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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옹의 윤동주 <서시> 속으로 떠나는 여행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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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9월 21일 (월) 13:24:55
최종편집 : 2020년 11월 10일 (화) 01:49:56 [조회수 :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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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마치 의인국(義人國)라도 된 것 같습니다. 자기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의인들의 나라라 해도 좋지 않을까 해요. 그게 누가 됐건 자신에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한다면, 그것도 하늘을 우러러 그렇다 한다면 그런 사람이 의인이 아니고 누구겠어요. 그러니 그런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를 의인의 나라라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 아닐까요. 물론 매사에 다 그렇다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는 사람들은 대개가 자기를 향한 무엇인가의 의혹에 대한 해명으로 그게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하는데,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는데, 얼굴을 무엇인가로 가리기라도 하지 않고서는 그럴 순 없는 일이 아닐까 해요. 정말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펄쩍 뛰면서까지 부정하진 않거든요.
저는 이 말의 출처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라고 알고 있는데, 길지 않은 시이니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저는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가운데, 왠지 뒷부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말이 더 마음에 닿아요. 아니, 마음에 걸린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기도할 때면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자신의 그렇지 못한 심성 탓이라 생각해요.

시인의 ‘부끄럼’이 무엇에 의한 것인지 모르지만, 도덕이라든가 윤리 같은 것으로부터의 일탈, 그로 인한 게 아닐까 해요. 피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여린 바람에도 가늘게 흔들리는 잎새만큼이나 예민한 시인의 감성, 죄에 대한 민감한 감성이 느껴지는데, 시를 모르는 저의 엇나간 해석에 불과한 것일까요.
어쨌든 발바닥이 되어버린 죄에 대한 감성을 눈이 느끼는 아픔으로 돌려가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저로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의 그 예민한 감성이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그런데요, 시인이 우러러 본 ‘하늘’은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해요. 아니 그 또한 기독교인이었다 하니 그 역시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늘’을 말한 게 아니었을까요? 그리고요, 잎새에 이는 ‘바람’은 시인의 양심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1-4행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는, 양심상의 조그마한 오점 하나에도 괴로워하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떨는지요. 순수하고도 순결한 삶에 대한 의지와 그로 인한 고뇌가 느껴져 옷깃을 여미게 되는데, 저만은 아니겠지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의 5-6행은요, 배우나 가수 같은 스타가 아닌 가슴속에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 그 희망의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인데요, 왜 하필이면 이미 죽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 죽을 것도 아닌, 지금 바로 ‘죽어가는’ 그것을 사랑하겠다고 한 것일까요?

세상에는 죽음, 그보다 더 슬프고 아프고 어둡고 절망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죽어가고 있는 지금이 제일 그렇지 않을까 해요. 그런 죽음을, 죽어감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겠다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혹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과 엇비슷한 거라 한다면 비약이 너무 심하다 나무라실 건가요.
이에 이어지는 7-8행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인데요, 어떤가요. 죽는 날까지 무엇 하나 부끄러운 일 없이, 살아 있는 것뿐 아니라 죽어가는 것까지도 사랑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살아가겠다한 시인이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요, 그 향기로 느껴지지 않나요.
그의 다른 시 “별 헤는 밤”의 셋째 연입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을 다 세지 못하는 이유인데요, 가는 시간의 빠름에도 오는 시간의 여유와, 진행되고 있는 청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다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희망의 별을 가슴에 안은 그가  27세로 요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서시”의 마지막 행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에서의 ‘밤’이 상징하는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시대상황이 결국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기를 바랐던 시인 윤동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지요.

일본 유학 당시의 그는 1943년 ‘재 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요, 그로부터 1년 7개월 뒤인 1945년 2월에 건강의 악화로 세상을 뜬 것입니다.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이었지요.

사인은 뇌졸중이라고 하는데, 당시 일제가 저질렀던 생체실험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고노 에이치 씨는 현대문학지 1980년 5월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윤동주와 송몽규가 혈액대체 실험을 위한 실험 재료로 쓰여서 사실상 살해당했다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수감 전의 그는 정말 건강한 청년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그를 죽인 건 직접적이 됐건 간접적인이 됐건 일본제국임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은 저를 정말이지 우울하게 합니다. ‘바람이 별을 스치’는 것이 아니라, ‘별이 바람에 스치운’, 시작(詩作)의 시점이 우울하다기 보다 아픕니다. 희망의 별 시인 윤동주가 일제강점기라는 모진 바람의 현실에 보대끼는 현상이 아프기만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는, 말하자면 자칭 의인들에게 그대들의 양심은 눈에 가까우냐, 발바닥과 비슷하냐 묻고 싶습니다. ‘서시’를 읽은 적이 있기는 하냐고도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위패의 부서져 조각난 꿈을 이어 붙여 복원코자 핏발선 눈으로 전범 욱일기를 흔들어대는 자들한테 양보하라 하는 이들에게도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스가가 물려받은 아베정권이 우리에게 무엇을 양보했기에 우리 정부보고만 양보하라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아~ 여러분, 윤동주 시인이 저세상에서 이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오,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여! 윤동주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하나님께서 대 사도 바울의 심정을 통해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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