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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금하는 동성애를 지지하다니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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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11일 (목) 14:10:21
최종편집 : 2021년 04월 17일 (토) 04:32:31 [조회수 : 2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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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찬반 논의가 전에 없이 활발하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내세운다. 그들은 소돔의 죄악이 언급된 창세기 19장 1-13절, 가증한 풍속을 금하는 레위기 18장 22절 그리고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1장 26-27절과 고린도전서 6장 9절 등을 언급한다. 

그들은 이렇게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하고 있으니 기독교인은 응당 동성애를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이 성경에서 금하는 동성애를 지지하다니 그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란다. 

그런데 일부 교인들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을 보면, 혹시 성경에 동성애를 지지할 만한 어떤 근거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게리 윌스의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돋음새김)에 나오는 동성애에 관한 부분을 편집해서 옮기겠다.


예수님과 소외된 자들

예수님은 마치 거미줄을 치우듯 사회적 장벽들과 금기들을 헤치며 나아가셨다. 일반인들은 물론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피하게 되어 있는 것을 예수님은 순순하게 받아들여 수용하셨으며, 그 때문에 그 문화권에서 관습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격노케 하셨다. 예를 들면, 예수님 당시에 생리하는 여인들은 부정하다 여겨져서 정화되기 전에는 성전에 갈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더럽힐 것이기 때문에, 음식 장만이나 빨래같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8:43)에서 보듯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은 사회에서 영원히 쫓겨나 있어야 했다. 그 여인은 교회로부터 예식 참여 금지의 벌을 받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철저하게 종교 생활로부터 배척되었다. 

레위기 15장 25-27절에는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그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에 그가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그가 앉는 모든 자리도 불결함이 불결한 때의 부정과 같으니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 속의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의사들과 정화시켜주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부질없는 호소를 하며 이러한 저주를 견뎌내야 했다. 이제 치료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령에 과감히 도전했다.

그녀는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팔로 밀어제치며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갖다 댔다. 예수님은 흠칫 놀라며 “내게 손을 댄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다. 그 여인은 접촉을 못하도록 한 금기를 범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두려웠다. 무리는 모두 예수님을 만졌다는 것을 부인했으며, 베드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에워싸고 있어서 누가 그랬는지 밝혀낼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눅 8:46) 두려움에 떨던 그 여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이 그랬음을 밝혔다. 하지만 예수님은 화를 내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부드럽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8:48)라고 말씀하셨다. 의식에 쓰이는 물이 아니라 믿음이 그녀를 정화시킨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만지도록 허용하신 것은 이 부정한 여인만이 아니었다. 남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발에 향유를 발라준 평판 나쁜 여인을 칭찬하셨다. 예수님의 친구인 마리아가 당신의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을 때도, 그녀가 예수님의 발을 닦아주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늘어뜨렸으므로 예수님은 부정한 여인과 접촉하셨었다. 

민수기에 기록된 대로(5:18), 여인이 사람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것은 그 여인이 부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다가 마리아를 꾸짖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이 죽어서 부정한 시신이 되었을 때 쓰려고 준비한 것을 그녀가 미리 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2:7).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깨끗한 자와 부정한 자, 가치 있는 자와 가치 없는 자, 존경받는 자와 존경받지 못하는 자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형상을 한 자신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으므로 자신의 제자들이 특권을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 특권을 남들에게 혹은 서로에게 사용하려 한다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됨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런 차별 없이 모두를 포용하는 것이지 계급으로 나누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4-45)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 중 많은 것이 유대인이 아닌 로마 백부장, 두로의 여인, 사마리아의 나병환자 등과 같은 아웃사이더들을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기적은 유대인들이 접촉조차 않으려고 하는 나병환자, 창녀, 불구자, 천덕꾸러기, 이교도 혹은 병으로 인해서 부정해진 자들과 관련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만찬에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눅 14;13) 청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사람은 절대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남자의 몸속에서 부정한 것들을 끄집어내어서 금지된 동물인 돼지들 속으로 집어넣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한 자들이라고 불렀다. 부정한 사람들과 식사하지 않을 때에도 식사 전에 해야 하는 정결의식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은 부정했다. 예수님도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종교에서의 모든 형식주의에 반대하셨으며 기꺼이 당대의 ‘신성 규약’ 전체를 거부하셨다.

예수님의 세계에서는 로마의 부역자, 나환자, 창녀, 광인, 귀신 들린 자들을 비롯해서 그분이 피하고자 하신 추방자들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두를 끌어안는 그분의 크나큰 사랑 밖으로 내쫒길 만한 사람들이 있을까?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럴만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가장 큰 죄악은 자신들만의 소름끼치는 정화 율법을 만들어서 유대인들을 저주하고, 그들을 접촉할 만한 가치도 없으며, 부정하므로 거부해야 하는 민족으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종 정화’라는 죄악이 유대인 대학살을 일으켰던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조장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유대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저주받은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말해주고 있다. 

에이즈로 사망한 유명한 동성애자의 장례식에 어느 기독교 단체가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미워하신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났다. 샌디에이고 관구의 한 가톨릭 주교는 동성애자로 밝혀진 사람의 천주교식 장례식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예수님이 어떤 입장을 취했을 것인가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예수님이 자신의 일행들과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있을까? 예수님은 동성애자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동성애자와 함께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마치면서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의 저자 게리 윌스는 동성애를 반대한 성경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게리 윌스를 이단자라고 볼 만도 하다. 그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어찌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게리 윌스를 이단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레위기나 민수기에 나오는 정결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의 관행을 무시하면서 부정한 자들과 함께하셨다. 그런데 구약의 정결법에 따라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면, 그것은 그 정결법을 무시하시면서 소외된 자들이나 부정한 자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 

그러면 창세기에 나오는 동성애를 금하는 기록은 어떤가? 창세기는 모세 오경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되었다. 그러나 창세기가 구약의 맨 앞에 나오는 것은 천지 창조가 오경의 순서에서 가장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에 나오는 동성애에 대한 기록은 레위기나 민수기에 나오는 정결법의 영향 아래에서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의 서신서에 기록된 동성애 반대는 어떤가? 기독교의 표준은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에, 서신서에 기록된 것이 예수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동성애에 대해서 말씀하신 일이 없지만, 소외된 자들을 측은히 여기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은, 게리 윌스의 말대로, 동성애자들과 함께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서에 동성애를 반대하는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기록에 근거해서 동성애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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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23:03:32
덧붙여서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온 부정한 여인들과 죄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을 받아들이신 것이지 그들의 잘못을 지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과 죄로부터 회복하는 것을 같은 관점으로 놓고 본다는 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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