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거리에서나 말버로의 민요가 들려오고 여기저기서 델시머와 바이올린 소리도 들린다... 감정으로 충만한 베로나식 생활은 가난한 삶에도 부드러운 부위기를 드리워준다.”

괴테가 그의 유명한 고전 <이탈리아 기행>에서 베로나에 대해 언급한 글인데, 사실 베로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유럽의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요소가 도시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감성을 지니게 되었다.

▲ 사진 1. 베로나 풍경

괴테의 말처럼 도시 곳곳에서 민요가 들리고 악기 소리가 들리는 것은 이 도시가 바로 오페라의 본고장이라는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멋진 오페라 공연이 여름 두 달 간 계속해서 열리기 때문인데, 한 번이라도 베로나에서 열리는 오페라를 봤다면 그 감동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매년 여름 베로나 행 티켓을 끊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다.

▲ 사진 2. 위에서 바라본 베로나

오페라 공연은 베로나의 아레나(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데, 이곳은 로마의 아레나인 콜로세움이 지어졌던 때와 비슷한 시기, 약 2천 년 전에 지어졌다. 사실 아레나는 로마의 지배 하에 있던 유럽 곳곳에 지어졌기 때문에 특별할 것은 없지만, 베로나 아레나의 가치는 모든 아레나 중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데 있다.

▲ 사진 3. 아레나 정면

그런데 보존 상태보다 더 대단한 점은 아레나의 구조가 연극 혹은 오페라 공연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맨 뒤편 자리까지 잘 전달되는 데, 그 때문에 그다지 특별한 음향 장비 없이도 오페라 공연이 가능하다. 실제 필자가 오페라 공연을 봤을 때 맨 뒷자리 쪽에 있었으나 소리를 듣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 사진 4. 공연장 설치 전 아레나

매년 여름 아레나에서 오페라가 상영되기 시작하면 작은 도시 베로나는 오페라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여름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여행자들도 이에 가세하여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고, 베로나 시내에는 숙소가 없을 정도라 하니 그 명성과 위엄은 실로 대단하다.

▲ 사진 5. 오페라 공연 시작 전

베로나 아레나에서 공연한 첫 번째 오페라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13년 8월 10일에 올린 <아이다>였다. 그 뒤로 100년이 넘게 마리아 칼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파로티,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이곳 무대를 거쳤고, 이곳에서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유명 성악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권위 있는 무대가 되었다.

▲ 사진 6. 오페라 아이다 공연(1)

베로나의 오페라 축제는 매년 6월 셋째 주 주말에 시작해서 9월 초에 끝난다. 상연작으로는 <카르멘>, <토스카>, <나비 부인>, <라 트라비아타>, <일트로바토레>, <나부코>, <세빌랴의 이발사>, <투란도트> 등, 대작 4-5개를 돌아가면서 거의 매일 공연한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도 있으므로 만약 관람을 원한다면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 사진 7. 오페라 아이다 공연(2)

공연 관람료는 당연히 무대에 가까울수록 비싸고,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저렴하지만, 가장 저렴한 계단 비예약석도 평일 30유로 이상을 지불해야 하며, 주말이라면 10% 정도 비싸진다. 또한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갈라 공연은 티켓을 구매하기도 힘들다. 쾌적하게 공연을 보려면 예매는 필수니, 아레나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라.

▲ 사진 8. 오페라 아이다 공연(3)

아레나에서 공연되는 많은 오페라 중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필자가 오페라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데, 아레나에서 가장 많이 올리는 오페라, <아이다>, <카르멘>, <토스카>이다. 평소 오페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심도 있는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면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 가장 듣기도 보기도 좋아서 아니겠는가?

▲ 사진 8. 오페라 아이다 공연(4)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올해는 베로나 오페라 공연이 모두 취소되었다고 한다. 전쟁 때를 제외하고 한 번도 중단 된 적이 없던 공연을 멈춰 세울 정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무섭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항공사마다 일명 <목적지 없는 비행> 티켓이 연일 매진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여행과 경험을 갈망한다는 반증이다.

▲ 사진 10. 관중으로 꽉 찬 아레나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가야 한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그로 인한 고단한 삶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지만, 동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기억하며 인내로 살아남으시기 바란다. 그래야 베로나 오페라 같은 평생에 남을 멋진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날이 올 때까지 랜선으로 여행하며 잘 버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