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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의 치욕 속에 침략자를 위해 만든 탕수육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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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2월 08일 (화) 23:48:17 [조회수 : 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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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함께 중국집에서 잘 먹는 탕수육은 한국으로 건너온 화교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중국음식이다. 하지만 탕수육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탕수육은 19세기 중엽 청나라 말기 영국과 벌어진 아편전쟁에서의 패배의 비통함을 곱씹으며 탄생한 음식이다.

1840년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서양의 침략을 맞았다. 전쟁의 발달은 마약 때문이었다. 청나라의 차와 도자기, 비단을 광적으로 좋아한 영국인들이 매년 막대한 은을 투자하여 그것들을 사갔다. 해가 갈수록 그 양이 늘자 영국 정부는 청나라와 교역하면서 발생한 엄청난 무역 적자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영국의 적자는 1810년까지 은 2600만 냥이나 되었다.

영국은 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1816년부터 본격적으로 약으로 쓰이던 아편을 중국에 수출했다. 이미 16세기 무렵부터 중국에서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은밀히 파는 아편을 구해 환각제로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국의 아편수출은 계속 늘어나 1838년 무렵에는 무려 4만 상자에까지 이르렀다. 1816년에 5,000여 상자를 수출했던 것을 감안하며 엄청난 증가량이었다.

한 번 아편을 경험한 청나라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아편을 사서 밤낮 가리지 않고 피워댔다. 하층민들은 물론이고 군인이나 정부관리, 심지어는 승려들까지 아편에 중독되어 버렸다. 성인남녀 중 약 10분의 1이 아편에 중독되었다고 한다.

아편에 취했다가 강한 의지로 끊어낸 경험이 있는 청나라의 8대 황제인 도광제(道光帝)는 백성들이 모두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염려가 들었다. 도광제는 1839년 임칙서(林則徐)라는 사람을 발탁해 아편을 완전히 근절하도록 했다. 황제가 임칙서를 기용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동생이 아편을 피우다 죽은 일 때문에 아편과 아편을 파는 상인들을 극도로 증오했고, 아편을 중국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명을 받은 임칙서는 즉시 광저우로 내려가 광둥(廣東)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외국 상인들에게 공문을 보내서 지금 가지고 있는 아편을 모두 내놓고 다시는 중국에 아편을 들어오지 말 것이며 이것을 어길시 에는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영국 상인들이 아편을 내놓고 마카오로 가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해군 병사가 만취해서 임유희라는 중국인을 구타해 죽인 사건이 터져 청나라 백성들 사이에서는 반영감정이 들끓었다. 임유희 유족과 청나라 관리들은 그 영국 병사를 자신들이 처벌하려 했으나 영국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

이를 계기로 벌어진 갈등이 깊어져서 1840년 5월 영국의회는 청나라와의 전쟁을 공식 선포하고, 6월에 영국은 인도에 주둔하던 병력 4000명을 함대 18척에 나누어 중국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저우산군도(舟山群岛)에 상륙해 주둔해 있던 청나라 군사와 교전을 벌인 것이 ‘아편전쟁’의 시작이었다.

영국의 도발소식을 들은 도광제와 조정 대신들은 코웃음을 치며 걱정하지 않았으나 결과는 영국군의 대승이었다. 영국 함대는 중국 연해를 종횡무진 누비며 연안 도시들을 잇달아 점령해나갔고 급기야 황제가 있는 수도 베이징의 턱 밑인 톈진(天津)까지 쳐들어왔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도광제와 대신들은 1842년 8월 29일 정식으로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내용은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고, 광저우와 아모이, 푸저우, 닝보, 상하이 5개 항구 도시를 개항해 영국과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게 해주며, 전쟁에 들어간 비용 1,200만 냥과 몰수되어 폐기된 아편 배상금 600만 냥을 영국에 지불한다는 굴욕적인 항복의 내용이었다.

이제 자유롭게 무역을 하게 되자 장사를 통해 한 몫 단단히 잡아보려는 영국인들로 홍콩과 광저우 등지는 붐비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튼 기쁨도 잠시, 영국인들은 먹는 문제로 불편을 겪기 시작한다. 포크나 숟가락에 익숙한 영국인들로서는 젓가락을 써서 음식을 집어 들어 올리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영국인들은 슬슬 불만이 쌓였고, 이 문제를 중국 측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고심 끝에 중국인들은 영국인들 입맛에 맞고 서툰 젓가락질로도 잘 집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기로 했다. 육식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식성을 고려해서 돼지고기를 한 입 크기로 썰어 간장, 생강, 후추 따위로 간을 하고, 적당히 간이 베면 고기를 달걀흰자 푼 것과 녹말가루 푼물에 넣어 버무린 후 튀겨냈다. 그리고 그 위에 소스를 부었는데, 소스는 녹말가루를 푼 물에 설탕, 간장, 소금으로 간을 하고 버섯, 당근, 오이 등 볶은 채소와 식초를 넣어 함께 끓여 만들었다. ‘달고 신맛이 나는 고기’라는 뜻으로 이 음식을 탕수육(糖醋肉)이라고 정했다.

이 탕수육은 중국에 머무는 영국인들과 서양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끓었다. 중국 측도 이에 만족하여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탕수육을 자국의 대표 음식이라고 선전했다. 이후 탕수육은 19세기 말 인천 등지로 들어온 중국인들을 통해 조선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중국집에서 우리가 먹는 맛있는 탕수육은 아편전쟁의 치욕을 삼키며 침략자인 영국인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만들던 중국인들의 눈물속에서 탄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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