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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스코예셀로의 추억 (1)
박효원  |  hyo1956@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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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0월 17일 (토) 23:52:24 [조회수 : 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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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스코예셀로(Tsarskoye Selo)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 있는 도시 이름인데, ‘황제의 마을’이란 뜻이다. 지금은 ‘푸쉬킨’(Pushki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여기서 황제는 예카테리나 2세(1729-1796)를, 푸쉬킨(1799-1837)은 러시아 시인을 가리킨다. 예카테리나 2세와 푸쉬킨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의 주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주민들의 모습이 타도시인과 다르게 말끔하고, 집값도 이상하게 비싸다.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1세와 함께 대제(Tsar the Great)로 불린다. 소련 때는 ‘대제’로 부르지 않았는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예카테리나 때 러시아 농노제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표트르가 러시아 제국의 발판을 놓았다면, 예카테리나는 제국을 완성한 황제라고 할 수 있다. 예카테리나 2세 때 러시아는 땅을 최대한 확장했고, 확실하게 유럽 강대국 반열에 들어섰다.

독일 프로이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예카테리나(처녀명 소피아)는 러시아로 시집와서 황태자 표트르(1728-1862)의 아내가 됐다. 결혼식은 1745년에 있었다. 독일 킬(Kiel)에서 태어난 남편 표트르는 러시아보다 프로이센을 더 좋아했다. 그런 황태자를 러시아 귀족들이 좋아했을 리 없었다. 표트르 3세는 정교회 신자였지만 루터교를 좋아하고 정교회에 냉랭했다. 러시아 성직자들도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예카테리나는 정략 결혼으로 황태자의 아내가 됐다. 남편 16살, 자신은 한 살 적었다. 표트르는 예카테리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남편이었다. 일찍부터 음주벽이 심했고 신경질적인데다가 유아적이고 머리가 모자랐다.

예카테리나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모욕 중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게다가 남편의 성기는 첫날밤부터 불능이었다. 에카테리나는 자신의 회고록(Memoirs of the Empress Catherine II)에서 부부관계를 거침없이 밝혔다. 회고록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the Project Gutenberg EBook)에서 내려 받아 읽을 수 있다.

회고록은 예카테리나 2세가 죽고 나서, 다음 황제인 아들 파벨 1세(Pavel 1, Paul 1)가 모친 서재에서 발견했다. 종이 뭉치가 든 봉투에는 ‘친애하는 황제 파벨 표트로비치, 내 친애하는 아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아들은 모친의 회고록을 읽었다.

남편 표트르 3세는 미치광이였고, 시녀만을 사랑했다. 자신은 혼인할 때부터 아홉 해 동안이나 잠자리를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시어머니 황제 엘리자베타의 요구로 다른 남자를 택해서 후계자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에 아들 파벨은 충격을 받았다. 파벨은 모친의 회고록을 봉하고는 황제 외 누구도 보지 못하게 했다.

예카테리나 2세의 회고록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남편이 성기 수술을 한 다음 첫 아이가 태어났으니, 파벨 1세가 표트르 3세의 아들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언삼어사(言三語四)다.

예카테리나는 독일에서 함께 온 친정엄마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왕궁에서 생활했다. 모친은 어렸을 때부터 딸을 극성스레 교육했다. 예카테리나는 무능한 남편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남편처럼 생활하지 않았다. 모욕을 당해도 품위를 지키고,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만 덤벼들었다.

남편 대신 찾은 것은 책이었다. 고전을 읽었고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책을 가까이 했다. 그리고 자신은 독일 사람이었지만 러시아인이 되려고 애썼다. 종교도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루터교에서 정교회로 옮겼다.

부부생활이 어려운 것을 안 황제 엘리자베타의 묵인 하에, 예카테리나는 귀족 살티코프를 정부로 삼았다. 첫 애인이었다. 스물다섯에 황태자 파벨을 낳고 아이를 둘 더 낳았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황제가 된 다음에도 정부들의 아이를 낳았는데 모두 비밀리에 수녀원으로 보냈다. 밝혀진 정부의 수가 23명에 이르고, 거의 다 자신보다 젊었다. 67세로 죽을 때도 젊은 정부와 같이 있었다.

프로이센과 7년째 전쟁을 하던 중, 황제 엘리자베타(1709-1762)가 죽었다. 이겨야 하는 전쟁이었지만, 표트르 3세는 황제에 오르자마자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와 전격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이런 황제를 러시아 귀족들은 극도로 싫어했다.

남편이 황제로 즉위한 때부터 아내는 야심을 품었다. 귀족과 성직자는 자기 편이었다. 남편이 황제에 오른 지 반년이 됐을 때, 아내는 황실근위대와 쿠데타를 일으키고 도시를 봉쇄했다. 궁밖에 있다가 소식을 들은 황제는 해외로 도피하려 했으나 배를 태워줄 해군마저 그를 배반했다.

남편 황제는 잡혀와 감금 당하고, 아내는 정교회 대주교의 축복 속에 황제 예카테리나 2세로 즉위했다. 즉위하자마자 남편 황제가 갑자기 죽었다. 정부(情夫)와 젊은 장교들이 알아서 황제를 죽이고 새 황제의 길을 닦아준 것이다. 열여덟 해를 부부 흉내만 냈던 두 사람은 그렇게 다른 길을 갔다.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였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2, 1712-1786)가 계몽군주를 자처하며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었다. 프로이센 옆에서 경쟁하던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도 계몽군주를 자처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계몽주의자의 책을 즐겨 읽었고, 스스로 희곡과 소설을 썼다. 볼테르(Voltaire)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과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황제는 볼테르를 러시아로 초청한 적도 있었다. 볼테르는 러시아가 변화하는 모습을 경이롭게 여겼다. 그가 본 러시아는 혼란, 어둠, 야만적 상황에서 벗어나서 계몽되고 있는 국가였다. 볼테르는 ‘파리의 러시아인’(The Russian in Paris, 1760)이라는 시도 쓰고, 예카테리나 2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젊었다면 러시아인이 됐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계몽군주가 된다는 것은 과거 폭군으로 군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몽군주는 권위보다 상식을 내세우고, 이성으로 국민들을 깨우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왕이다. 그러려면 시대에 맞는 법을 만들어야 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원로원을 개혁하고 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했다. 이것은 성공했다. 그녀는 여러 계층의 대표로 구성된 입법위원회(1767-1768)를 소집하고 법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입법위원회는 성공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밀어준 귀족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당시 모스크바를 휩쓸고 있었던 계몽주의자들은 프리메이슨(Freemasonry)이었다. 계몽군주를 자처한 예카테리나와 프리메이슨은 처음에 좋은 관계였다. 예카테리나는 정부관리에 프리메이슨을 뽑았고, 그들을 입법위원회에 참여시켰다. 프리메이슨은 황제를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사회’에 실현하려 했고, 황제는 프리메이슨 지식인을 통해 안정적인 ‘국가 통치’를 실현하려 했다. 이상만 같고 실제 목표가 다르니, 황제와 프리메이슨은 함께 갈 수 없었다.

1770년 프리메이슨 내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친정부적으로 갈 것인가, 반정부적으로 갈 것인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리메이슨은 친정부적이 되어 국가체제에 흡수되면서, 모스크바 프리메이슨은 황제와 갈라섰다.

예카테리나 2세도 프리메이슨도,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 출신이었다. 러시아 황제가 될 수 없는 자격이었지만 귀족들의 적극적인 추대로 황제가 됐다. 그러므로 프리메이슨이 현체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어도, 러시아 사회를 ‘계몽’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출판과 교육 활동을 했던 프리메이슨도 스스로 갇혀 있었다. 그들은 소수 지식인 사회에만 머물러 있었다.

계몽군주를 자처하면서도 황제의 통치를 강화했던 황제와, 계몽주의자이면서 지식인 사회에 갇혀있었던 프리메이슨 모두는, 이후 큰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는 러시아 안에서 1773년부터 3년에 걸쳐 일어난 푸가초프 대규모 농민반란이었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밖에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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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노 (39.7.231.153)
2020-10-18 19:00:06
경고.!!!

대표기도 때

하나님보다 (원로목사+담임목사)가 위면 "님"자 붙여라. / (목사기도 빼면 된다.)

cf) 쌍팔년도 "고참은 하나님과 동기동창이다" 비유 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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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노 (39.7.231.24)
2020-10-19 10:57:12
성도 > 사탄 > 귀신.(욥기) = 창조물과 동시에 도구.

병 = 주관 + 경고 + 테스트 / 병명을 안다는 것은 행운 / 세상병이 아닌 것은?

묵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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