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천년 동안 아기 예수의 탄생은 숱한 작품을 통해 기억을 전승해 왔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도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를 통해 경건하게 성탄의 의미를 이해한다. 어머니와 아기는 가장 흔한 모델이다. 대개 왕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리지만, 소박한 차림의 ‘성 모자(母子) 상’도 얼마든지 있다.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성 모자 상’ 초기 작품은 1190년 시칠리아의 몬레알레 예배당의 모자이크 벽화로 ‘그리스도,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성자들’이다. 한동안 동방의 교회는 형상숭배를 금지한 적도 있었으나, 정교회의 대표적인 성화작품 ‘이콘’을 보면 찬란한 비잔틴 미술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서방 로마를 중심으로 중세시대를 관통해 온 라틴어 교회의 전통이든, 십자군 이후 이슬람과 맞서 동방 콘스탄티노플을 토대로 발전시킨 그리스어 교회의 전통이든, 양대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예술작품과 교회건축은 유럽이 남긴 세계유산과 인류의 영적 자산을 실감케 한다. 현재까지 잇는 그 영감의 뿌리는 바로 ‘성 모자 상’이다.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로 상징되는 그리스도교 미술은 결코 과거의 유물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예술작품은 근대와 현대 미술의 원형질을 이루어 왔는데, 독일의 현대 미술작가 케테 콜비츠(1867~1945년) 역시 자신의 작품세계의 토대가 그 거룩한 아름다움과 슬픔의 미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실토한다.

  콜비츠의 대표적 작품인 ‘모자 상’은 지금도 독일 베를린의 옛 동독지역 알렉산더 광장에 보존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쟁의 참화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설치했던 ‘기억의 불’이 있던 그 자리에 ‘어머니와 아들 상’을 전시한 것이다. 콜비츠가 표현하려고 했던 현대의 ‘고난’은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의 슬픔과 무관하지 않다. 

  케테 콜비츠 연구자들은 그의 작품들이 1499년에 완성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과 연결선을 갖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작가 자신이 여성이어서일까? 작품의 주제는 대개 ‘어머니와 아들, 이별, 가족, 아이들, 기다림’을 주제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전쟁의 비극과 극심한 가난이 자리 잡고 있다. 2천 년 전 어머니와 아기가 겪은 수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표정을 한 ‘성 모자 상’은 모든 인간이 공감하고 연민했던 영원한 주제가 되었다. 

  성탄의 아침이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몫을 세상을 위해 선물하신 날이라면, 성 금요일 오후는 어머니의 남은 희망까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거두어 가신 날이다. 따스한 눈빛으로 응시한 아기 예수를 뉘인 구유상(Krippe)과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은 채 슬픈 얼굴로 고개를 떨군 모자상(Pieta)은 어머니의 기쁨과 절망을 뚜렷이 대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신앙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신비이자 동시에 현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새해는 성탄절기 중에 맞는다. 요한복음은 성탄을 이렇게 전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성탄은 어둠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증언한다. 흑암 같은 그늘 속에 사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이었다. 복음은 그 어둠과 좌절, 깊은 슬픔과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리라는 소식이다. 성탄, 곧 참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어리고, 가장 비천하게 태어난 아기가 어슷비슷한 처지의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는 뉴스는 인류 최고의 소식이었다. 놀라운 역설은 신화 같은 출생이 아닌, 신비한 하나님의 방식 때문이다. 비록 어둠이 깊고, 가짜뉴스는 판을 치지만 지금도 환한 얼굴로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요 1:5,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