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3.1정신의 배신감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02월 27일 (토) 23:21:21 [조회수 : 274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3월 1일은 언제나 봄이 오는 길목에 위치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에게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계절의 경계선에서 봄이 오고 가는 것을 겪으면서도 늘 진정한 봄소식이 그리워 번번이 애상조의 노래를 불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찬란한 슬픔의 봄을’, ‘봄날은 간다’ 따위의 시구와 노래는 봄의 허무함과 아픔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 35년의 가혹한 착취는 민족을 더욱 비참하고 궁색하게 하였다. 오랜 세월 악몽의 무늬처럼 새겨진 봄철의 곤궁은 ‘봄 사돈은 꿈에 보아도 무섭다’느니, ‘봄에 의붓아비 제사지낼까’와 같은 속담을 우려냈다. 봄은 동화처럼 찾아오지는 않는다. 진정한 봄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의 빗장을 풀어내면서 시작한다. 

  3.1 만세운동이 그랬다. 어느새 3.1 운동사는 100년을 넘었으나, 여전히 기억하고 계승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혈맥에 흐르는 독립의 기운이 근대의 들머리에서 동학농민전쟁을 시작으로 항일의병과 만주 독립군으로 이어졌다면, 현대사의 흐름에서는 4.19 의거, 5월 광주, 6월 항쟁, 촛불시민으로 연결된 것이 틀림없다. 그 정수리에 3.1정신이 존재한다.

  3.1 정신은 우리 민족에게 첫 번째 혁명이며, 민족의 대각성 운동이었다. 1919년 삼월 이전에 이 나라는 공동묘지와 다름없었다. 일제강점기는 총독령에 의해 헌병의 총칼로 지배한 암흑기였다. 나라를 판 친일엘리트들은 매국에 대한 은사금으로 모두 1,900만 6,303원을 받았는데, 당시 쌀 한 가마니에 5원이었다. 조선의 대주주였던 매국노와 양반들은 빚잔치를 벌였으나, 진정한 땅의 주인은 폭력적 억압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속으로만 삼켰다. 

  점점 비겁한 침묵만이 지배하였다. 그런데 3월 1일 대반전 이후 이 땅에는 아우성이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독립이란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본 것이다. “아아 신텬디가 안전에 전개되도다”(독립선언서). 국권을 빼앗긴 굴신의 신음이 주권을 되찾으려는 피의 외침으로 변전한 것이 출발이라면, 임시정부 수립과 끊임없이 항일(抗日)의 역사는 선명한 계승이었다. 물론 해방이란 신천지로 바꾸어 내기까지 길고 긴 수난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3.1정신은 ‘나는 왕의 백성이 아닌 내 나라의 주인’이란 각성으로 요약된다.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독립국이고 나는 자주민이다.’ 그 정신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민주공화국’에 대한 선언으로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 2항). 3.1운동을 가리켜 혁명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더 이상 제국의 신민이 아닌 자주적인 시민으로 신분이 바뀌는 존재의식의 역전이었다. 

  ‘삼일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의미이다. 자주독립은 물론 정의, 공평, 인간존엄, 평화를 품고 있는 바야흐로 샬롬의 세계를 비전으로 바라본다. 3.1운동 이전까지 그리스도교는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서양에서 들어온 남의 나라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였다. 눈이 파란 선교사들의 종교일 뿐이었고, 규모도 지극히 소수였기에 존재감 역시 부족하였다. 이제 3.1운동을 통해 민족애와 역사의 순기능으로 교회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삼일정신은 한국교회에 특별한 소명을 부여하였다. 더 이상 남의 나라 종교가 아닌 우리의 종교이고, 민족의 신앙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이다. 그 열매로서 한국교회는 3.1운동의 정신을 기억하며 해마다 기념주일로 지킨다. 지금 교회를 향한 비난은 기대 밖의 부패와 병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3.1정신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회에게는 높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100년 전 고난의 기억을 두고두고 자랑했듯이, 장차 이루어갈 민족의 미래에 대한 의무와 책임도 깊이깊이 새겨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봄의 기쁨은 자연의 순환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획득한 것이다. 지금 맞는 3.1절에 대해 자부심은 유명무명 선혈들의 피의 대가이다. 성큼 다가온 봄날처럼 그렇게 희망이 웃자라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송병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