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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을 가지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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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30일 (토) 20:14:44 [조회수 :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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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8절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

 

가. 예수님은 사죄의 권세를 가지셨다.

2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본문은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자신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칠 능력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까지 갖고 계신다. 병자를 고쳐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죄 사함의 권세를 언급하신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 예수님이 병자에게 죄 사함을 언급한 것이 죄 때문에 병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죄 때문에 벌을 받아서 병에 걸릴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병이 죄 때문은 아니다. 예수님은 치유의 능력뿐만 아니라 죄 사함의 권세를 갖고 계심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세가 신앙의 본질이다.

* 8절에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사람에게’(복수)는 예수님이 아니다. 이것은 무리가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세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죄 사함을 찬양해야 한다.

 

나.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하면 안 된다.

3절,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 이 말은 예수님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이 보인 반응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죄 사함의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구약에서 죄 사함의 권세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라고 하였다.

* 여기서 ‘신성을 모독하다’라는 비난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2:7)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비난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난을 ‘악한 생각’이라고 하셨다(4절).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해야 한다.

*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또한 참 사람이시다. 거룩한 하나님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영지주의의 주장은 일찍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또한 다원주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단지 훌륭한 성현 중의 하나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으로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계신다.

 

다. 예수님의 사죄의 권세를 확신하라.

5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 예수님은 자신의 사죄의 권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물으셨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이 더 쉽다. 아무도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예수님은 치유의 능력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사죄의 권세까지 확신하게 만드셨다.

*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일차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실행되었다. 그는 곤경을 당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마14:14, 막5:19, 등). 또한 주님은 치유의 능력을 보이시며 그의 신성과 사죄의 권세를 알리려는 목적을 갖고 계셨다. 본문의 6절의 말씀을 참조하라.

*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히4:9)이 되신다고 소개하였다.

 

라. 구원의 확신이 삶을 건강하게 한다.

7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 예수님은 중풍병자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고, 그는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중풍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죄를 사하심으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중풍병자는 육신의 건강과 더불어 구원의 확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육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회복을 통하여 건강한 삶을 살게 하신다.

* 구원의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단에는 문제가 많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녀가 자녀답게 되어야 상속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녀답게 사는 일에 힘써야 한다.

* 구원의 확신이 방종으로 귀결되면 안 된다. 또한 구원의 확신이 단순한 기쁨으로 끝나도 안 된다. 구원의 확신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는 단계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로 인하여 구원의 확신이 성도들의 성화로 연결된다. 즉 올바른 구원의 확신은 성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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