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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동문서답, 하박국의 자문자답” 하박국1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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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12일 (화) 17:31:32 [조회수 :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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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동문서답, 하박국의 자문자답” 하박국1장

 

1.하박국의 기도(의뢰)

 

① (2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하나님을 향한 하박국의 애타는 절규다. 절규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강포로 인하여’ 남 유다가 처한 시대적인 내우외환의 위기로 인한 절망이다. 외적으로는 강대국 ‘바벨론의 압제’ 때문이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던 요시아의 죽음으로 야기된 남 유다의 실질적인 ‘주권상실(하나님통치의 실종)’이다. 하지만 하박국이 절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왜 이런 강포가 계속되는 지에 대한 의문이다. 단지 절망적인 상황 때문이 아니라 신앙적인 이유였다. 단순한 고통에 탄식이 아니라 믿음의 간구(의뢰)다. 하박국은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통치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통치가 속히 이루어지길,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음으로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박국이 던진 질문의 핵심은 ‘어느 때까지리이까’ 언제 끝나는지,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믿음의 기도다.

 

② (3절)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 바벨론제국의 강포로 인해 벌어지는 구체적인 현실을 ‘간악과 패역, 겁탈과 강포’로 정의한다. 하나님을 떠난 악한 권력자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폭력적으로 자행된 폐위와 옹립을 반복하는 왕권침탈(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을 가리킨다. ‘변론과 분쟁’ 왕권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암투와 분쟁이다.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인 왕은 여호와 하나님 한분뿐인 것처럼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지난 12년 동안 반복되고 있는 감리교회 감독회장 소송전의 본질은 하나님의 주권이 상실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③ (4절)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라”

▶ ‘이러므로’ 바벨론의 강포로 인해 주권, 곧 하나님의 통치권을 상실한 남 유다의 실상이다. ‘율법의 해이’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마비로 인한 무감각이다.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을 떠난 삶의 필연적인 결과다.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뜻대로가 아니라 멋대로 행하는 무질서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방귀뀐 놈이 성을 내며 다수의 횡포로 악인과 의인이 뒤바뀌는 적반하장의 논리다. 감독회장선거소송을 앞두고 ‘감독회의 성명서’와 ‘평신도단체장 성명서’의 요지는 역대 최다 득표를 내세우며 공명선거를 외치는 이에게 ‘화합과 안정’을 위해 송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파렴치한 일이다. 불법선거로 얻은 다 득표에는 정당성도 없고 도리어 그 행위가 화합과 안정을 깨뜨리는 원흉인 까닭이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종된 혼미한 현실에 대한 탄식과 절규다.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내버려두실 것입니까! 하나님의 판가름을 애타게 간청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응답(계획)

 

① (5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찌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 ‘어느 때까지리이까’, ‘구원치 아니하시니이까’라는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바로 지금, 구원하고 계신 다’고 응답하신다.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찌어다’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이어지는 바벨론에 의한 남 유다의 연속적인 멸망사건을 가리킨다. 바벨론에 의한 남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바벨론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 곧 하나님이 택하신 징계의 도구다. 지금 벌어지는 남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섭리 가운데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예언자(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요엘, 아모스, 미가 등)를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셨으나 회개하지 않아서 벌어진 자업자득의 결과다. 바벨론을 통해서 남 유다를 멸망시키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실현되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부분적인 수리인 리모델링(Remodeling)이 아니라 창조적인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통한 재건축인 까닭이다. 얼핏 보면 ‘동문서답’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하박국의 구원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응답이다.

 

② (6절~10절)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 ‘갈대아 사람’은 하나님의 막대기인 바벨론제국을 가리킨다. 강력하고 무자비한 바벨론제국에 의한 남 유다의 멸망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거룩한 예루살렘성전이 느브갓네살에게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무참하게 무너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참하게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열국에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다. 이 모든 일의 근본원인은 힘이 없고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왕 되신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왕 되신 하나님께서 친히 허락하신 일이다. 감리교회가 사회법정의 판결에 의해 좌우되는 비참한 현실은, 마치 남 유다가 주권을 잃고 바벨론에 포로된 것처럼 주님의 교회가 사회법에 포로된 것과 같다. 엄밀하게 보면 사회법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세운 교회법(교리와 장정)대로 심판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년 동안 금권선거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선거법을 개정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제비뽑기’는 단순히 선거방식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께 통치권(결정권)을 돌려드리는 일이다. 돌이켜 하나님의 통치권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혼란과 소송은 계속될 것이고 앞선 감독회장들처럼 현재 감독회장도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남 애기할 게 아니라, 회개치 않는 모든 자들에게 벌어질 피할 수 없는 슬픈 숙명이다.

 

③ (11절) “그들은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 남 유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성전을 파괴한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일 뿐 심판의 주관자가 아니다. 심판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잠시 허용하셨을 뿐이다. ‘그들은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바벨론제국의 정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오만, 자기를 과신하는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바벨론제국이 천하만국을 얻은 듯이 승승장구해서 교만하지만 때가 이르면 마침내 하나님이 바벨론도 심판하시고 치리하실 것을 예고하신다. 창세기의 바벨탑은 오만의 상징이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필패한다. 위기를 핑계로 금권타락선거를 묵인하거나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모면하려고 하면 안 된다. 또한 법원의 판결문을 앞세워 칼자루를 쥐고 정치적으로 야합하거나 사리사욕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오직 ‘금권선거’를 참회하고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3. 하박국의 청원(간청)

 

① (12절)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시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 하박국은 자신의 던진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고 ‘자문자답’을 하고 있다. ‘주께서 경계하시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징계의 도구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을 무너뜨리시고 타락한 백성이 포로가 되어 흩어지게 하신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징계이며, 또한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하박국이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흥하게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망하게도 하시는 삶의 주관자시다. 이전에 솔로몬을 통해 예루살렘성전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제 느브갓네살을 통해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② (13절)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 한국교회는 130년 선교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밖으로는 ‘코로나19사태’와 안으로는 ‘감독회장사태’와 같은 온갖 부정과 불법이 판을 치는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적어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신다고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전대미문의 재난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전대미문의 재난은 한국교회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조율이다. ‘악과 패역을 오래 참으셨던 하나님께서 마침내 손을 펼쳐 징계하시는 사건’이다. 결코 우연이 아닌 섭리이며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교회 문을 닫으시고 교회공동체를 흩으신 것이다. 거룩한 교회가 법정에 휘둘려서 수치를 당하도록 내버려두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다. 위기의 근본원인은 코로나바이러스나 선거소송전이 따위가 아니다. 때문에 코로나19의 위기나 법정에 포로가 된 감리교회의 치욕적인 현실을 불의를 덮는 기회나 ‘화합과 안정’을 위한 명분으로 삼아선 안 될 일이다. 이제라도 금권타락선거풍토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제비뽑기’로 선거제도를 개정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기회로 삼아야 마땅하다.

 

③ (14절~17절)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육함이 옳으니이까”

▶ 하박국의 간곡한 ‘청원’이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선처를 구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징계와 구원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피해가 너무 극심하기에 살길을 열어주시길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계임을 알지만 그로 인한 결과가 너무 아프고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도 환란으로 인한 고통에서 예외는 아니다. (창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박국은 하나님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 간구하고 있다. ‘어찌하여’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하박국의 청원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의 청원과, ‘어찌하여’라는 단어와 내용에서 일맥상통한다.

▶ (출32:9~14)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라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 하나님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그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첫 번째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우상숭배를 저질렀던 출애굽백성은 죄로 인해 죽어 마땅했다. 하지만 모세의 청원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시고 살길을 열어주셨다.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세처럼 언약을 붙잡고 하박국처럼 진노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다른 살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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