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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손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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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19일 (화) 22:51:37 [조회수 : 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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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린다. 며칠 전 내린 눈도 함박눈이었다. 밤새 소복이 내린 눈은 아직 산과 들과 지붕에 남아있다. 눈은 비에 비해 땅에 스며드는 것이 적다고 하지만, 겨울은 춥고 눈이 많아야 그해 농사가 풍년이라 하니 이 말에 의지하여 올 농사를 살짝 기대해본다. 

‘똥손’ 마이너스의 손, 손재주가 없다는 것을 일컫는다. 내 손이 바로 똥손이다. 특히 그리기, 색칠하기, 만들기, 바느질, 수예처럼 미술과 관련된 것에는 완전히 잼병이다. 그래서 스케치를 잘하는 사람, 바느질 잘하는 사람, 색을 조화롭게 섞는 사람이 부럽다. 나도 몇 번 스케치도 해보고 바느질도 해보고 칠도 해보긴 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똥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미술 시간에 수채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대상은 학교 건물이었다. 2층짜리 교실을 스케치하고 색을 칠했는데 영 자신이 없었다. 건물 하나 그리는데 도화지를 몇 장 버렸는지 모른다. 결국엔 시간에 쫒겨 겨우 그려내고 색을 입히긴 하였으나, 평가시간에 선생님이 창문이 왜 이리 크냐? 창문에서 뛰어내려도 괜찮겠다고 하자 급우들도 덩달아 깔깔대며 웃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도 있는데 그 이후로 난 그림과는 완전 이별을 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악착같이(?) 그렸어야 했다. 

미술 선생님과 급우들의 웃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상처였나보다. 그 잔영에서 해방하기 위해 몇 번의 시도를 해봤지만 –20대 초반에 직접 미술학원도 다녔고 컴퓨터 디자인 학원도 다녔다.- 번번이 미끄러졌다. 창의력 제로, 색칠 감각 제로, 미술의 가장 기본인 원근 명암 그리기도 제로였다. 그때의 미술 선생님도 옆에 있었던 친구의 그림엔 엄청 공을 들여 칭찬을 하다가도 나의 그림을 보면 그냥 지나쳤다. 재료만 잔뜩 사서 폼만 잡았다가 이 또한 몇 개월 못가 그만두었다. 아, 역시 나의 손은 똥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때도 진득하니 그림에 매진했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세잔을 좋아한다. 색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어두운 듯 하나 밝고, 가벼운 듯 하나 무겁고, 담백한 듯 하나 화려하다. 화면 가득 그림 대상이 꽉 차 있는 표현이 나에겐 중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렇듯이 세잔도 그림 소재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어 그것들을 배워가며 보는 맛도 꽤 즐겁게 한다. 신학교 시절, 그림에 꽤 눈썰미가 있었던 친구 덕분에 서울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그림을 종종 보러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는 날이면 친구는 환한 얼굴로 내 얼굴에 티켓 두 장을 흔들었다. 그런 날이면 수업마치는 종이 끝나자마자 덕수궁 돌담길이 있는 정동으로 향했다. 그렇게 똥손 탈출은 그림 감상으로 잠시 대신할 수 있었다. 

요즘 새로운 똥손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기회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웃에 사는 미술 선생님의 고마운 유혹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민화 그리기다. 매주 토요일 오후 세시간 정도 투자하여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 또한 역시 ‘나의 손은 똥손이로소이다.’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빨간 모란을 피우고 싶어 모란 꽃본을 그린 뒤, 색을 입히기 시작한 지 어언 두어 달 되었을까. 민화의 색 발림은 많은 공이 필요하다. 한 번의 칠이 아닌 여러 번의 칠이 덧입혀지고, 색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다 하고 난 뒤 다음에 보면 다시 칠을 해야 할 곳이 보였다. 작은 그림 한 장 끝내는데 인내가 필요하다. 시작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모란꽃 세 송이를 환하게 피우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똥손 탈출에 대한 초조한 기대는 내려놓는게 상책이다. 오히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꾸준히 그리며 기다려야 똥손 탈출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내 책상 위에는 그림 그리는 법, 목공 기초, 가든하우스 만들기, 위빙 기초 등 기술 및 미술 관련한 책들이 있다. 똥손 탈출을 위해 그간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모은 것이 어느새 각 분야마다 하나씩 채워졌다. 요즘은 책도 잘 나왔고, 유투브 설명도 잘 되어 있어서 그대로 따라하면 나름 괜찮다. 이런 책들을 보면 똥손 탈출을 위한 내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설령 똥손 탈출을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시작한 것이기에 작품이 아니어도 만족한다. 하다가 안되면 쉬어가고, 그래도 못하면 다른 것을 만들면 된다. 어린 시절처럼 굳이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을 만큼 난 컸으니까. 그래도 똥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다면 나쁠 것도 없지. 하하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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