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성소수자 관련 연회재판에 대한 소견
이수기  |  목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8월 04일 (화) 01:07:40
최종편집 : 2020년 08월 04일 (화) 08:56:30 [조회수 : 210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가말리엘의 지혜를 따라
 성소수자 관련 연회재판에 대한 소견

아무도 원하지 않는,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관련하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에 나서본 바도 없으며, 게다가 이동환목사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터에 내 생각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논문도 변론도 아닌 선교적 관점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무탈하게 산 것은 중요한 문제들에 적당히 무관심하고 나 좋은 것만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토론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적당히 피해 다니며 양반 흉내나 내고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여러 가지 사역으로 육체적 피로가 과중한 터에 복잡한 문제에 얽혀 건강을 잃을까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여느 목사와 다를 바 없이 새벽이면 예배당에서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교회 주변 거리 청소와 정원 풀뽑기로 이어지고, 빵 만들기 농사 등 노동과 찾아오시는 분들을 맞아들이고 전도하는 일에 전력하고 저녁에야 설교준비를 하고 대략 12시쯤 몸을 눕힙니다. 성적으로는 평범한 이성애자이고 성소수자를 옹호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지도 않은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로 살아온 햇수를 뒤로 헤아려보니 30입니다. 큰 족적을 남긴 것 없지만, 무슨 일이든 어떤 곳이든 주님의 부르심대로 살았습니다. 바다나 강이나 깊은 산중이든 평탄하든 지진에 흔들리고 무너진 곳이든 내 마음을 이끄시는 대로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나누었고 병들고 상처 입은 이들을 고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재주도 능력도 없는 터에 뭐든 거절하거나 회피하지 않겠노라 하고 보니, 힘에 부쳐서 더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교회재판 언론기사를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받은 기독교인의 대처에 의문과 미흡함을 느끼던 차에, 교회재판까지 열린 것은 향후 선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고대로부터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숨겨진 문제였으며, 대부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나 이제는 우리 삶 속에 드러나고 전세계적 전교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외면하거나 분리한다고 없어지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반드시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의도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가벼이 여기거나 특정인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따라가야 할 신앙의 길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한 향후 기독교의 존속과 발전에 책임감을 가진 목회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바를 적고자 합니다.

 * 과거 교회의 오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지식이 성숙하지 않은 시대에는 교회의 가르침에도 오류가 많았습니다.  전염병이 아닌데도 격리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인정한다 하여도 이제는 복음에 기초하여 좀 더 사려 깊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원인과 치료법을 모르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정죄하고 차별하였습니다, 남녀차별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성매매의 경우 여성만 가혹하게 처벌하였고, 오랜 세월 노예제도 또한 교회의 용인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마녀사냥의 기독교역사를 기억하십시오. 히틀러나 기타 독재자에 협력했던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짧고 용기는 얼마나 부족하였는가?
 2차 세계대전 히틀러의 만행에 우리 모두 큰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독일인의 애국심이 히틀러를 환호하였고, 수천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국민 대부분이 매주일 예배드리던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편협함과 과다한 확신으로 한 행동들이 어떻게 사람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만드는지 기독교역사가 가르쳐줍니다.

* 율법의 조문과 감리교교리와 장정만을 들고 재판한다면
 예수님도 율법과 교리로는 유죄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으로 예수님도 정죄 받았습니다. 창녀를 옹호하였으며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율법에 금한 나병환자들을 접촉하였으며 거룩한 안식일의 규정을 어겼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동성애자에 대해 비난하신 기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수님께 시비를 걸겠습니까? 현재의 교리로 재판을 받으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유죄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를 버리고, 죽음의 위험이 있는 광야에 가족을 버렸으며, 후사 이삭을 얻은 후에도 첩들을 두었습니다.
 율법으로 금한 것을 오늘날 우리가 다 지켜 금해야 한다면, 음식정결례나 안식일을 어기면 재판을 열어 처벌해야 합니까? 또한 노예를 사고팔며, 근친혼을 허용하고, 첩을 두는 등 율법으로 처벌하지 않은 것들은 오늘날에도 다 허용해야 합니까?
 신중하게 더 신중하게 연구와 토론을 하고 교리로 만들어야 하며, 그 이후에도 교리로 재판을 하는 것은 더 신중해야 합니다.(제가 무지하여 성소수자와 관련된 교리가 감리교에 확정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에 기초한 법인지 예수님이나 믿음의 선조들이 통과할 수 있는 법인지 함께 읽어보았으면 합니다.(교리와 장정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 향후 복음전파를 위해 성숙한 태도와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눈들에 의해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며 어떻게 판결이 나든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우리의 주장이 비수가 되어 복음이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스스로 불러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슈화되는 것이 극단적 지지자들에게는 기쁨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전도에 장벽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눈으로 모든 사람들을 구분하고 율법이나 교리를 들어 적대시한다면, 결국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멀어지도록 할 것입니다.

* 더 신중한 연구와 토론을 선행해야 합니다.
 퀴어 축제의 단면을 본 저도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동청소년들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표현의 일탈은 비난받기에 충분합니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이 이미지에 갇혀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와 그들 중 그릇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동일시하고, N번방 성범죄 사건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모두가 죄인일 뿐이나 또한 존귀한 존재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에이즈감염과 사회적 비용의 측면을 기초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중 얼마나 선천성이고 후천성인지,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대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지? 동성애와 매스 미디어 중에 어떤 것이 더 악하며, 복음전파에 해악이 큰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목회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성소수자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방법에 있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비껴나 보입니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탕에 빠지는 것이 너무나 염려되어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결사대를 조직하여 술집을 폭파하고, 세속문화를 전하는 텔레비전 방송국과 영화관이나 스포츠센터를 부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 십자가 앞에서 숙고해주십시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지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불똥이 떨어질까 염려하여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침묵의 동조는 더 이상 무죄일 수 없습니다. 법정에 세워 심판하는 방식은 선교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사탄의 먹잇감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교리로 재판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말고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일에 다가가 주십시오.

* 나오는 말씀, 가말리엘에게 배웁시다(사도행전 5:33-42)
 나라가 없는 백성들이 지켜온 유대교가 지금까지 존속하게 된 힘은 어디 있을까? 나는 가말리엘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엄혹한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완고하게 대립하며 정죄하는 길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유대교를 위협한다고 여겨 처단하려는 공회원 앞에서 가말리엘이 한 말을 기억해주십시오. 혹 우리의 열정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교회를 파괴하고 복음을 막는 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세상은 복잡해졌고,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은 터에 누군가에게 내 지식을 전하는 것에 부담이 있습니다. 내 삶과 생각을 열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부디 함께 이 피하고 싶은 무거움을 함께 숙고하고 나누어 주십시오. 한 젊은 목사의 목사직에 대한 변호가 아니라, 이 사건 처리 향방에 따라 이 땅에서 복음이 확장될지 아니면 교회의 종말을 앞당기게 될지에 대한 통찰을 촉구하기 위해서 감히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너그러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재판에 변호인으로 나서주실 목사님이 부족하다면 저라도 조력할까 합니다. 저와 교제가 있으신 분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위 견해에 대하여 동의 동조 협력 어떤 모양으로든 함께해주시길 요청 드립니다.

   2020. 8. 3  이수기목사 (경기연회 동탄지방 평화교회)

[관련기사]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0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2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경환 (222.100.38.174)
2020-08-04 09:41:38
성소수자 관련 摘示한 實例에 대한 다른 시각(견해)
히틀러를 추종한 과거 교회의 오류와 율법(장정) 조문에 함몰된 재판 관련하여...

1. 유태인, 집시 등을 박해한 히틀러 추종교회와 차별금지법 제정반대 추종교회를 비교하는 건 語不成說

히틀러 추종교회는 절대다수였고, 이들은 대체로 유태인, 집시, 불구자 등의 박해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조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하지 않더라도 그 당시 나치시대의 大勢에 눌려 침묵하였습니다.

차별금지법 반대 추종교회는 문재인시대의 大勢가 아닙니다. 성소수자라는 무기를 장착한 소수가 문재인시대의 흐름을 타고 다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게 大勢입니다.

나치시대는 유태인, 집시, 불구자 등을 희생양으로 ‘나치千年제국’을 세우려고 들었다면, 문재인시대는 성소수자를 앞장세워 우파세력을 반신불수로 만들어 ‘좌파百年제국’을 세우려하고 있습니다.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느냐 아니면 <주구>로 삼았느냐의 차이점이 있을 뿐... 이들 소수자는 히틀러세력 또는 문재인세력의 ‘일종의 사냥개’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태인, 집시, 불구자, 성소수자 등은 같은 소수자인데 유태인, 집시, 불구자 등은 시대를 잘못만나 아우슈비츠수용소로 갔고, 성소수자는 시대를 잘 만나 큰소리 떵떵 치며 “감, 내놓아라!, 배 내놓아라!”며 큰소리로 다수자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배고픈 소수자와 배부른 소수자를 평면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그야말로 語不成說입니다.

문재인시대에는 차별금지법 반대 추종교회가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시대 흐름을 제대로 탄 少數가 오히려 多數를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나치시대와는 정반대입니다.

2. 율법(장정) 조문에 함몰된 재판 관련하여

율법(장정)은 율법(장정)의 구속 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예수님 역시 그 당시 율법의 구속 하에 있었고 여러 가지 율법을 어긴 데 대해 군말 없이 실정법 재판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체포조가 오자 도망치지 아니하고 이에 순응하여 체포되었고, 빌라도 법정에 당당하게 출석하여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정정당당하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 결과가 옳은가? 또는 그른가? 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이동환 목사가 감리회를 脫會하지 아니한 이상 그는 율법(장정)의 구속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법의 적용을 받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이동환 목사가 장정 관련 재판결과에 만족 하느냐? 아니냐? 와는 별개로 재판 그 자체는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철칙입니다. 예수님조차도 로마법을 피해갈 수 없었듯이 말입니다.

이동환 목사 건을 빌미로 교리와 정장에 의한 재판조차 부당하다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한시바삐 감리회를 탈회하는 게 정도입니다. 뭣 하러 감리회에 소속되어 감리회 재판을 감수하려드십니까?
리플달기
14 14
조기묵 (125.132.31.106)
2020-08-06 00:08:58
감성을 지극하여 진리를 왜곡하고 반성서적 논리로 자신을 위장하면서까지 강단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오직 진리는 하나입니다.
리플달기
3 6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