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반지성주의>,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세종서적

최근 감신대 하희정 박사님으로부터 ‘반지성주의’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모리모토 안리라고 하는 일본인 목사가 쓴 이 책은 미국의 신앙부흥운동에 담겨진 반지성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반지성주의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패터에 의해 처음 쓰여진 말이다. 그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책을 통해 1950년대 매카시 광풍이 몰아친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반지성주의의 개념과 의미를 더듬어 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트럼프에 열광하고,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며, 공정한 선거결과에 불복을 외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한 의문이 커져 갔던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총기규제 반대, 의료보험개혁 반대와 같은 일들이 왜 번번이 일어날까? 라는 물음이 늘 내게 있어 왔다. 

그러던 가운데 만나게 된 ‘반지성주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리처드 호프스패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반지성주의의 근원을 밝혔다고 한다면, 모리모토 안리의 책은 반지성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던 세 차례 미국의 대각성운동(신앙부흥운동)을 통해서 이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반지성주의를 지성에 반대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 결여된 지성에 대한 반대, 지성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특권계층에 대한 반감이자 반발로 이해한다. 즉 지성 자체가 아니라 지성의 사용 방식에 의문을 품고 지성의 월권행위, 권위 및 권력과의 유착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 이를 민감하게 포착하여 감시, 견제하는 것이 반지성주의라고 말한다. 

우리가 율법이 아닌 율법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반지성주의는 매카시즘과 같은 사회 혼란을 부채질하는 병리현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이 책에는 미국의 신앙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프란시스 애즈베리, 찰스 피니, 드와이트 무디, 빌리 선데이와 같은 이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들이 철저한 청교도주의에 입각한 장로파 교회들과 목사들이 이루어내지 못한 대규모 군중집회(천막집회)와 이를 통한 회심과 대부흥을 어떻게 일으켰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부흥운동이 미국 개신교만의 역사가 아니라 미국 사회에 반지성주의를 태동하게 하는 시발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시작(독립)은 유럽과의 단절, 즉 전통, 귀족, 권위, 엘리트의식, 형식주의에 대한 반발과 대항에서 출발하며 평등, 실용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행동주의, 자수성가형 기업가, 자본주의적 가치추구와 같은 반지성주의적인 특징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지식인들에 대한 불신, 반발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미국 사회는 정치적 전환기 때마다 이러한 반지성주의의 물결이 나타나게 되었고, 앤드루 잭슨, 도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를 비롯한 트럼프와 같은 이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 쉽고 평이하게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쓴 미국의 신앙부흥운동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덕분에 700페이지에 달하는 호프스패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도 다시 구입하여 읽어가고 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미국의 역사와 문화, 기독교와 신앙부흥운동에 대한 정보와 인식들을 새롭게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신앙부흥운동에 기반을 둔 복음주의 기독교와 그 신앙적, 사상적 바탕을 둔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가 혹 폭발적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와 연결되어 있지 않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을 던져보게 되었다. 워싱턴 미 의회 의사당에 모인 트럼프 지지자들과 광화문에 모여든 수많은 깃발의 태극기 부대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씁쓸한 착각일까? 

 박세훈 목사(해미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