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에서 목회하시는 한 선배목사님의 전화가 왔다.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선배목사님이지만 수 년 전에 담임하시는 교회의 건축을 위해 목사님께서 직접 멸치를 판매하러 다니실 때 연결되어 알게 된 분이다. 큰 도움은 아니지만 내가 소화할 만큼 팔아드린 적이 있었다. 그 후 봉헌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교회의 남은 대출금과 마무리 공사를 위해 또 한 번 멸치를 판매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주일 지나 입금을 하겠노라고 하며 멸치 20박스를 놓고 가시라고 했다.

주일날 광고시간에 성도들에게 멸치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농촌교회 선교하는 마음으로 멸치를 구입하시라고 했더니 예배가 끝나는 즉시 다 팔려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놓고 가시라고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성도들도 교회를 돕는다는 마음을 갖고 기쁨으로 구입하였다. 판매담당이셨던 김장로님께서 주일 오후 판매대금을 송금했고 멸치를 구입한 한 집사님께서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멸치를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를 도울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하고 교회 밴드에 글을 올렸다.

물론 우리 가정도 한 박스 구입했다. 주일 저녁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와 딸이 구입한 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멸치몸통만 모아 놓은 쟁반에서 한 줌을 꺼내어 종이 호일에 담아 에어프라이어에 넣어서 구웠다. 예쁜 그릇에 바삭하게 구운 멸치를 담고 한쪽에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담아 멸치를 찍어 먹으니 아주 맛이 있다.

멸치를 씹어 먹으면서 이 선배님께서 과연 멸치를 몇 박스나 판매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직접 여쭈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교회와 선배목사님에 대한 기사들을 찾아보니 건축기간 5년 동안 5만 상자를 판매하셨다고 한다. 5만 상자... 깜짝 놀랄만한 양이다.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혼자서 그 많은 멸치를 전국을 돌며 판매하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넉넉지 않은 시골 교인들과 함께 제대로 된 교회를 건축해 보자는 굳은 의지와 헌신으로 듬직한 예배당을 지으신 목사님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그 교회와 지역을 섬기셨다고 한다. 한때 마을 이장을 맡기도 하시며 30년의 긴 시간동안 그곳에서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며 지역을 섬기신 목사님의 교회를 위한 헌신의 노력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부디 남은 부채와 공사를 잘 해결하고 마무리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음식칼럼이니 멸치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려고 한다. 멸치는 우리나라 남해와 남동해에서 많이 잡힌다. 아마도 경남 거창에서 목회하시는 선배님께서 멸치를 판매하신 것은 아마도 그 지역에서 멸치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멸치는 조선시대만 해도 많이 잡는 생선이 아니었다. 생선이 작고 빨리 상해서 생으로 조리해 먹거나 젓갈을 담가 먹는 정도였을 것이다.

멸치가 우리나라 연안의 주요 어족 자원으로 떠오른 것은 일제강점기 때이다. 또 우리나라 음식에서 마른 멸치가 국물 내는 용도로 크게 번지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동해에서 대량으로 잡히는 멸치로 기름을 뽑고 사료를 만들었는데, 많은 양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때 멸치를 삶아서 말리는 마른 멸치의 제조법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일본은 국물용 생선제조법이 발달하였다. 그 이유는 메이지시대까지 육식을 금지했기 때문에 고기 대신 생선을 삶거나 훈제한 후 말려서 국물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꿩, 닭으로 국물을 내었지 지금처럼 멸치육수를 내지 않았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마른 멸치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남부지방에서는 멸치국물을 일찍이 사용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마른 멸치의 비릿한 국물 맛을 어색해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는 마른 멸치의 비린내에 익숙해져서 멸치로 육수를 낸 잔치국수를 자주 먹고 있다.

날씨가 더우니 요리하기가 싫다. 가족들을 데리고 시장 근처 자주 가는 국수집에서 멸치국수 한 그릇씩 사먹어야겠다. 멸치를 먹을 때마다, 멸치육수 잔치국수를 먹을 때마다 멸치를 판매하시며 예배당 건축을 하신 그 선배목사님과 교회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