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여행객들의 마음에 각인된 인식과 평판은 바꾸기가 굉장히 어려운 법인데, 로마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남쪽 지역에 덧 씌워진 이미지와 소문이 그렇다. 필자가 처음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는 1992년이었는데, 그때 이탈리아 남부의 관문도시라 할 수 있는 나폴리를 방문하고자 했을 때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위험하고, 더럽고, 여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들이었다.

▲ 나폴리 피자

그런데 그 후 5년이 되어 방문했을 때에도, 거기에서 다시 5년이 지났을 때에도, 또 다시 몇 년마다 몇 번씩 재방문 할 때에도, 나폴리를 기점으로 해서 이탈리아 남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말이 거의 30년이 되도록 바뀌지 않고 있으니 한 번 각인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리만큼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흔하지 않다. 얼마나 멋지면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 스파카 나폴리 – 구시가의 메인 거리

사실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평판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나폴리 사람들은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라는 평판이 팽배하며, 심지어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사람이 나폴리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웠다고 하면, 그래서 그렇게 이탈리어가 이상했다고 말할 정도로 편견이 심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폴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한 평판들과는 달리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들은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며 흥미진진한 도시들이다. 특별히 나폴리에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기원전 2000년 경, 즉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로부터 수많은 문명들이 자리 잡았던 항구 도시로서 다양한 사람과 사상들이 교차하며 복잡다단한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 나폴리 항구와 베수비오 화산

로마가 지중해의 최강자로 부상하면서 나폴리도 그 영향권 아래에 들어갔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나폴리의 중심적 지배자는 그리스다. 이후 나폴리의 지배력은 로마, 비잔틴, 노르만, 아라곤, 부르봉, 나폴레옹, 합스부르크, 가리발디로 이어졌지만,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리스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그리스 문명의 핵심은 신전이다.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고대 신전이야말로 그리스 문명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다. 나폴리는 바티칸 로마와 더불어 가장 많은 수의 교회가 위치한 도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나폴리 교회 대부분이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출발했다. 제우스, 아폴로, 아르테미스, 비너스를 기리는 신전의 터가 4세기 이후 기독교 교회로 바뀌었다. 크고 화려한 교회일수록 3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인기 있는 그리스 신전이었다.

▲ 나폴리 해변

나폴리의 중심을 지키는 두오모, 성모 마리아 승천교회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안수식 장소다. 교회 속에 교회라 불리는 두오모 안의 <산타 레스티튜타>가 안수식 현장인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석에서 지하수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신전 자리로 추측한다. 물은 고대 신전의 필수조건으로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그리스 신전 대부분이 그대로 교회가 되었고, 신전 주변의 물길은 안수식 장소로 변한 것이다.

▲ 산타 레스튜티토 성당 세례터

이탈리라에는 <프레세페> 전통이 있다. 프레세페란 예수 탄생 장면을 구현해 놓은 장식품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더 유명하지만 지금도 로마 카톨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도시들에서는 연말연시에 이 프레세페를 곳곳에 전시해 놓는다. 아기 예수님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킬 수 있는데, 프레세페가 들어서는 도시의 환경과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런데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인정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나폴리의 프레세페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에서 프레세페 경연이 열리는데 그중에서 항상 수위권에 놓이는 것이 나폴리 출신들의 작품들이다. 왜 그럴까? 나폴리 프레세페만큼 사실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프레세페는 성스러움을 구현하고 알리기 위한 모델이다. 그런데 나폴리 프레세페는 그런 의도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성스러움 5%, 세속이 95%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폴리에서 만들어진 프레세페의 경우 성스러움과는 무관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탐욕, 질투, 생존, 본능만 보이는 지저분하고 피곤한 군상들이다. 성과 속이 뒤섞여 돌아가는 혼돈은 21세기의 나폴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나폴리만의 독특한 풍경 중에 하나다.

▲ 나폴리 프레세페 거리

나폴리의 프레세페 거리의 한 프레세페의 제작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폴리 사람들의 99%는 나폴리를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폴리에서 차로 1시간 이상 밖으로 나설 경우 곧바로 불안해진다. 왜 그럴까? 무질서와 혼돈이 주는 중독성 때문이다. 바로 그 혼돈과 부질서의 한 복판에 프레세페가 존재한다.

오늘의 나폴리는 성과 속이 뒤섞여 돌아가는 프레세페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아니 전 유럽에서 가장 도둑이 많은 도시이자, 온갖 종류의 여행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 인간의 탐욕과 질투, 야욕과 생존본능이 일상에 녹아들어 혼돈이 오히려 흥미진진함과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 그곳이 바로 나폴리다.

▲ 나폴리 항구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