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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는 진정 개혁으로 나아갈 것인가?마리아 발현 추종세력들이 문제, 천주교에도 종교개혁 지지자들 있어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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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12일 (일) 00:00:00 [조회수 :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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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 스스로 부정돼야

16세기 종교개혁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 천주교회 고위 성직자들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있었다. 이것의 예를 천주교회의 교회사가들이 가장 많이 드는 인물이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Clemens Maria Hofbauer, 1751~1820)로 그들의 성인 반열에 오른 이른바 ‘성인(聖人)’이다. 그는 지성 구세주회의 알프스 북부지방 책임자였고 오늘날 ‘비엔나의 사도’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1787년부터 21년 동안 폴란드의 바르샤바 독일인 거주지에서 사목자 겸 교황사절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
그가 거기에서 비엔나로 돌아온 뒤 바르샤바의 사목생활을 회상하면서 쓴 한 서신을 남겼는데 거기에서 그는 “저는 교황 사절로서 폴란드의 가톨릭 신도들의 상태와 독일에 있는 개신교의 상황을 비교하는 입장에 있은 이후로 독일민족이 교회에서 이탈하여 나간 것은 그들이 종교적 백성이 되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단자들이나 철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내적 종교를 절실하게 추구하던 경건한 이들에 의해서 뿌리를 내리고 전파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교황과 로마의 추기경들에게 말씀드렸지만 그분들은 저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종교개혁의 원인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증오였다고 고집하여 주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이 편지는 1816년 9월18일에 쓰여져서 한 출판업자에게 보내진 것이다.

이 천주교회의 성인에 대하여 현대 독일의 교회사학자 아우구스트 프란츤 신부는 그의 ‘교회사’(분도출판사) 286쪽에서 “성 글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1820)가 ‘종교개혁은 독일 사람들이 열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평가 하고 있다.

필자는 1977년 성탄 전날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햇병아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당시 마르틴 루터나 캘빈 등에 대하여 무척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후 당시 한국 모 수도회 최고 책임자 박모 신부를 서울 우이동 명상의 집 피정센터(예수고난회에서 운영)에서 만났는데 그때 그는 “루터가 옳았다. 믿음으로써 의로와지는 게 맞다.”고 말하여서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그는 폴란드 출신 미국인인데 한국어에 도가 튼 천주교 신부이다. 그는 지금 강원도 모처에서 살고 있다.

1963년 9월2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제2회기 개막식에 참관인 자격으로 나온 정교회측 인사들에게와 1963년 10월17일 프로테스탄트측 인사들과 동석한 모임에서 이들에게 교황 바오로(Paulus, 1963~1978) 6세는 “우리에게 교계의 분열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우리 가톨릭교회는 하나님께 뿐 아니라 우리한테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갈라진 형제들에게도 용서를 청합니다.

우리 편에서 가톨릭교회가 받은 피해를 즐거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오랜 기간의 분쟁을 통해서 받은 고통을 잊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선언을 받아 주시고 우리 모두가 참다운 형제적 평화를 되찾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선언하였다.

1974년 미국의 천주교회와 루터교회는 서로가 합의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그 선언문 중에는 천주교회가 그들의 초대 로마<주교>[감독](교황)라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주장해오고 있는 사도 베드로에 관하여 “베드로가 로마에 갔었고 그곳에서 순교했다는 데에 사람들의 의견이 갈수록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일찍히 우두머리 혹은 <주교>[감독]으로서 로마지역 교회를 통괄했다는 것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신약성경으로부터도 로마에서의 베드로 후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찾아 읽을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져>[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을 캘빈이 16세기에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분명히 언급한 바가 있다.

캘빈은 자신의 ‘기독교 강요’에서 자신도 고대교회의 <주교(감독)>
[감독(주교)] 제도를 찬성한다고 여러번 밝혔다. 이와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천주교회는 진리와 역사적 사실에 가까와지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이러한 노력에 역행하는 반동세력이 천주교회 안에 적지 않다. 그들은 다름아닌 사이비 마리아 발현 추종세력들이다.

작금 천주교회는 자기들의 과거 잘못들을 감추거나 교언영색과 감언이설로 합리화시키는데 도사들이다. 그러므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작품들은 일점일획 수정됨이 없이 지금도 각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지만, 16세기 교황주의자(예, 존 엑크 신부)들의 저서들의 번역판들은 우리나라에서 눈을 씻고 볼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에는 천주교회가 의인(의화, justification)에 있어서 믿음(신앙)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것의 증거는 1530년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20조 ‘믿음과 선행에 관하여’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거기에는 “이 밖에도 그들(주, 교황주의자)은 이제까지 전적으로 침묵을 지켜온 신앙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행위만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그들이 가르치기는 하지만 아직도 믿음과 선행을 결합시키며 또한 믿음과 행위로써 의롭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전의 것보다는 퍽 나은 편이며, 그들의 옛 교리에 비하여 다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주요한 교리가 되어야 할 신앙에 관한 가르침이 믿음의 의에 관한 설교 가운데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오랜 동안 계속되었으며, 오직 행위의 교리만이 교회 안에서 취급되어 왔습니다.”라고 기록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의인(의화) 문제에 있어서 1999년 10월31일 종교개혁 기념일에 루터교회와 루터의 <것으로>[의인교리로] 공식합의<하였다>[한 바 있다](조선 99.11.2 8면, 동아 99.11.2 A11, 평화 99.11.7 1면톱. 11.7 일반 11.7. 사설 99.6.20. 1면톱. 6.20일반 등).

필자 주 / 위 글 중 <...>는 교회연합신문 발행인 강춘오가 제 멋대로 내 원고를 삭제시킨 부분이고 [...]는 강춘오가 자기 마음대로 내 원고에 만들어 넣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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