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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과 겸손
박평일  |  BPARK7@CO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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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16일 (화) 00:27:32 [조회수 :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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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인이 띄운 예수가 말했던 '좁은문'과 '겸손'에 대한 글을 읽고 오늘

아침 이렇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신은 모든 생명체들을 창조할 때마다

그들의 귀에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독특한 존재다." 라고

속삭이셨습니다. 창조주의 눈에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써 우주 보다 더 귀한 독특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에고가

그 '독특함' 이라는 단어를

'특별함' 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독특함은 그 자체로 완전(Whole)한절대적인 개념입니다.

나는 타인과의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옛날 속담에

"제 잘난 맛에 산다." 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 '제 잘난 맛' 의 의미를

'독특함' 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함' 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 나는 남 보다 특별한 존재다." 라는 우월감입니다.

인간은 능력면에서 전혀 평등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그 능력이 각기다릅니다.

'종의 이론' 를 쓴 다윈은 그런 동생물들의 능력상 특별한점을 착안해서

'적지생존 법칙'에 따른 '진화론' 을

주장했습니다.  또 니체는 생명의

본성을 '권력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의지' 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무의식세계를 학문적으로

밝혀낸 천재 심리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제자,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의 본성을 '우월감을 실현시키기 위한

동물성' 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들 과학자들의 이성에 바탕을 둔 이론에 일부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동감을 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서구철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이성적인 동물' 이상의 존재라고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 이전에

감성적인 동물이며, 영적인 동물입니다.

티베트 영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태어났다." 고 간단명료하게 주장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주장에 100% 동감합니다. 내 삶의 모든

주제는 행복에 있습니다.

지난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전쟁과 인류의 불행은

자신의 특별한 우월성, 집단의 특별

우월성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폭력적

미친 광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종교간, 인종간, 문화와 문명, 사상과정치이념간.. 

"나는 우월하고 절대 옳으며,

너는 열등하고 절대 틀렸다" 는

터무니 없는 망상들이 그 주역들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심리의 모순을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는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나는 천국이고 너는 지옥이다."

인류니, 역사니 하며 거창하게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나를 당장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들은 바로 그렇게

세뇌되어  있는 나, 그렇게 세뇌되어 있는 타인들, 집단들 때문입니다.

한국에 '내로남불' 이라는 재미있는

새로운 사자성어가 생겨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내가 하면 사랑이고, 네가 하면 불륜이다." 는 의미입니다. 사실은 누가

해도 사랑은 사랑이고 불륜은 불륜입니다.

솔직하게 나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윤리적, 관습적인

율법심 보다는 그 사람이 삶을

통해서 풍기는 진실함과 솔직성을

더 중요시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에 세례 요한이 하루는

광야에서 무소유로 살아가고 있는

예수에게 제자들을 보내 "예수가

어떤 인물인가?",  염탐해 오라고

명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찾아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직접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너희들이 지금,

두 눈으로 보고, 두 눈으로 듣고,

느끼고 있는 나의 살아가는 있는

삶이 바로 나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이 바로 나이고,

당신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이

당신들입니다.

쓰고 있는 가면이나, 삶의 연기는

우리들의 본래모습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는 말씀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은 겸손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그렇다면 겸손은 무엇일까?

나와 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그러다보면 진실하고 솔직하게

너와 나를 독특한 눈으로 바라보고, 듣고, 느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감사하게 됩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겸손은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삼척동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이지만,  90세 노인도

실천하고 살기는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좁은문' 이라고 했을 겁니다.

01/29/2021 아침

한 지인이 보내준 겸손에 대한

글과 한 목사의 좁은 문에 대한

글을 읽고.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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