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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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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7월 11일 (토) 17:49:03
최종편집 : 2020년 09월 14일 (월) 21:42:22 [조회수 : 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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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보가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박원순, 그는 인권과 사회개혁에 크고도 또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1학년 때 유신반대시위 가담으로 투옥, 대학은 제적됐고,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 후 사시에 합격, 검사가 됐으나 1년 만에 그만두고 인권변호사가 되어 약자 변론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참여연대를 설립하여 반부패, 정치개혁, 재벌개혁에 매진하는가 하면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으로 영역을 넓혀 지칠 줄 모르고 시민운동에 열성을 다했다. 정치적으로도 역량을 보여 서울시장에 내리 3선을 이뤄내는가 하면 한때는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처럼 눈부신 활약과 업적으로도 성추행이라고 하는 범죄행위를 상쇄할 수도, 덮을 수도 없다. 비난받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미 고인이 된 이를 비난한다 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득이 되는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럴 때의 교훈은 입으로 떠들기 전에 이미 사건을 접했을 때 내면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망자를 욕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저하시킬 뿐이다.

그의 죽음을 무책임한 것이라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또한 한 치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해서 자기가 자기를 살해하는 엄연히 살인행위인 자살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한다 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비난하는 자신을 매정한 인간으로 만들뿐이다. 비난하지 않는다 해서 자살을 옳다 할 사람은 없다.

우리는 비난하기 전에 먼저 당사자의 아픔부터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박 전 시장이 왜 그 같은 선택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성추행이라는 부끄러운 행위가 자신이 평생을 쌓아온 됨됨이를 여지없이 허물어뜨린 데에 대한 아픔이 컸을 것이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지위를 자신의 명예라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부를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인격을 명예로 생각한다. 그런데 인격을 명예로 생각하는, 됨됨이를 영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너졌을 때 가장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다가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도 심해 견딜 수가 없으면 극단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길을 선택한 이들을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며 추모하는 것을 보아왔다. 사랑 받을만한 사람이기에 옳지 못한 선택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박원순, 그는 못 다한 인생의 끝자락에서 천인이 공노할 범죄를 두 번이나 저질렀다. 성추행에 스스로를 살해한 살인, 둘 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범죄이다. 그러나 사자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는 그의 명복을 빌어 주면 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 떠난 사람도 위한 것이다.

이제 비난으로 망자를 부관참시하는 것 같은 일은 삼가자. 그렇지 않아도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하지 말자. 더더욱 삼갈 일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다. 피해자는 박 시장의 죽음으로 얼마나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을지도 헤아려 볼 일이다. 피해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있다면 약자라는 현실뿐이다. 신상을 털어 공격하는 일은 말아야 한다. 그러는 것은 박 전 시장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은 남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남을 보는 데엔 익숙하나 자신을 보는 데에는 서툴다. 서툴다기보다 자신의 내면에 관해서는 무관심할 때가 많다. 그게 단점, 약점에 이르면 남에 대해선 힐난이 푸짐해지나, 자기의 그런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사람에 따라서는 특히 강한 면 우수한 면이 있는가 하면, 특별히 약한 면 열등한 면도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은 아마 이번에 문제가 된 그 점이 특히 취약한 점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어떨까. 나에게는 어떠한 면이 됐건 그런 취약점은 없을까. 이번에 문제가 된 그런 면에서 내가 박 전 시장보다 낫다고 해서 총체적인 됨됨이도 나은 것일까.

인간사회의 많은 문제점은 사람들 저마다의 자기성찰 부족에서 온다. 남은 확대경을 들이대고 들여다보는데, 자기의 내면은 눈여겨 볼 생각조차 하지 않다보니 남은 항상 나쁘고 나는 언제나 나쁜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자기 눈 속의 들보는 의식도 되지 않는데, 남의 눈 속의 티는 들보로 보이는 것이다. 자기성찰이 남의 눈 속의 티도 빼게 하고 나의 눈 속의 들보도 빼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이유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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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122.101.20.169)
2020-07-13 06:33:44
本 글의 요지가 성추행범인 박원순이가 죽었으니 더 이상 그의 잘못을 탓하지 말고
그냥 보내주자란 요지의 글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그냥 별일 없었다는 듯 보낼 수가 있을까!
최소한 박원숭이가 무슨 짓을 해서 왜 고소를 당했는지 그의 죄는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도리일 것이다.
本 글을 쓴 사람은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그저 친북좌파 박원순이의
죽음만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편향된 시각으로 글을 써서야 어디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싶다.
만약 야권에 있던 사람이 박원순이와 유사하게 자살을 했다면 본 글을 쓴 사람이
이와 같이 "죄 없는 사람 돌로 치라"라고 글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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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김경환 (222.100.38.174)
2020-07-12 00:17:12
성폭행범 안희정, 성폭행범 오거돈, 성폭행 용의자 박원순의 대처법
1. 성폭행범 안희정의 경우

안희정은 미투 관련 온갖 비난에 회피하지 아니하고 이를 그대로 감수하고 있다. 쪽이 팔릴지라도 이를 회피하지 아니하고 있다. 反論도 펼치면서...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아무리 부끄러운 짓을 했을지라도 이에 상응한 問責을 모질게 견디고 있는 중이다.

2. 성폭행범 오거돈의 경우

오거돈은 미투 관련 온갖 비난에 잠적했다가 얼마 후에 나타나 또라이로 취급받으며 쪽이 팔릴 때로 다 팔렸지만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다. 이제 조용히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완전 바보가 되어도 이를 그대로 견디고 있다.

3. 성폭행 용의자 박원순의 경우

박원순은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걸 두려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온갖 비난을 묵묵히 감수하기보다는 노무현, 노회찬 등 뇌물죄로 낙인찍히는 걸 두려워한 자살 선배들이 死後에 정치적으로 부활한 선례를 學習效果하여 이들의 뒤를 따랐다.

박원순과는 비할 바 없는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사담 후세인조차도...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美, 英 등 연합군의 반격으로 최후까지 쥐구멍에 숨어 抗戰하다가 발각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교수형 직전에도... 사형집행인과 언쟁을 벌이다가 구타당한 직후 교수대에 매달려 생을 마감하였다.

4. 결론: 박원순은 生을 마감함에 있어서 예수님이 걸었던 길을 따르지 않았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라는 성경구절을 자살에 적용시키는 건 무리다.

예수님은 이른바 범인(용의자)이 ‘죄 없는 자’로부터 돌로 맞을 것을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자살하라고 말씀한 바 없다. 범인(용의자)이 돌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자살해버리면 돌 던질 필요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8:7)을 자살과 연결시키는 건 古代 소피스트에게나 어울릴법하다.

죽음에 관한한 예수님은 자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빌라도 법정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고 채찍질까지 당했던 예수님은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의 목숨을 포기하지 아니하면서 꿋꿋하게 버티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버린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려 그 生을 달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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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7-12 01:48:08
- 박원순 서울시장 집무실의 '침대' (퍼온 글: 비바람) -

어느 기자가 이해찬 더불어당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인에 대한 의혹이 있는데 당 차원의 대응을 할 것인가"
그러자 한 성질 한다는 이해찬이 버릇처럼 버럭했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XX자식 같으니라고"
 
인생 70고희를 내일 모레 바라보는 이해찬의 개버릇은 언제쯤 고쳐질 것인가. 열심히 정당하게 살아가는 기자가 성추행 범죄로 자살한 박원순에게 왜 예의를 차려야 하는가. 박원순에 대한 예의를 강요하지 말라. 차마 죽지 못한 오거돈이나 안희정, 그리고 더불어 만지는 당, 또는 더듬는 민주당이라고 소문난 그 정당 사람들이나 예의를 차리던가 말던가 하면 될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박원순에게 보낼 동정은 일말도 남아있지 않다. 박원순은 위선의 왕자, 성추행의 황태자였다. 이런 인간이 서울시장이라니. 이런 인간을 서울 시장으로 뽑은 사람들도 차라리 자살하는 것은 어떨까. 이런 인간에게 예의를 차리라는 인간은 또한 제정신인가. 예의는 피해자에게 보내고 가해자에게는 조롱을 보내라. 박원순을 옹호하는 미친 놈들에게도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어라.
 
박원순의 성추행은 오거돈과 안희정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안희정에게는 '사랑했었다'라는 변명할 여지라도 있었다. 박원순은 성추행 면에서도 치사했고 저열했고 비겁했다. 여비서에게 음란 사진과 음담패설을 보내는 서울시장이라니. 일베충 수준도 되지 못하는 박원순이었다. 그러고도 박원순은 자살하면서도 피해자에게는 사과를 안 하는 파렴치였다.
 
위선으로 따지자면 박원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남한 좌익의 대표선수였다. 위선에서는 남한 빨갱이들이 한 가닥 하지만, 위선의 왕자 조국도, 위선의 황제 문재인도 한 수 접어야 했던 것이 박원순이었다. 박원순은 자살하기 며칠 전까지도 최숙현 선수의 자살에 이런 발언을 했었다. "어떤 폭력과 인권의 침해도 용서하지 않겠다"
 
박원순이 자살할 때 박원순을 방문했던 저승사자는 호국영령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을 만세를 부를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다가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천막은 무참하게 철거하던 박원순, 아 그 모순이여! 부르다 죽을 민주주의여! 얼어 죽을 박원순이여! 이런 파렴치범의 장례식을 왜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시민장으로 한단 말이냐. 미친 놈들이여!
 
신발 뒷굽을 일부러 뜯어내어 사진을 찍는 쇼맨십, 하느님도 울고 갈 박원순의 그 위선, 허위. 옥탑방 월세방에 사는 서울시장,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니 월세는 200만, 거주는 한 달. 책상에 서류더미를 산처럼 쌓아놓고 일하는 박원순의 사진, 그 쇼맨쉽, 위선의 양두구육. 위안부 문제로 서울시에서 주도하는 일본산 불매운동, 그러나 박원순 자가용은 일본산 렉서스. 박원순은 인생 자체가 위선이요, 거짓인 인생이었다. 그 위선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은 3단계 구조였다. 시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비서실이 있고 비서실 안쪽에 시장 집무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집무실 안쪽에는 책상과 회전의자가 출입문을 바라보며 놓여있다. 그리고 회전의자 뒤쪽에 조그만 출입문이 있다. 침실로 통하는 문이다. 침실에는 침대가 놓여있고 화장실로 통하는 문이 있고, 화장실에는 샤워시설과 변기가 놓여있다.
 
박원순 시장의 침대는 아마도 '야근하는 서울시장'의 상징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설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의 개버릇은 어쩌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침대는 여비서를 추행하는 데 사용되었고, 여비서에게 보낼 음란사진을 찍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명색은 서울시 '지휘본부의 야전침대'였지만 본색은 '무인 모텔의 물침대'였다. 박원순은 그런 변환 능력의 소유자였다.
 
박원순의 뜯겨진 운동화, 집무실 책상의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 옥탑방의 박원순. 이런 것들은 열심히 뛰고, 열심히 일하고, 서민적인 박원순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지구상에 이렇게도 쇼맨쉽을 좋아하는 인간이 있던가. 집무실의 침대, 야근하는 박원순이라는 이미지의 본색은 성추행범 박원순이라는 본질이었다. 겉과 속이 이렇게도 다른 인간이 지구상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었다니, 이런 위선과 파렴치범의 장례식을 혈세로 치르려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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