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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금송아지 우상이 아니다축자영감설은 맹신 자폐증
신성남  |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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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9월 08일 (화) 11:40:16
최종편집 : 2020년 09월 08일 (화) 11:43:20 [조회수 : 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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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우 믿음이 좋은 듯 보이지만 사실 그건 맹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실제로는 성경엔 묻고 따질 게 많다.

무조건 믿자는 흐름의 하나로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글자 하나 토씨 하나 오류가 없다"는 게 소위 축자영감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들고 있는 지금의 성경엔 적지 않은 본문 오류가 있다.
 
이 글에서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의 불일치를 간단히 다루고자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시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시점이 요한의 감옥살이 전인지 후인지가 서로 다르다.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본문 오류가 분명하다.

먼저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갇히기 전에 이미 제자들을 택하셨고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요3:22-24)."

반면에 마가복음을 보면 요한이 잡힌 후에 복음 전파를 하셨다고 증거한다. 물론 시몬과 안드레 등 다른 제자들을 택하시는 것도 그 뒤의 일이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막1:14)." &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막1:16)"

이런 불일치는 단순히 사본 오류나 번역 오류나 부분적인 필사 오류에 의한 게 아니다. 사본들은 잘 일치하지만 본문 자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본문 오류 외에 그 어떤 해명이나 변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오류가 성경의 근본 가르침을 훼손할 정도로 심각한 오류는 아니다. 하지만 성경이 점 하나까지 정확하다는 가설이 성립할 때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때는 성경 해석의 방법에 있어서 아주 크게 다르다.

대부분 근본주의자들의 문자적 해석은 주로 축자영감설에 기인한다. 그들은 글자 하나 하나에 목숨을 건다. 심할 경우 신천지처럼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요한계시록에 따라 오직 '십사만 사천 명'이라는 이단적 주장 역시 가능하다.   

내가 축자영감설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이로 인해 엉터리 성경 해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말씀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따르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신들이 원하는 주장에 하나님말씀을 부분적으로 따다가 포장할 때가 많았다. 그동안 개신교 설교에 아전인수식 성경 해석이 난무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말씀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작품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신접한 무당이나 녹음기를 통해 계시를 주신 게 아니다. 모세나 다윗이나 베드로 자체가 유오한 인간인데 어떻게 그들의 글은 점 하나 오류가 없기를 바라는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다분히 유오한 존재이기에 그 기록에 부분적인 오류가 들어있고 성경 해석은 마치 원석에서 금강석을 얻어내듯 보편성과 다양성의 원리에 따라 신중히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작금의 보수교단 교리는 거의 화석화했다. 그들은 토론이나 이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들 교리에 대해 다른 말을 하는 교수는 바로 잘린다. 더욱 웃기는 건 교단마다 교리가 서로 다르다는 거다. 결국은 500년 전 칼뱅이 쓰던 고전 논법이 아직까지 그대로 세습되어 왔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교단 신학교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가능하면 신학교를 일반 대학교에 두고 '교리의 속박'이 아닌 '학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확신한다. 본격적인 신학은 일반 대학에 맡기고 교단에는 필요시 성경 전문대 정도만 있으면 좋겠다.  

일반 대학교에서라면 턱도 없는 교리나 학설이 교단 내에서는 여전히 교조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조속히 청산해야 마땅하다. 시대착오적 주일성수, 건물숭배, 교회세습, 성직주의, 그리고 대면예배를 고집하는 게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성경은 우상이 아니다. 성경은 맹신적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생각하고 묵상하고 토론해야 옳다. 특정 신학에 매여 벌벌 떨 필요 없다. 누구든 성경 본문을 마음껏 비판하고 논의해도 괜찮다. 자신의 양심을 건다면 피터지게 싸워도 좋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이 지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시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상식과 논리로 공격해서 그리 쉽게 무너질 성경이라면 그건 애초부터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아닐 것이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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