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다크 워터스》 (Dark Waters, 2019)

악은 집요하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악과 상대하고자 하는 이는 그에 필적할 만한 집요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요함과 성실함에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싸움을 걸지 않는 편이 덜 처참할 것이다. 영화 《다크 워터스》는 어쩌면 이 집요함과 성실함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그녀의 기념비적인 저서 『침묵의 봄』을 통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이 인간과 환경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녀의 경고가 불러일으킨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이제 성공적으로 그 시한이 다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돈만 된다면 생명이나 환경 따위 아랑곳 않는 거대기업들이 여전히 주변에는 지천이며, 더 큰 돈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과 공무원들에게 아낌없이 로비를 퍼붓는 대기업의 행태도 그리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레이첼 카슨의 업적은 환경주의와 개발주의, 생명과 자본 사이의 타협할 수 없는 싸움을 끝냈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침내 이 싸움이 시작되도록 했다는 데 있었다. 영화는 이 싸움이 여전히 치열한 싸움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998년.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인 듀폰사는 코팅 프라이팬의 재료가 되는 테프론(또는 테플론)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 테프론은 PFOA, 또는 C8라 불리는 독성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팅 프라이팬의 대표적인 제조사 ‘테팔’의 이름은 ‘테프론’과 ‘알루미늄’의 합성어다.) 영화는 이 독성폐기물로 인해 자신이 기르던 젖소 190마리의 떼죽음을 겪은 농장주가 변호사 롭 빌럿에게 대기업에 맞서는 소송을 의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화학물질의 독성이 동물에게만 영향을 미칠 리는 없다. 마을에서는 기형아가 출생하고 암을 비롯한 중증 질병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 변호사는 사악한 수단을 서슴지 않는, 끝도 보이지 않는 대기업과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1998년 시작된 사건은 2017년에야 비로소 결말을 맺는다. 무려 20년. 이 20년의 세월이 얼마나 많은 낙담과 좌절과 분노와 상처로 채워져 있는지를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집요하고 성실한 악에게 주인공은 자신의 집요함과 성실함으로 끝까지 맞선다.

삶의 편리함은 대가 없이 주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인간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인간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온 우주를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화학물질들을 생산해냈다. 레이첼 카슨의 말처럼 인간은 모든 생물체 중에서 유일하게 암 유발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존재다. 순수하게 이기적인 목적으로 행한 창조의 흉내는 목표했던 창조가 아니라 파괴라는 결과만을 낳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자막을 통하여 무시무시한 현실을 보여준다. “PFOA는 사실상 지구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혈액에 남아있다. 인간의 99%를 포함하여.” 인체에서 분해되지 않는 C8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사라지지 않은 채 영원히 전해진다. 그러나 영화는 의로운 싸움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실제로 변호사 롭 빌런 듀폰 이외에 3M 등과 같은 거대기업들과의 법적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집요하고 성실하게 지금도 싸우고 있다.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지금의 다윗은 작은 돌멩이가 아니라 무한한 인내와 성실을 갖추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건, 수돗물 발암 물질 검출 논란, 후쿠시마 오염수 해안 방류... 영화는 말한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악은 집요하고 성실하다고. 그러니 당신도 그런 각오가 필요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