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ぼくは明日、昨日のきみとデートする, 2016)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시간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시간에 관한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한 SF영화 《테넷》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말고 느끼라고, 기술보다는 감성이라고 스스로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넷》은 감성보다는 훨씬 더 기술에 치중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것은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큰 미덕이요 강점이었다. 단지 영화가 표명했던 표어가 다소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시간의 순행과 역행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표어를 제대로 구현한 영화는 바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일 것이다.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기술과 감성 중에서 너무나도 분명히 감성에 치우쳐있다. 영화는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다른 세계로부터 이 세계로 옮겨와 살고 있는 한 여인과 주인공의 만남을 다룬다. 그런데 왜 그 만남이 하필 5년마다 한 번인지, 그리고 그 한 번이 왜 30일간인지, 영화는 자세한 과학적 설명을 관객에게 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라 느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주인공 타카토시는 전철 안에서 운명의 여인 에미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그녀를 따라 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휴대폰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휴대폰이 없다는 그녀의 말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낙담하여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는 다급히 그를 붙잡으며 정말로 휴대폰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동갑인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감격에 찬 데이트를 해나가는 사이 타카토시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게 되고, 우연히 흘린 에미의 수첩에서 이상한 메모들을 발견한 후 그녀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둘 사이의 시간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나의 어제는 너의 내일이고 너의 어제는 나의 내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둘 사이의 만남은 단지 30일 동안만 지속된다는 사실. 타카토시는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내가 너와 함께 했던 어제의 추억을 너는 내일에나 알게 되겠구나,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이 없는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너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 어떻게 이런 만남을 감행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괴로움에 빠졌던 타카토시는 자신과의 만남에서 자주 눈물을 흘렸던 에미를 기억하며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으로 서로 간의 호칭을 경칭에서 애칭으로 바꿨을 때, 처음으로 둘이 손을 잡던 날 에미는 눈물을 흘렸었다. 타카토시는 이 눈물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처음이었던 그 순간들이 그녀에게는 최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의 어제로 들어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다카토시를 정다운 애칭으로 부를 수 없을 것이고, 나의 어제로 들어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다카토시의 따스한 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점점 더 그와 멀어지는 사이로, 낯설어지는 사이로 들어서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 괴로움을 감내하면서도 에미는 자신을 만나는 일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타카토시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의 모든 처음이 그의 마지막이며, 나의 모든 마지막이 그의 처음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이 사실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저 느끼도록 도와준다. 유감스럽게도 과거에 비해 힘을 많이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 영화들 속에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는 일본 영화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감성적인 장점을 잘 보여준다. 한 가지 더. 혹시라도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된다면, 아니, 첫 장면이라도 다시 보게 된다면 영화는 모르고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가장 애틋한 장면들이 가장 애절한 장면들이 되어버리는 경험.

주님의 날을 기다리다 지쳐가는 신자들을 향해 베드로후서의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벧후 3:8) 기다림과 시간에 관한 이 말은 어쩌면 사랑에 대해서도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하루를 함께 있어도 천 년 같이 진한 사랑이 있을 것이고, 천 년을 함께 있어도 하루보다 못한 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사랑이라면 만남의 시기가, 만남의 길이가 중요할 리 없다. 사랑에 용기를 내야 할 이유는 이렇게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