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회력으로 창조절이다. 성령강림절을 나누어 후반기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배우는 것은 뜻이 깊다. 창조절을 성부절기로 이해하면서 비로소 삼위일체 절기가 완성되었다. 전통적으로 감리교회는 8월 마지막 주일부터 왕국절로 지키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훈련기회로 삼았다. 적어도 명분만큼은 그랬다.

  창조절을 4계절 중 가을에 지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우는 왕성한 성장기가 아닌,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지는 초라한 쇠락기에 맞은 창조절은 그 시간의 선택이 절묘하다. 모든 것이 시들어가는 그런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은 성경에만 복음을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나무들, 꽃들, 구름들, 별들에도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자연의 오묘함은 누구에게나 조물주의 임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신비한 경험을 통해 인간 곁에 가까이 머무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모름지기 신앙인이라면 자연과 만물 가운데 존재하는 피조물로서 위대한 창조의 질서를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법이다.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깨닫고 느낄 수 있는 신에 대한 경외감이요, 신비함이다. 그런 존재감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편에서 시인은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우리에게 장엄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 19:2-4). 옛 사람은 마치 남다른 귀를 가진 듯, 우주의 소리를 듣고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소리, 밤하늘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그 말, 그 소리, 그 일, 그 이야기를 들고 알아차린다. 고대인들은 비록 천문학적 지식은 거의 없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조물주에 대한 신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하기에 안 보일 뿐, 진정한 바램으로 마주하는 사람은 창조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느낀다. 온 세상에 퍼져나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영을 맛본다. 이 땅의 어느 한 곳, 하나님의 영역이 아닌 곳은 없다. 그 결과 시인은 이렇게 감탄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자크 마리땡은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자연에는 무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을 훔쳐보는 것은 예술가의 하는 일이다.” 물론 예술가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영감이 있다. 이 가을에 누구나 시인이 된다.

  창조절은 창조 중의 창조인 사람의 존귀함을 새삼 발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속되지만, 사람 간 마음의 거리만큼은 좁힐 일이다. 창조절의 중심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이다. 창조정신에 따라 차별이나 혐오가 아닌 더 많은 위로와 배려로 채울 시간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그렇게 ‘가을편지’를 노래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