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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수사, 선택적 판결, 선택적 정의, 선택적 보도, 선택적 설교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감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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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1월 19일 (목) 19:45:35
최종편집 : 2020년 11월 19일 (목) 19:55:07 [조회수 :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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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와 함께 우리 국민들은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언론의 선택적 보도로 인해 사실과 진실이 왜곡된 사회의 흐름속에 피로도가 증가된 체 살고 있습니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표창장 위조사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국방부 민원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하고 있는 것과 나경원 위원 장지원 의원의 딸 아들 수사와 국회에서 패스트 트랙 수사에 대해서는 우리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선택적 수사의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 유죄의 관행은 법전의 법조문과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중대한 범죄사실이라도 변호사의 로비위력?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갈라지는 것은 전관예우의 위력에 의한 부당한 판결입니다.

수백억 횡령한 사람과 수 만원 훔친 판결의 잣대는 같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빽 없고 돈 없는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고, 빽 있고, 돈 많은 사람은 무죄로 판결 받는 것은 판사가 선택적 판결을 하기 때문입니다. 법전과 판사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믿는 국민들은 얼마나 있을 까요? 그렇게 된다면 고액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도 필요 없을 것이고, 전관예우의 명망 있는 판검사의 전관예우 관행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오랜 관행으로 익숙한 모든 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개혁하는데 많은 장애와 벽이 있습니다. 국회의 적폐. 행정부의 적폐, 사법부의 적폐, 검찰의 적폐를 해소 하고 개혁하기 위해 산통을 겪고 있습니다. 금 수저, 흙 수저의 양극화 현상은 적폐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역시 그렇습니다. 적폐언론 역시 검찰과 침묵하고 축소하고, 있습니다. 공정 해야 할 검찰이 왜 윤석열 검찰총장의 가족 연루 사건과 나경원 전 자유당 원내대표가 고발된 사건은 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뻔히 알고 있는데도 아빠, 엄마찬스로 문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위공직자들의 비리 관행, 판검사들의 적폐는 우리 국민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TV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드라마 탈렌트 자신들은 모르고 연기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수사의 용어가 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선택적 수사를 하는 검찰뿐 아니라 언론의 행태 역시 선택적 보도를 비난하고 있습니다.의원 수십 명이 연루된 지난해 4월 국회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역시 검찰이 지난 1월에 기소한 뒤 아직 정식 재판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의 선택적 정의, 선택적 수사에 따라서 안 되는 사건을 크게 키우거나 봐주기, 수사 착수를 안 한다든지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검찰개혁의 당위성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은 선택적 00 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선택적 수사, 선택적 정의, 선택적 박탈감, 선택적 침묵, 선택적 사랑, 선택적 설교, 등등 갖다 붙이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을 니편, 내편, 편 가르기에 따라, 빽 유무에 따라 수사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놓여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이해관계가 얽히면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해버리는 오류를 가지고 행동하기에 선택적 수사, 선택적 정의, 선택적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편이냐? 상대편이냐? 내 돈, 내 땅, 내 물건이 피해를 입는지? 내 아들, 내 딸, 내 아내, 내 남편, 내 사람, 내 조직의 이익이 되고 피해가 되는 기준에 따라 수사하고 보도 하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교회 설교를 바라보면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수많은 신학적 사상과 성경 66권의 본문과, 수많은 설교집과 이시대기 요구하는 환경적 텍스트가 있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은 선택적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이웃의 아픔과 함께 할 수 없는 자기들만 희희낙낙하는 교회로 인식되기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산의 주범은 어찌 되었던 기독교에서 파생된 신천지와 교회대표기관인 한기총의 회장 목사의 정치적 집회로 인해 확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싸잡아 교회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정부의 방침으로 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전염의 매개체가 되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교회는 비대면 예배를 드린바 있습니다. 일반 교회 가운데서도 특히 보수교회에서 대면예배를 고집하여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에 일조를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예배는 목숨과 같은 것이다. 순교정신으로 예배를 사수하자는 것은 표면적 이유이고 속셈은 헌금감소와 교인 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들의 선택적 설교는 어찌 보면 검사들의 선택적 수사, 판사들의 선택적 판결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배우고, 성경 66권을 배웠지만 과연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들은 희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아모스서를 평생 한번도 설교 하지 않는 목사가 있을 것이고, 십일조를 강조하기 위해 말라기서를 본문으로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말라기서가 쓰여진 역사적 전후 상황을 배제하고 십일조 강조한 본문 말씀만 선택적 설교를 하는 것이지요.

구약의 신명기서의 떡 반죽 축복론의 선택적 설교와 순복음 교회외 3박자 축복 역시 선택적 설교의 사례입니다. 방언, 예언 기도, 치유사역의 현장에서도 성경의 선택적 적용을 하여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이밖에 교회건물의 성전화, 목사의 제사장직분으로 인식되게 세뇌시키는 것도 선택적 설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역시 선택적 적용과 선택적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 본인은 사도행전적 삶을 살지 않으면서 교인들에게 일방적 강요를 하고 있는 것도 선택적 설교입니다. 선택적 설교는 결국 성경에 근거가 없는 설교가 되고 맙니다. 성경 본문을 이용하더라도 성경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본문 앞뒤 문맥과 맞지 않는 설교가 되고 맙니다. 성경 한 구절 읽어놓고 자기 목회방침이나 사회적 관행을 강요하는 설교는 대표적 선택적 설교입니다. 선택적 설교는 희생과 공의와 사회정의, 부동산투기, 부정부패, 환경생태로 인한 기후변화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세상에 속한 성공, 축복을 자랑하거나 추구하는 설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기복제화식으로 해석하여 설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하나님 중심, 예수님중심, 성경중심을 교회당 중심. 목사중심으로 포장시키는 설교도 선택적 설교입니다. 목사에게 순종하고 교회당에 충성하여 헌금을 많이 하면 더 많은 축복을 가져온다는 설교는 선택적 설교입니다. 목사 자신을 특권화시키고 교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사자로 분리하고 복종을 강요하며 군림하려는 설교 역시 선택적 설교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사회적인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목사의 선택적 설교의 원인이 큽니다. 목사의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를 비롯하여 이번 코로나 19의 대응자세는 불에 휘발유를 부은 것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을 하나님 축복으로 미화시킵니다. 수도권에 교회가 그리 많아도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주거수단으로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야바위 식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수익으로 십일조를 하고, 감사헌금을 하게 해서 교회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반성경적이고, 복음적이지 못합니다. 목사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하여 자기 말에 순종하면 큰 축복이 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재앙이 닥친다는 식으로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며 교인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는 설교도 선택적 설교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느 듯 관료화, 기업화되었습니다. 십일조 유무나, 그 액수로 판단하여 직분을 주는 관행 교회의 조직이 기업의 조직처럼 되어 있습니다. 목사의 회장화, 장로들의 이사화, 집사들의 부장, 과장화. 교인들의 사원화 행태는 교회운영상 어찌 할 수 없는 점이 있지만 그리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 곧 예수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지만 목사들은 자기 교회만 헌금을 하도록 강요를 합니다. 지금은 목사들의 과잉 배출로 목사들이 설 자리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만 교회가 잘 나가던 시절 사회적인 농담으로 아들을 신학대학에 보내는 것이 취업이 잘 된다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출세하고 목회성공의 야망이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종교적 욕망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목사들의 꿈입니다.

목사의 전형적인 모델은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복음을 대적하는 교만한 자들을 징계할 것을 분별하고 징계할 것을 설교했습니다. 인간을 위한 그 어떤 선택적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자신을 자랑하며 변호하는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하고 참아달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복음을 전파와 헌신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워진 고린도교회에게 자신의 사도직과 권위로 거짓 교사들을 계속 분별할 것을 설교 합니다.

고린도 교회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바울 사도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을 받게 하고, 바울 사도가 전한 유일한 예수 십자가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넘어 한국사회를 치유하고 희망을 선포하는 메시지를 선표 하여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선택적 질병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구심체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현실에서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고 반사회적 범죄, 부동산 투기를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을 우리 인간의 탐욕의 도구로 삼지 말 것을 선지자적, 예언자적 설교를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사회의 등대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기능을 회복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가지는 사회적 공의와 공적 책임감은 성경의 가치와 동일하게 설교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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