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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친구들과 작별하기 시작하면서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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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0월 17일 (토) 10:10:05
최종편집 : 2020년 10월 17일 (토) 22:08:56 [조회수 :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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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비가 많이 온 덕분에 별로 덥지 않았지만, 여름은 여름이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산책하기 좋을 만큼 날씨가 시원해지더니, 요즘은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해졌다. 그리고 길가에 있는 중국단풍 나무의 잎이 더욱 발갛게 물들어가고 있다. 머지않아서 낙엽이 길 위에서 뒹굴 것이다.

내가 올해로 팔순을 맞이했으니, 인생의 가을을 맞이했다. 젊을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은퇴한 후에도 열심히 신학 서적을 읽었다. 그러나 요즘은 눈이 침침해졌을 뿐 아니라 책을 읽을 의욕도 없어졌다.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요즘 100세에도 정정한 김형석 교수를 부러워한다. 하나님이 내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겨울을 내다보면서 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헌책을 사가겠다는 광고지를 주워다 놓기도 했지만, 내 정든 책들과 하나하나 인사하며 보내기로 했다.

어제 오후에는 몇 권의 책을 가지고 나가면서 문득 내 젊은 날에 내게 소박한 집을 지어준 정든 친구들과 작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터를 닦은 이, 벽돌을 쌓은 이, 미장을 한 이, 도배를 한 이, 가구를 들여놓은 이 등. 이제 가을을 맞아서 내 젊은 날의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시작했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1960년대 중반에는 영미의 신간 서적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범문사, 범한서적, 종로서적 등 신간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에 가면 영미문학 서적이 조금씩 들어와 있었지만,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 관한 전문 연구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간혹 헌책방에 좋은 책이 나오는 수가 있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청계천에 있는 책방들을 찾았다.

특히 국제서적이라는 곳에서 문고판 영미문학 작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영미문학 연구서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한양공고에 있을 때는 그곳에 뻔질나게 들렀다. 그런데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이수하도록 1주에 하루를 할애해준다는 조건으로 공주사대부고에 내려갔을 때는 그 서점에 자주 가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는 국제서적에 갔다가 내가 꼭 읽고 싶은 책을 찾아냈는데, 애석하게도 책값이 모자랐다.

그 책을 놓고 가면 1주일 후까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다음 주에 올 테니 외상으로 달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책방 주인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생님이 지금 시골로 내려가 있는데, 어떻게 믿고 주겠어요. 이 책은 내일이라도 찾을 사람이 있을 텐데.’라고 장사꾼다운 대답을 했다.

그때는 카드가 없던 때라서 현찰이 없으면 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주에 서울에 올라가자 대학에 가는 길에 설레는 마음으로 국제서적을 찾아갔더니 주인이 그 책을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 책을 보는 순간 오랜만에 애인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책방 주인은 내가 1주일 후에 틀림없이 올 것이라 믿었던 것 같고, 매정하게 말한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그 책이 Wayne C. Booth의 The Rhetoric of Fiction(1961)이다. 나는 후에 그 책의 2판을 「소설의 수사학」(1987)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그 번역서를 출판해준 한신문화사의 박태근 사장이 바로 국제서적의 주인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그 책과 작별해야 할 판이다.

호주에서 미겔 데 우나무노와 그레이엄 그린을 비교 연구할 때 우나무노의 저서가 절판되었기 때문에 구할 수가 없어서 도서관에 있는 그의 책을 모두 복사했다. 그리고 영미에서 나온 그들에 관한 논문들을 복사하거나 ‘interlibrary loan’을 통해서 구했다. 이제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그 손때 묻은 복사물들도 버려야 한다.

내 서가에 남아 있는 책들은 대부분 내가 밤을 새워가면서 혹은 주말이나 방학 중에도 열심히 읽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쓴 논문, 번역한 책, 내가 쓴 책도 있다. 미국에서 내 책이 나오게 되었을 때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기뻐하던 책들도 있다. 헌책을 사가는 사람에게 그 책들을 넘길 수도 있겠고, 그 책들을 끌어안고 있다가 가면 식구들이 처분하겠지만, 내 땀이 밴 책들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그 정든 친구들과 작별하기로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올 때 학생들에게 책들을 나누어주고 내 전공 분야의 것만 가지고 왔는데, 아까운 이 책들을 물려줄 제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든 젊은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룬 작가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평생 연구실뿐 아니라 교실에서도 함께 했던 그레이엄 그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린이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한 것은 그가 다룬 종교적 주제 때문이었는데, 내 책들을 물려줄 제자가 없는 것은 내가 그린을 연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유업을 이을 제자들을 두었던 예수님이 부럽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곧 아버지께로 갈 것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을 믿는 사람은 당신이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기대하신 대로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복음을 만방에 전파했을 뿐 아니라 신약성경을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내 책들을 물려줄 제자를 키우지 못한 것은 시대적인 여건보다는 내가 두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나님은 내가 두 달란트를 가지고 예상 밖의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내 길을 인도하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를 이을 제자를 키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젊은 날의 친구들과 작별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부러워하는 것은 지금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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