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록에 따르면 1945년 8.15 해방을 맞이한 그 때는 몹시 무더웠다고 한다. 1950년 6.25가 있던 해는 전쟁 와중에도 과일과 곡식이 유례없는 풍작이었다. 올해는 반년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와 긴 장마로 인한 폭우 등 기상 이변 속에 무슨 다행한 소식이 있을지, 고대(苦待)하고 싶다.

  얼마 전에 읽은 <에스가 스노 자서전>의 원래 제목은 ‘시작을 위한 여행’이다. 미국인 기자 스노는 1930년대 초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소련, 인도 등지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일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세계열강의 먹잇감이 된 중국의 좌절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직후 세계의 냉전 체제 등 무려 800쪽에 이른다.

  겨우 25년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생생한 현장을 지켰던 젊은 스노의 기자정신 때문에 그의 회고는 가히 역사책과 다름없었다. 식민지 국가들이 겪은 치욕과 개인이 당한 수치는 목불인견이었다. 작은 실례로 기차를 탄 중국인 승객이 차표를 조금이라도 늦게 보여주면 외국인 차장은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상하이의 몇몇 외국인 조계가 중국을 좌지우지하던 그때의 중국과 세계 2대 강국의 하나로 꼽히는 지금의 중국을 비교하면 말 그대로 상전벽해이다.

  에드가 스노의 자서전에는 가끔 그리스도교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기자는 자기 시대에 중국에서 활동한 많은 선교사들에 대해 흉도 보고, 또 희생정신을 높이 사기도 한다. 미국인 기자의 시각에 따르면 1930년대 중국 그리스도인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그들 중 다수는 기독교도로서 거의 숙식비용만 받고 헌신적으로 일했다”(382쪽).

  보수적인 미션스쿨이지만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의 출발점이 된 옌징대학교 학생들을 가리켜 “그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교육을 받은 젊은이였으며”(276-7쪽)라고도 증언한다. “트럼프의 에이스를 넉 장 쥔 기독교인 같은 침착한 확신”이란 표현도 재미있다. 당시 그리스도인은 중국인의 모범교사였다. 얼마 전까지 중국 그리스도교 부흥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 뿌려진 씨앗이었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동농·수당 일가(一家)전’이란 전시회를 본 적이 있다. 동농 김가진은 구한말에 농상공부대신을 지냈다. 1910년 한일합병 때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을 만큼 망한 나라의 도도한 지배층이었다. 그런데 김가진은 달랐다. 3·1운동 직후 비밀 항일결사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을 결성해 이끌다가 그해 10월 일흔 네 살의 나이로 셋째 아들 의한과 함께 국경을 넘어 상해임시정부에 합류한 것이다.

  동농의 망명은 조선 지배층이 모두 한일합병에 찬성한다고 선전했던 일제 당국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망명 3년 만에 상해에서 숨졌지만, 김가진의 항일정신은 아들 의한과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하며 활약한 며느리 수당이 이어받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이다.

  중국이든, 우리나라든 일제 강점기에 애국자와 친일파의 차이는 무엇일까? 해방이 올 줄 믿은 사람과 믿지 못한 사람의 믿음의 차이일 것이다. 에드가 스노의 자서전을 꼼꼼히 읽으면서 까칠한 기자의 눈에 비친 중국 그리스도인에 대한 흔적이 미덥게 느껴진 까닭은 비록 불우한 시대에 주류가 되지는 못했으나 ‘적은 무리’로 살았고, ‘좁은 문’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75년째 맞는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청동거울과 같다. 늘 깨끗이 닦고, 재삼 마주해야할 역사의 참회록(懺悔錄)이다. 만약 우리와 후손이 그 수난과 수치를 잊는다면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 정녕 교회가 3.1절과 8.15를 민족절기로 지키려고 한다면, 먼저 오늘의 참회록을 쓸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