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즐거운 날이다. 추석의 경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넉넉한 때이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명절에야 모처럼 새 옷을 사 입고, 비로소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 요즘은 언제든 새 옷을 사 입고, 하루 한 끼 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세상이 되었으니 추석 명절이라고 ‘입성’ 때문에 설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명절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래서 명절을 맞으면 뭔가 해야 될 것 같아, 자꾸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지금은 ‘작은교회 박람회’가 더 이상 열리지 않지만, 참가한 첫해에 우리 교회를 ‘토착화교회’로 분류하여 소개하였다. 주최 측에 문의하였다. “나는 생활한복도 안 입는데 무슨 토착화교회냐?” ‘토착화’란 의미는 한국적 예배와 문화, 전통을 추구하는 교회인데, 아마 교회 이름에서 그런 정체성을 짐작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색동’(色童)은 참 과분한 이름이다.

1993년 추석을 앞두고 독일 MDR-TV가 한국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문수산성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반도 분단현실에 대한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해 서울에 왔다가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교회까지 일정을 잡은 것이다. 그해 추석은 마침 주일이었다. 명절날, 낯선 외국 언론인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이니 한국적인 전통과 문화를 담아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온 교인이 우리 가락 찬송을 배웠다. 추석 명절에는 안 입던 한복을 모든 교인들이 차려입고, 북과 장구에 맞춰 우리 가락 찬송을 불렀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참 어렵더라. 지금 생각하면 웃픈 해프닝이었다.

그런 시절, 어느 기업의 신문광고가 생각난다. 굵고 진하게 이런 문장을 앞세웠다. “올해도 둘째 사위는 오지 못했습니다.” 흑백사진 한 장에는 추석을 앞두고 가슴 뭉클한 사연이 담겨있었다. 요즘처럼 화려한 영상이나 유머 코드는 없지만, 한 장의 사진은 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사진은 고향 집 마루 아래 섬돌 위에 놓인 크고 작은 신발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섬돌 위 신발들은 대체로 가지런한데, 아이들의 신발은 섬돌 밑으로 뒹굴기도 하였다.

추석 아침 풍경이었다. 사진 속 신발의 주인공들은 명절 상을 받으며 즐거운 아침식사 중이다. 그런데 둘째 사위는 그 날도 함께 하지 못하였다. 빈자리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해마다 명절 아침이면 북녘 땅이 아득히 건네 보이는 임진각 망향의 동산에서 부모님께 문안을 드렸다. 어쩌면 살아계실 지도 모를 일이기에 번번이 애가 탔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산가족들의 뻔한 사연은 이젠 한 세대가 지난 해묵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둘째 사위의 경우만 빈자리일까? 명절을 맞았지만, 그만저만한 이유로 함께 하지 못한 식구들의 모든 빈자리에는 저 마다 남다른 사연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고향방문을 미룬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현수막이 붙었다. “불효자는 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누가 불효자일까? ‘집에 오지 않는 자식이 효자일까? 그럼에도 집에 오는 자식이 효자일까?’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 두 마음은 몹시 흔들렸을 것이다.

임진각에서 북녘을 바라보든, 해외에서 보름달을 품에 안든, 모든 불효자는 늘 부모를 그리워한다. 평생 자식이란 존재를 더없이 반겨하시고, 손해 보는 것조차 아까워하지 않으시며, 자나깨나 넉넉히 축복하시던 세상에 둘도 없는 분들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만년 애창가요로 불릴 것이다. “불효자는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