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여러 만남이 있고 또 헤어짐이 있다. 가장 크고 중요한 만남으로 부모님의 만남과 자녀손의 만남이 있다. 부부와 애인의 만남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만남은 우리를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한다. 가끔은 불편하고 슬프고 가슴깊이 아픈 흔적과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 슬픔과 아픔들이 반드시 나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때론 의지와 강한 극복의 원인으로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에는 자연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자라 온 배경이 깊은 산과 숲인지 물결 철썩이는 넓은 바다인지 해 뜨고 지는 지평선의 어느 평야인지도 중요하다. 왁자지껄한 저잣거리의 한 가운데인지 사찰과 수도원 같은 적요한 공간인지도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꽃 한 묶음, 어느 하나 그 냥 사라져 버리는 것은 없다. 길에서 만난 나무 위의 새와 초겨울 창공을 나는 철새 떼들도 시간과 우리가 사는 공간의 숨은 뜻을 주고 있다.

초중고 시절 만난 선생님의 엄격하고 때론 다정한 얼굴은 두고두고 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조회시간에 운동장에서 설파하시는 교장선생님의 훈시는 이후 젊은 날, 장년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 까지 값진 교훈으로 머리에 새겨진다. 등하굣길을 같이하던 친구들과의 대화와 장난들은 영원한 추억의 보고며, 외로울 때 되돌아갈 회귀의 처소들이 아닌가?

장성하여 이성에 눈을 뜨게 되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새로운 개안(開眼)을 낳게 된다. 사물이 달라지며 우주가 바뀌는 듯한 엄청난 변환의 순간들이 다가온다. 가치관과 사생관이 전환되기도 한다. 중고등 학교에서의 가슴 설레이던 먼 발치에서 바라 본 그대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뛰던 순간이던가?

베기오 다리에서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가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는 만나던 운명의 순간처럼 베르테르(Werthers)가 샤를 롯데(Lotte)를 공원의 어느 모퉁이에서 만나던 모습처럼 우리에겐 가슴 저미는 순간이 있다. 심장의 두근거리는 용솟음을 체감하던 시간이 있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가슴어디, 뼛속 어디에 천천히 스며들어 그리움이 되고 마침내 병이 되는 그런 만남과 스침이 있다.

모든 만남은 아름답다. 달과 구름의 만남도 그윽하고 나무와 바람의 스침도 다정하다. 풀잎과 이슬의 촉촉한 만남은 서로 자라고 꽃피게 한다. 시냇물과 돌멩이의 만남은 아름다운 노래를 자아내고, 저녁 안개와 새들의 만남은 하루를 보내고 쉼을 이어준다. 햇살과 땅의 만남으로 만상이 눈을 부비며 일어나 숨 쉬고 꽃피고 열매 맺는다.

우리의 삶에는 동시에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늘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간들이 있다. 구름에 달 가듯 스쳐 지나간 인연과 순간들이 있다. 그립고 아쉬운 사람과 공간들이 있다. 학예회 때 연극을 같이 하던 어린 시절의 친구와 여름성경학교 때 맛있는 옥수수를 주시던 선생님, 점심시간을 마치고 모두 학교 뒤 냇가로 나가 이를 닦으며 위생교육을 하시던 선생님, 교실 뒷면 전체에 모자이크로 우리 얼굴과 해바라기를 만들던 친구들. 모두 아쉽고 그리운 모습들이다.

대학 첫 미팅에서 수줍음으로 만나 제대로 말도 못하고 헤어진 뒷모습의 그대들, 어느 축제나 공연회에서 우연히 스친 멋진 얼굴들, 초등학교 친구들, 아름다운 그대들.

또한 우리는 스승과 책을 만난다.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은 위대한 역사와 인류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석가, 공자, 예수와 제자들과의 만남은 역사를 바꾸었다. 칸트와 루소의 만남, 톨스토이와 소로우의 만남, 마르크스와 레닌의 만남, 퇴계와 고봉, 화담과 황진이의 만남, 다산과 혜장의 만남 그리고 수많은 만남으로 우리의 삶은 이어져 간다.

더 큰 만남으로 우리는 신과의 만남 그리고 거대한 진리와의 만남과 깨달음을 들 수 있다. 그냥 한 번의 만남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뒤바꾸어 준 뇌성이나 벼락같은 만남과 심장을 파고드는 통증 같은 깊은 만남이 있다. 많은 경우 그런 만남은 자신의 위치와 추구하는 가치와 노력하는 염원 등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진리를 찾아 심산을 헤메는 이나, 사막이나 광야에서 금식으로 기도하는 이들에게 시원한 오아시스가 나타나고, 칠흑의 밤을 항해하는 선원에게 참과 진리의 광명이 나타날 것이다. 인간에게 만남은 일회적인 경우도 있으나 사계의 변화처럼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경우가 많다.한 번 가버린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버리기 보다는 기다리는 이에게 언젠가 다시 오게 마련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입새들 낙엽으로 쌓이고 벗은 나무들의 앙상하나 진실된 모습들사이로 흰 눈이 내릴 것이다. 추운 겨울을 지낸 기다림 뒤에 다시 따사로운 봄이 오고 종달이 노래하고 진달래 만개한 사월이 올 것이다. 어제의 떠남이 내일의 새로운 만남이 되고, 연말이 가면 또 새해가 올 것이다. 긴 밤의 동지 다음에는 소한, 대한 지나 입춘, 우수가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우리에게 새로운 만남은 늘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이고 더 큰 기쁨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를 따라 만물을 만나고 누리며 선을 행하며 영원을 사모하게 하심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 3:11~12)

 (인천기독교신문에도 기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