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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시작하며
이 나이에 무슨 특별한 신년각오(New Year Resolution)나
신년계획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작심 삼일' 이라는 옛말은 바로 나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미래를 담보로 내건 나의 각오들은 3일도 채 넘지기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탓으로 맹세 같은 것들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나의 평소 생활신조다.
얼마전에 케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보, 만일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어 하늘나라에 간다면,
하늘나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꺼야?, 아니면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할꺼야?" 전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엉뚱한
질문이었다.
............................
"그런 미래 일을 내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 하고 대충
얼머무렸더니 케롤이,
"그럴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 말이 맞았어. 남자들은 여자를 앞에
10명 대려다 놓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도둑놈들이라고
했어!" 하며 사기꾼! 나쁜놈! 배신자! " 하고 펄펄 뛰었다.
적당히 거짓 맹세라도 하고 지나갈껄! 내가 바보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네 자신을
두고도 절대로 맹세를 하지 말라."고 명했잖아! 하며 맞섰다.
케롤과 나 사이의 신앙적인 대화는 대부분이 "네가 예수냐?" "내가 예수냐?" 하고 고성을 지르며
그 막을 내리곤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암튼, 나는 "미래를 두고 맹세하지 말라." 는 예수님의
가르침만큼은 실천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신앙인이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런 바램도 없이 신년을 시작한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 혼자서 샤핑센터에 들려 케롤과 나, 제임스 부부용 커풀잉 사츠 두벌을 산 후,
나를 위한 선물로 등산용 신발 두 컬레를 샀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 때문에 아직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년초에 읽을 책들도 20여권 인터넷을 통해 주문했다.
올해는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많이 사유와 명상을
하며, 더 많이 노래도 부르고, 더 많이 글을 쓰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읽었던 책들의 제목들 중에서 두가지
책 제목을 신년에 살아가고 싶은 내 마음자세로 택했다.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케토릭 베네딕토 수도원 원장, 안잴름 그륀 신부 저)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일본 노트르담 성심여대 교수겸 학장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 저)
생각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나는 이미 신으로부터 분이 넘치도록 받은 사람이다.
이제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의 나로
피어날 일만 남아있다.
매년 년말이나 년초에 빼놓치 않고 읽는 시가 한편있다.
15여년 전에 읽었던 책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 (잭켄필드, 마크 한센 공저, 류시화 번역)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뉴욕 시 E 34th St 400번지 '장애인 의료협회 회관' 응접실 벽, 청동 명판에 세겨진 시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시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허함을 배우도록.
나는 건강을 부탁했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허약함을 선물 받았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는 부유함을 원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가난함을 선물 받았다.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나는 힘을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열등함을 선물 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모든 것을 갖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삶을 선물 받았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들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선물 받았다.
나는 하찮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나는 모든 사람을 가운데서 가장 축복받은 자이로다!
1/5/2021
올 사업을 시작한 첫날 저녁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