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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들의 해방 운동과 동성애 문제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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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7월 15일 (수) 09:07:57
최종편집 : 2020년 09월 14일 (월) 21:38:38 [조회수 :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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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우리 사회의 갑질 문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한참 전에 백화점에서 점원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VIP 고객이 점원을 백화점 바닥에 무릎 꿇린 사건과 박찬주 대장 가정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이 매스컴을 탄 일이 있다. 그 외에도 한진 일가 여인들의 직원에 대한 갑질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미투 운동도 남성의 갑질을 고발하는 일이다.

옛날 같으면 이런 갑질은 문제가 되지 안았다. 양반이 상민 위에 군림하던 신분 사회에서는 하층 계층의 인권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주인은 하인의 생사 박탈권까지 쥐고 있었다. 요즘 갑질을 문제 삼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모두 동감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부터 여러 영역에서 사회의 약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소외된 사람들의 해방 운동이 이어져 왔다. 그 해방 운동 중에서 맨 처음 언급할 것은 프랑스 혁명이다(1789-1794). 루이 14세 재위 시에 완성된 절대 군주 정치 체제에 의해서 국왕과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만이 특권 신분을 구성하고 그들이 국민의 90%를 차지하는 평민 위에 군림했다. 그때 권력자들의 전횡에 시달리던 약자들이 일으킨 평민 해방 운동이 프랑스 혁명이다.

소외 계층의 해방 운동은 한 국가 안에서 일어났지만, 식민지 해방 운동은 국가와 국가 간에 일어난 피압박민족의 해방 운동이었다. 유럽 열강은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개척해서 피지배 국가를 수탈했다.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서 1783년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는 식민지 해방 운동이 1808년과 1810년 사이에 시작하여 1824년에는 거의 모든 식민지가 해방되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하고 다른 나라들도 그 뒤를 따랐다. 아프리카에서도 이집트를 필두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민족 독립운동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한국도 2차대전 후에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그다음에는 소외된 인종을 위한 해방 운동이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을 노예로 사들여서 그들에게 노역을 시켰다.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남북전쟁(1861-1865)의 결과 백인들에게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던 흑인들이 인종차별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만행을 보면 미국에서의 흑인 해방 운동은 진행형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20세기에는 여성 차별의 족쇄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났다. 그 해방 운동의 결과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가정에서는 남편의 발언권보다는 부인의 것이 더 세어 보일 정도가 되었고, 사회에서는 남자들의 자리를 여자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 상속제와 호주제가 법제화되기에 이르렀다.

요즘에 와서는 사회복지 운동이 활성화하면서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의 인권 운동의 열기는 정상인을 비장애인으로 부르자는 데서 잘 나타난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은 사회의 낙오자로 취급되었지만, 지금은 곳곳에 장애인 센터가 세워져 있고,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교육 프로그램이나 직업교육이 활성화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정치권의 일각에서는 성별, 장애 유무, 나이, 출신 국가, 학력,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고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하고 있으니 동성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 교회에서는 동성애를 금하는 성경의 기록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라고 믿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동성애라는 윤리적 문제가 과연 변치 않는 진리인지 의문이다.

지난 2백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소외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운동으로 인해서 지금 어떤 이유로도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윤리는 상대적이어서 사회·문화적인 상황이 바뀌면 그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전제 군주 시대에는 임금에 대한 충성이 미덕이었지만,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충성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이렇게 충성이 민주사회에서 재해석되는 것처럼, 성경에 나오는 윤리에 관한 구절도 현대에 와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실상 지금 우리는 서신서에 나오는 여성 차별에 관한 기록을 우리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 유대 사회에서는 여자를 사람 수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화권에 사는 서신서 기록자는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남녀평등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여자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그 구절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가정의 달에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설교한다면 그 목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차별에 관한 구절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차별하던 때에 기록된 성경에서 동성애자를 차별하여 정죄했지만,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우리 시대에는 그 구절이 재해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 구절을 재해석하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발끈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엉뚱한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 재해석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라고 십계명에 명시된 안식일에 관한 계명을 재해석하시면서 안식일에 관한 유대인들의 관행을 비판하셨다. 예수님은 살인, 간음, 맹세, 원수, 금식 등에 대해서도 모세의 가르침을 재해석하셨다.

18세기 말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해방 운동이 여러 방면에서 꾸준히 일어난 결과 지금 우리는 흑인이라도 여자라도 장애인이라도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라고 믿는다, 누구도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고,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물까지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도룡용 서식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데모를 하고, 길고양이를 해치는 사람을 감옥으로 보낸다.

지금 우리는 경직된 관례나 규범에 근거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종족이나 종교의 배타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이혼을 금기시하지 않고, 미혼모를 소외시키지도 않는다. 전에는 왼손으로 밥 먹는 것을 한사코 말렸지만, 지금은 타고난 성향대로 왼손 쓰는 것을 허용한다.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의 성적 성향을 용인해야 하지 않을까!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교인들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은 소외된 사람들의 해방 운동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한다는 점이다. 임금과 백성,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 정상인과 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모두 지으신 하나님은 손수 지으신 당신의 자녀들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실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포함해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다.

병자들과 장애인들을 돌보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을 뿐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은 이성애자들보다도 비정상적인 성적 성향을 지닌 성소수자들에게 더 마음을 쓰실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이 품으시는 양들이다.

남녀 평등의 시대에, 유림에서는 여성이 호주가 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지만, 결국 여성 호주제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동성애 문제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너도나도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지금, 교회에서 동성애를 극구 반대하더라도, 머지않아 성소수자들이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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