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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다
김영준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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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27일 (토) 23:26:46
최종편집 : 2021년 02월 27일 (토) 23:28:02 [조회수 : 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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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상상의힘

돈을 숫자로만 거래할 수밖에 없을 때, 자본이 된다.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없는 돈은 자본이다. 자본은 마치 세포처럼 스스로 증식하는 살아 있는 생물 같다. 그래서 자본은 무섭다. 옛날 어딘가에서 빼앗았던 물건과 노동력을 숫자로 보관해 둔 게 자본이지 싶다. 숫자로 방부 처리된 돈 자본은 우리 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력입니다. 그래서 자본은 무섭다.

헤롯 대왕은 자본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근대적 자본은 물론 아니지만, 헤롯은 숫자로만 존재하는 달란트 단위의 돈을 로마 황제에게 상납하는 조건으로 왕이 된 사람이었으니 자본을 다루는 사람이라 하겠다. 빼앗듯 세금을 거두어 황제에게 바치는 것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한 헤롯은 어떤 명분도 정통성도 없이, 돈을 거두어 자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만으로 왕이 되었다. 자본이 왕을 만든다. 왕의 정통성보다 자본이 더 높은 게다.

헤롯왕이 다스리던 때에,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았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그 두 사람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헤롯은 로마 황제 앞에 자신을 비추며 살았고,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며 살았겠다. 사람의 크기는 어떤 거울에 비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로마 황제 앞에 비추면 보이지도 않을 거다. 돈도 없고, 돈을 빼앗을 능력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 로마 황제 눈에 들 리 없지 않은가. 헤롯은 당대에 대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비추면 보이지도 않을 거다. 뜻과 명분 따위 관심 두지 않는 헤롯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니까.

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낳은 요한은 사막에서 살았다. 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서 성전에서 일하지 않고, 사막으로 가버렸다. 낙타 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메뚜기를 먹으며 연명했다. 그런 세례 요한을 천사장 가브리엘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라 소개한다.

사막에 사는 요한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다. 궁전이나 성전이 크다고 해서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큰 건 아니다. 궁전이나 성전도 하나님의 자리에서 조감하면 점에 지나지 않는다. 지도에 표시되는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게 궁전과 성전이다. 커 보이지만 크지 않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헤롯 대왕 따위 있는지 없는지 조차 관심 두지 않으신다. 헤롯 같은 사람들이 설치지 않도록 관심 두시면 좋겠지만, 너무 작은 존재들이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걸까. 오늘도 헤롯 같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다.

하나님은 사막에 사는 요한을 크게 보신다. 사막에서 소리가 되어 사는 요한이 하나님에겐 큰 인물이다. 사막에 사는 두더지 같은 요한이 하나님에겐 큰 인물이다. “요한은 사람 보기에는 보잘 것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큰 자였습니다. 사람 앞에서 큰 자보다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박수암, 『누가복음』)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첫 번째 패이지를 소개한다. 소년과 두더지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난 아주 작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소년이 말했지요.』

하나님 만드신 세상에서 요한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다. 궁전과 성전 밖에서 두더지 같이 사는 요한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다. 궁전과 성전으로 자기 껍데기를 삼고자하는 사람은 흔하나, 벽돌로 짠 껍데기 장식으로 자신을 가리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요한은 귀하니까 말이다. 귀한 두더지가 세상에 있고 없고는 큰 차이다.

생활하고 나면 얇은 지갑에 넣고 다닐 만큼의 돈도 없을 때가 있다면, 자본은커녕 생필품이 되는 돈도 늘 아쉽다면, 하물며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돈,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기 위한 돈을 셈할 때 막막하다면, 사막 두더지 같은 요한을 조금은 닮은 거다. 그래서다. 

우리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다.

김영준 목사(민들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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