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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농부!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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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7월 01일 (수) 23:20:47 [조회수 : 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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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다 보면 기본적으로 보고 듣는 것들이 많다. 둘러보면 보이는 것이 산과 들인지라 계절마다 그 계절에 맞는 식물들을 만난다. 봄을 좋아하는 나는 3월의 노랗게 솟아나는 새순에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진다. 한때는 봄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려 연애를 하고픈 마음이 컸으나 그때마다 스치는 봄바람처럼 지나가니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 쉬운 것이 없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사계절 배경은 언제나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농촌의 낭만을 심어주는 영화가 되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살다보면 그만큼의 매력은 건지지 못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본적인 경제력만 부여된다면 농촌살이는 도시살이보다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연과의 합일을 경험하는 기회는 도시보다 농촌이 확실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웃집의 다섯 살과 여덟 살 난 아이들은 도시에서 살다 왔음에도 농촌의 삶 속에서 온전한 삶을 향유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 온전한 삶의 발현은 지금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삶 속에서, 세상사 쉽지 않다고 느낄 때, 자연에서 살았던 그들은 그들의 내면에서 발하는 빛으로 또 다른 세상을 느낄 것이라 자신한다. 그것은 내가 그랬으니까.

요즘 부쩍 비가 잦다. 잦다기보다는 우악스럽게 내리곤 한다. 이전에는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다운 느낌이 강했는데 요즘은 최근 몇 년 전부터 계절다운 비보다는 아열대 기후의 비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비를 맞으며 걷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비는 센 느낌이 강하여 춥고 아플 것 같다. 여름에 내리는 비지만 시원하다는 생각보다는 걱정스럽게 바라봐진다. 비오는 날 창을 열고 바라보는 정경도 사라졌다. 꼬마 고양이들이 문만 열리기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냅다 들어와 온 집을 쑤시고 돌아다닌다. 마치 자기 집인냥!

내가 사는 집은 마당이 있는 ㅁ자형 집이다. 비가 오기 전 강렬한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마당에 널따란 차양막 두 개를 쳐 놨는데, 비가 오면서 비를 머금은 차양막이 꼴사납게 축 늘어졌다. 그물 사이로 쏟아지는 비는 흙마당을 파헤쳐 놓았다. 물이 내처럼 흘러 충견 한라가 사는 공간을 점령하여 한라의 거처가 불분명해졌다. 한쪽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처량한 나그네 신세다. 이렇게 거친 비가 올 때마다 한라의 표정은 참 애처롭다.

비가 그친 뒤 저녁이 되니 서늘하다. 창을 닫고 커튼을 친다. 선풍기는 당연히 켜지 않는다. 이 서늘한 기온이 또한번 나의 걱정을 산다. 이번에는 작물이 시원찮다. 다른 밭들이야 나와 상관이 있겠는가. 오롯이 내 밭을 바라본다면 작년보다 시덥지 않은 작물들의 자람새다. 지난주에 캔 감자도 생각보다 작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이와 감자는 성장을 멈췄다. 호박 키우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호박이 내 엄지손가락만큼 자라 기대를 품고 이튿날 아침 가보면 어느새 떨어져 있다. 오이도 내 새끼손가락만큼 열렸는데 한낮의 볕에 말라 비틀어졌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는 웬만하면 자라는 작물인데 지금은 나 여기까지만 크겠노라 선포하는 것처럼 성장이 멈췄다. 둘러보면 반찬이라 했더만 입이 방정이었던가! 올 여름은 밥상이 휑하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는데, 이번년도의 내 밭의 작물들은 가엾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는커녕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으니 난 영락없이 양아치 농부다. 밭은 이미 풀이 작물을 이겨가고 있다. 간간히 풀을 매주고는 있지만 비가 한 번씩 쏟아지고 난 뒤에는 밭에 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한 번 마음이 떠나면 그 해 농사는 또 엎어진 거나 진배없다. 그래서 억지로 움직이지만 작물과 풀은 어느새 일심동체가 되어 작물도 나를 농락하는 듯 보인다. 신기한 것은 풀의 위장술이다. 풀은 풀대로 작물과 비슷한 모습으로 기생한다. 파 옆엔 파와 비슷한 풀이, 토마토 옆엔 토마토와 비슷한 풀이 자란다. 그래서 잘못했다간 풀을 뽑다 작물도 뽑을 판이다. 살아가는 방법이 이렇게 용의주도하니 어찌 풀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했다. 풀을 이길 방법은 없다고. 그러나 이길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하나! 곧 부지런함이다. 오직 부지런한 농부만이 풀을 잡을 수 있다.

에휴! 그러니 나는 양아치 농부다. 주어진 때에 따라 농사를 짓는 것이 분명하건만 나는 하늘의 때가 아니라 내 때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 한량 농부다. 그래도 감자를 거두고 난 밭에 콩을 심겠다고 모종은 잘도 키워놨다. 할 것은 다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두는 것도 중요한 것이거늘, 거두는 것이 늘 서투르다. 만년 초보 농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한다. 이번 콩은 제 때에 잘 거둬야지! 이번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예초를 해볼까나. 풀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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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석 (222.107.38.147)
2020-07-02 07:21:24
헌금 명분으로 칼 같이 돈 땡기드만

한번 자기 주머니에 들어가면 나오지를 안해요

죽을자리는 왕국으로 만들어 놓고 --> 그 영감은 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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