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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들의 무분별한 언행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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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27일 (수) 20:14:01
최종편집 : 2021년 04월 17일 (토) 04:32:18 [조회수 :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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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산책을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BTJ열방센터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코로나 19는 우리의 DNA를 바꾸어 놓으려는 음모라는 것을 알리려고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한때 신천지가 지탄받을 때는 이만희 지지자들이 길거리에 나오고, 전광훈에 대한 비판이 한창일 때는 전광훈 지지자들이 나오더니. 이제 BTJ열방센터가 구설수에 오르자 최바울 지지자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자기들이 옳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엊그제까지는 BTJ열방센터 문제로 떠들썩했는데, 이제는 대전, 홍천, 광주에 있는 IM선교회 산하의 학교들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게 많은 확진자가 나오는 것은 그들이 방역 조치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3밀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찬송하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기독교 단체들이 왜 이렇게 정부의 코로나 19 방역 조치에 비협조적인지, 교회 지도자들이 왜 이렇게 분별이 없는지 BTJ열방센터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인터콥이 생각하는 정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인터콥이 운영하는 BTJ열방센터가 정부의 코로나 19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아서 매스컴을 탔었다. 이런 일은 국가에는 물론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열방센터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인터콥에서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 즉 적그리스도를 세계를 장악한 지배 권력으로 본다. 그리고 이 지배 권력은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BTJ열방센터의 최바울 선교사가 빌게이츠를 비롯한 거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코로나 19를 퍼뜨렸다고, 그들이 고의로 코로나 19를 퍼뜨린 목적은 교회와 교인들을 통제하고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을 사탄의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바울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빌게이츠 같은 재벌들이 코로나 19 백신을 생산하는 것은 인간의 DNA를 조작해서 인간을 그들에게 복종하는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들은 정부가 코로나 19 방역을 강조하는 것은 위장된 슬로건에 불과하다고, 대면 예배를 금하는 데서 정부가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코로나 19 백신을 도입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니 정부가 사탄의 세력이라는 것이 분명하단다.

그래서 열방센터에서는 정부가 금하는 대규모 집회를 계속 가질 뿐 아니라,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코로나나 19 검사를 받지 말고 백신도 맞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요한이 네로에게 모진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 계시록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계시록에 짐승으로 나오는 적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네로를 가리킨다고 한다. 후대에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에 기독교를 박해하는 기관이나 사람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 부흥사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적그리스도라고 말했다. 

지금 인터콥에서 자본주의가 사탄의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물질주의를 경계하시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현대 교회가 물질주의로 인해서 타락해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가, 네로가 기독교인들에게 했듯이, 기독교를 박해하거나 대적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오히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덕을 보며 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빌게이츠를 비롯한 거대 기업의 총수들이 코로나 19를 만들어 냈고, 그들이 만든 백신을 맞으면 인간의 DNA가 바뀌어서 그들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서도 의학자들을 통해서도 코로나 19에 관한 거대 재벌들의 음모론을 들어본 일이 없다.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이 가짜 뉴스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이 이런 허무맹랑한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람들의 귀에는 정부에서 국민에게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서 협조해달라고 호소하는 소리가 역겹게 들릴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정부의 요청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방역 조치를 따르지 말라고 선동한다.

이런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분별력이 없지만, 이런 가짜 뉴스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교인들 역시 분별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 교회의 다수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이 정도의 수준이니 안타깝다.
 
최바울의 인터콥 외에도 그동안 이만희의 신천지,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에서 분별없는 지도자들의 지시에 따라서 코로나 19 방역 조치를 지키지 않은 결과 확진자가 많이 나왔다. 그리고 요즘은 IM선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들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크고 작은 교회들에서 확진자들이 계속 나온다.

불교나 가톨릭에서는 확진자가 별로 나오지 않는데, 개신교에서만 다수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19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개신교에게 크게 실망할 만하다. 그렇지 않아도 불교나 가톨릭에 비해서 개신교의 사회적 신인도가 낮다. 그런데 코로나 19 사태에서 개신교에서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교회의 신인도는 더욱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코로나 19 사태 후에는 교인수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성경과 이분법적 사고

여러 교회가 정부의 방역 조치를 따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교회의 탈사회적 태도 때문이다. 우리는 영을 중시하고 육을 무시하라는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면서 이 세상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속한 정부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할 때, 교회에서는 정부를 사탄의 세력으로 간주해서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탈사회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하신 이 세상을 우리가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해서 탈사회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만드시고 그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으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육체는 영혼이 거하는 집이다. 따라서 육체 없이 영혼을 생각할 수 없다. 영혼을 외면하고 육체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육체를 외면하면서 영혼만을 중시해도 안 된다.

천국과 세상, 영과 육을 구분하고 세상이나 육을 무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하늘에 있는 이데아를 중시하면서 이데아의 모방인 이 세상의 사물을 불완전한 것이라고 본 플라톤의 철학에서 시작되었다. 그 철학이 교부시대의 기독교 신학에 일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울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기반을 둔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간주했고 영지주의로부터 교회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교부들처럼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나 하나님 사랑에 몰두하면서 이웃을 외면한 유대인들처럼 기독교인들은 곧잘 영의 세계를 강조하면서 육이나 이 세상을 외면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기독교에는 영과 육, 천국과 세상의 구별과 달리 믿음과 행위를 구별하여 믿음을 중시하고 행위를 외면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 루터는 행위를 중시하는 가톨릭의 교리를 반대하면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옳지만, 그가 믿는 자에게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말한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야고보서를 쓰레기라고 했다.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믿음에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고, 즉 믿는 자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루터가 믿음과 행위를 대조시키면서 행위는 무가치하다고 본 것은 성경의 내용과 다르다.

성경에는 신구약을 가릴 것 없이 행위를 요구하는 구절들이 수없이 많다. 루터는 바울의 로마서에서 믿음에 관한 그의 주장의 근거를 찾아냈지만, 로마서 안에도 특히 12장 이하에서 ‘선을 행하라’ 혹은 ‘이웃을 사랑하라’ 같이 행위를 요구하는 구절이 많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등에서도 행위를 요구하면서 “너회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 5:16)라고 말했다.  

바울이 믿음을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믿는 자는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믿음과 행위가 대립하지 않고 보완관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믿는 자에게는 행함이 있어야 하고 믿음이 없이 행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성경은 이분법적 사고가 적용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마치면서

요즘 선교사를 양성하는 BTJ열방센터나 IM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선교사들의 탈사회적 태도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복음 선포를 위해서 세상 것을 모두 내려놓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정부가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요구하는 방역 조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세상 것을 모두 내려놓는 선교사들의 소명의식은 가상하지만, 그들이 탈사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분별없는 행동이다. 천국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중요하다. 지금 IM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여러 대안학교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천국만을 바라보고 세상을 멀리하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지옥에 가기도 하고 천국에 가기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은 아주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지금 온 나라가 코로나 19로 고통당하는 비상시국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집회의 자유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지금 온 국민이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유보하고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정부의 방역 조치에 협력하고 있다. 

이런 때에 교인들이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를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극히 이기적인 행동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외면하는 무분별한 행동이다. 교인들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서 개신교의 사회적 신인도가 더욱 낮아질 것이고 교인 수는 더욱 감소할 것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고 말했다(고전 10:23-24). 기독교인은 교회 밖 사람들보다 더 겸손하고 더 양보하고 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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