말 인도네시아 사람이예요? 그런데 이렇게 말을 잘해요? 그리고 그렇게 논문을 잘 썼어요?” 
진심으로 칭찬했다. 일 주일 뒤 의정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는 논문을 다시 치밀하고도 정치(精緻)하게 읽어보았다. 어색한 문법과 잘못된 부호사용, 띄어쓰기 등 몇 군데를 빼고는 완벽한 논문이었다. 

표지형태와 논문매수, 용어와 문장의 적절성, 참고도서 목록, 제목과 목차 등의 전체적인 아웃라인과,  문제제기와 한계 등을 서술한 서론, 그리고 성서적, 신학적, 현실적인 배경 등을 기술한 본론과 깔끔한 결론 등 모든 게 완벽에 가까웠다.

그래도 명색이 지도교수니 뭔가 지도할 것이 있나 싶어 아주 자세히 살폈다. 13페이지의 소논문 중에 109 군데의 어색하고, 잘못된 표현을 찾아냈다.
외국인들이 자주 범하는 치명적인 실수인, 수동태와 능동태의 구별, 띄어쓰기와 적확한 문법, 따옴표와 겹따옴표, 각주 쓰는 법 등 나도 심심찮게 틀리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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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의정부 <애슐리> 부페에서 만나 점심을 사주면서 논문지도를 했다. 올해 00세, 내 딸아이와 같은 나이인데다 7년 전 한국에 와서 목원대에서 어학연수와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감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원(才媛)이었다. 올해 수련목으로 허입과 동시에 선교사 목사안수를 맏고 고국에 돌아간다고 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이렇게 좋은 논문이 나온 거였구나....” 흐믓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후배들이 주의 종이 되겠다고 뒤따라오고 있다니..... 참으로 내가 감리교 목사라는 게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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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몇 해 전, 준회원 논문심사 생각이 났다.

그해 내가 지도를 맡은 사람은 3명이었는데 여성이 한 명, 남자 전도사가 두 명이었다. 진급논문을 읽으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준차이가 너무 나서 한 명은 98점, 다른 사람은 90점, 그리고 개척교회 전도사는 28점 수준이었다. 그는 논문의 ‘논(論)’자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에세이를 쓴 것도 아니다. 

성의 없이 쓴 건 아니지만 논문에 대한 개념도, 훈련도 안 되어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듯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주제도, 흐름도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세 명 모두 우리교회에 초대했다.

저녁을 시켜 먹은 후 정식으로 논문지도를 했다.
98점인 여성은 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00교회에서 수련목을 밟고 있는 사람이었다. 
90점 논문의 전도사도 비교적 논문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하나 잘못된 표현과 문법, 논문작성에 있어서의 함정 등을 지적하니 정성껏 받아 적고 질문을 했다. 참으로 보람 있었다. 그렇게 두 명을 지도하는데 2시간이 훌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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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세 번째 전도사였다. 이건 내가 숫제 감당이 안 되었다. 하나부터 뜯어 고치려면 모두를 뜯어 고쳐야하는데 차라리 허물고 새로 짓는 게 나았다. 고민 끝에 잘 쓴 논문을 복사해서 주었다. 
“전도사님, 이 논문 한 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생각이 달라지면 논문을 다시 써 보세요.” 자존심 상하지 않게 애둘러 얘기한 후 모두에게 교통비 5만원씩을 주어 돌려보냈다.
           
1주일쯤 지났을까? 
세 번째 전도사(28점)로부터 논문이 당도했다. 논문을 읽는 순간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너무나 잘 쓰인 논문이었다.(90점) 주제나 방식 등은 이전과 동일했으나 논문으로서의 품격과 정형화된 틀은 전혀 다른 논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집에 돌아가 잘 쓴 논문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척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수치심에, 깨달음에 밤잠을 못 이루다 이렇게 좋은 논문을 만들어냈을 것이라 사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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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와 같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던 것처럼 보였다. 기본적인 가르침만 주었어도 이렇게 환골탈태(換骨奪胎) 할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이게 교육의 힘이다. 기실 이게 설교의 힘이다. 나는 지금도 글 잘쓰는 사람이 말도 잘하고, 논문 잘 쓰는 사람이 설교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잘하리라 믿는다. 

설교는 밑도 끝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문제제기>를 하고, 다른 사람은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루고 있었는지 <연구사검토>를 한 후 이야기의 <범위>와 <한계>를 밝히고 본론으로 돌아와 자신의 <주장>을 성경과 인문학, 기타 여러 증거자료들을 가지고 증명한 뒤 결론을 낼 때 설득력이 있고, 이른바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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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적잖이 들고, 내 호주머니 돈도 나갔지만 한 사람이 변화되는 모습에 흐믓했다. 아마 그 전도사도 이때의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 논문지도 현장에서는 내가 깐깐한 사람으로 동료들에게 비쳐지는지 모르겠다. 

“정 목사님, 그냥 대충~~ 적당히 합시다. 이런다고 누가 상 줍니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어느 목사님에게 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러면 입법회의에서 현장발의 하든지, 장정개정 위원회에 정식으로 안건을 제출해서 이런 과정을 폐기하도록 합시다. 어영부영 하려면 이런 일을 왜 합니까? 목사님이나 저나, 저기 있는 전도사나 모두 바쁜 사람들 아닙니까? 형식적이고 통과의례 정도로 여길 것 같으면 다음부터는 저는 빠지겠습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좋은 게 좋은 건데....” 자칫 잘난척하는 사람으로 비쳐지거나 아니면 강한 성격으로 인해 적(敵)이 많아지지는 않을는지.....

쓸데없는 걱정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