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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환란 시대에 예배, 어떻게 드려야 하나포스트 코로나19시대의 목회와 신학 세미나 열려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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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5월 26일 (화) 20:54:40
최종편집 : 2020년 06월 02일 (화) 16:24:21 [조회수 :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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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환란 시대에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 온라인 예배는 주일 공중예배의 확장인가 변질인가?”

이러한 주제로 감신대 M.Div총동문회가 26일 서울 은평구의 응암교회(이기철 목사)에서 감신대 전 총장을 지낸 김진두 박사와 웨슬리안조직신학 연구소장인 임성모 박사를 초청해 ‘목회와 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 강의1 : 김진두 박사

코로나 바이러스 환란 시대에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

 

웨슬리를 전공한 김진두 박사는 웨슬리안의 입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환란 시대에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할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김박사는 이 강의가 학문적이라기보다 목회적 입장에서 코로나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 실제적이고 대화같은 강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많은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답이 없다. 미래를 누가 알겠는가. 지금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에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기에 미래를 예언하듯 예배에 대해 섣불리 말해선 안되겠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온라인 예배가 미래를 대신할지도 모른다고 믿는 이들에 대한 경고같은 것이었다.

먼저 김박사는 기독교 전통에 파괴적으로 다가온 코로나 바이러스 환란을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할지를 제시했다. 자연의 재앙인가 인간 재앙인가. 교회목회를 세상적 성공으로 여기던 교회도의 바벨탑인가? 만약 바벨탑이면 하나님의 징치로 무너져야 하는 것이고, 미국과 유럽에서 예배를 소홀히 하다가 100년에 걸쳐 진행된 ‘기독교 후기시대’가 코로나 시대를 맞아 한국에서 짧게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결국 교회가 비어버리는 기독교 후기시대의 상황에 떨어지지 않는 방법은 ‘예배의 회복’에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예배의 소홀은 죄이자 타락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주일성수가 쉽게 양보되는 경험을 겪었다. 교회 안 가니까 편하고 시간이 많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까지 말한다. 그러나 천국에 손잡고 같이 갈 동료 순례자를 찾아야 한다. 교회는 모이는 곳이고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게 해야 한다. 물론 영상예배도 만들어야 하고 예배문도 만들어야 하지만 어떻게 하든지 주일 예배를 생명같이 지키게 하는 것이 목회다.

김박사는 그 당위성과 해결책을 웨슬리와 감리교 예배 전통에서 찾았다. 웨슬리도 시간이 갈수록 예배와 성만찬을 강조했다. 웨슬리는 글라스고우대학에서 성찬을 받을 때 무릎과 두 손으로 받으며 뜨거워짐을 경험했는데 과연 영상예배에서 그 같은 영성체를 할 수 있겠는가.

김교수는 교회 속의 작은 교회인 속회를 더욱 발전시킬 것, 주일 오후나 저녁예배를 없애지 말 것, 기도회를 다양하게 갖게 할 것을 제시했다. 결국 전통으로 위기를 넘기자는 것이다. 김교수는 특히 찾아가는 예배를 강조했다. 가깝게 많이 모이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웨슬리가 광산을 찾아가서 하루 일과가 끝나기를 기다려 광부들과 예배했던 것처럼 신자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예배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웨슬리가 일생 그랬던 것처럼 ‘편지 목회’를 통해 만남이나 전화와 또 다른 감성으로 성도들을 돌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비대면 시대에 영상 심방, 영상 상담도 대안이 될 수 있으나 모이지 않는 예배는 결국은 우리의 믿음을 약화 시키고 교회가 비어 버려 서구 기독교가 겪었던 ‘텅빈 교회의 시대’를 한국에 불러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영상예배를 과신하지 말고, 그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도 지양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하단에 발제문 참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한국교회 예배 :

온라인 예배는 주일 공중예배의 확장인가 변질인가?

 

코로나 사태로 예배당 주일예배를 대신해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온라인 예배에 대한 이해가 목회자들 사이에서 ‘반드시 예배당에서 드릴 필요가 없다’거나 ‘목숨 걸고 예배당 예배를 성수해야 한다’ 등으로 갈렸다. 소위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이다.

임성모 교수는 이러한 때에 교회가 명쾌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으면 메시지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의를 통해 주일예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신학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임교수는 영국 감리교회의 현재 처지를 소개했다. 영국 감리교회는 더 이상 존속이 불가능해 성공회에 통합을 애걸하는 처지인데 그 이유를 ‘영국 감리교회는 웨슬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 감리교회의 목사들은 더 이상 예수나 구원을 말하지 않고 사회적 실천만을 이야기하여 신비를 잃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으로 들리는 그의 주장은 예배가 교회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임교수는 또 지적한다. 그는 예배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는 “사사로이 예배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배는 사사로운 게 아니라 ‘Corportate worship’ 즉 공동체로 연합하여 더불어 예배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분명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나 하나님은 백성가운데 임재하시는 분이며 자기 백성을 만나는 장소요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서 성전, 즉 교회에서의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종교심의 발로가 아니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며 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도 하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지만 교회는 성전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이 명제를 임교수는 비유(metaphor)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관념 속에 비유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회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사건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예배의 핵심 사건으로 성찬식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성찬식이야말로 예배의 절정이라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교회는 숫자의 많음과 적음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님으로 모신 신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니지만 성전인 주님과 연합했다는 점에서 교회는 성전이다. 주님은 우주적이지만 특히 신앙공동체 가운데 임재하신다. 교회, 곧 신앙 공동체를 떠난 사적 예배는 가능하지만 성서적이지 않다. 예배는 더불어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 가운데 온라인 예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임교수는 온라인 예배가 위기 때 활용도가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 온라인 예배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부족하고, 주일 공중예배를 보조할 수는 있으나 온라인 예배가 주일 공중 예배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온라인 예배가 △영지주의적이고 △개인주의와 자족주의를 조장하며 △영적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 단지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만으로 예배가 충족될 순 없다고 지적한다.

임교수는 한편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배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예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행사를 줄여 예배에 집중하며 본질과 비본질을 잘 이해해 비본질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본질은 지키자고 제안했다. 김진두 박사와 임성모 교수 각각의 강의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하단에 발제문 참조]

 

   
▲ 사회 : 민돈원 목사
   
▲ 기도 : 김명길 목사
   
▲ 인사말 서치호 목사(감신대 M.Div총동문회장)
   
 
   
 
   
 
   
▲ 안내 : 응암교회 이기철 목사
   
▲ 질문
   
▲ 강의2 : 임성모 교수
   
▲ 질의응답

 

 

제1강 코로나 바이러스 환란 시대에 예배 어떻게?
-웨슬리안 견해-

 

김진두 목사
감신대 및 대학원 졸 글라스고우대학 신학석사 영국 브리스톨대학 Ph.D
영등포중앙교회 담임 역임, 감신대 전 총장 현) 감신대 석좌교수 한국웨슬리연구원장


서언:

- 본 강의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환란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의 예배의 회복을 다룬다.
- 학문적인 논문이라기보다는 실제적인 강의- 경험적인 강의
- 목회의 실제와 감각을 가지고 공감하는 강의
- 부정과 비판이 아니라 믿음과 긍정과 희망을 가지는 세미나 강의이다


1. 코로나 바이러스 환란에 대한 인식

1) 자연 재앙인가 인간 재앙인가?
- 올 봄에 하늘이 파랗다- 맑다- 황사미세먼지  없어- 왜- 중국이 공장이 문 닫으니까
-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박쥐 동굴을 파헤쳐서
- 충청도-  냅둬
- 박경리-  자연: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 가지고 살자
- 강화군수- 깡패- 권사- 성자만든 강화감리교 위대하다- 그런데 자연 –군수실에 불행
- 교회도 자연환경 파괴 많이 반성하고 올바른 창조신학을 가르쳐야
 
2) 인류의 바벨탑이 무너지는가?
-인류는 지능은 높지만 지혜롭지는 못한 존재인가?
-인간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생물이며, 가장 눈부신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교회도 바벨탑인가?- 만약에 교회목회를 세상적 성공으로 여긴다면 바벨탑이다.

3) 한국 교회가 Post Christian Era를 급속하게 맞이하는가?
-  서구의 교회가 약 100년에 걸쳐서 경험한 기독교 후기 시대를 한국 교회는 불과 서너 달 지극히 짧은 기간에 경험하는가?
-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기독교 후기시대 현상은 인간의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인간 의 욕심과 정욕대로 살려는 반항이며 불순종이며 잘못이다-  죄악이며 불신앙이며 타락이 다.
- 한국교회는 유럽이나 미국에서와 같이 교회가 텅비어버리는 기독교 후기시대로 상황에 떨어지지 말아야 하며 시대의 불신앙을 이겨내야 한다.

4) 인류의 삶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2. 교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 예배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
- 교육 공동체===
- 섬김의 공동체===
- 선교 공동체===


3. 웨슬리와 감리교 예배 전통

1) 예배란 무엇인가?
- 예배가 종교이며, 신앙이다- 제일 먼저 예배가 있었다- 교회도 나중에 세어졌고 신학도 교리도 나중에 생겼다.
- 길희성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도종교에서 영성으로’ 라는 대담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낭만적이고  성경적이지않다- 제도종교는 개혁되어야 하지만 예배종교는 더욱 확실하고 부흥하여야 한다.
- 예배는 인간이 창조주께 대한 기본 의무이다- 하나님을 예배 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 다
- 예배는 인간의 행복이다.
- 본회퍼는 창조의 질서를 가정(결혼), 노동, 이 두 가지를 들었는데,- 나는 창조의 질서 중에 첫째는 예배라고 생각한다.
- 하나님은 창조의 주님, 만유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예배와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 으셔야 한다.
-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 반역이다. 가장 큰 죄요 제일 큰 불행이다.
-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을 해도 –무슨 신학으로 답변을 해도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않 는 것은 가장 배신이요 배은망덕이요 무질서요 죄악이요 불행이다.
-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인간은 불행하고 하는 모든 일이 헛되다.
- 신앙은 참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당에 모여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 교회가 텅비고 예배가 사라지는 것은 타락이고 멸망이다-  그것은 너무나 큰 슬픔이요 불행이다.
- 토마스 순교자의 고향 교회 하노버교회 이야기- 한국식인종에  먹혀주었다고-
- 영국 교회 이야기- 노인들만- 슬픈 이야기
-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쉽게 예언하고 인정 하고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 예배를 생명으로 여겨야 한다.
- 아브라함의  예배를 생각해보라- 조카 롯과 다른 길을 가다- 마므레 상수리 숲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그의 행복- 그는 그 행복을 확실히 선택하고 잃어버리거나 뻬앗기지 않았다.
- 초대교회를  보라- 박해시대에  – 카타콤- 예배는 생명이다- 생명을 -


2) 성전 예배의 중요성
- 성전의 의미--예배당의 의미
- 구약시대- 믿음의 선조들의 성소
-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한 성전
- 백성을 만나시고 – 백성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 성전에서 만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 성전에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 성전에서 전쟁과 환난에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 성전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 온 나라와 세상으로 흘러들어가는 축복의 역사
- 예수님-하나님의 집- 내 아버지의 집- 만민이 기도하는 집-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고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 초대교회
- 교회사


3) 웨슬리의 예배 갱신
- 교구교회 주일예배를 강조한 웨슬리
- 주일저녁예배를  창시한 웨슬리
- 영국 국교회의 리터지(The Book of Common Prayer); 예전예배와 성례전)를 애호한 웨슬 리
- 웨슬리의 고교회주의(High Churchmanship)
- The Book of Common Prayer란 무엇인가?
- 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신학과 실천,
- 웨슬리의 공동기도서 축약판의 의미
- 웨슬리의 리터지 예배와 비리터지 예배의 결합과 조화
- 웨슬리의 열성적인 성례전주의
- 웨슬리가 실천한 각종 기도모임과 영성 훈련 모임

4. 한국 교회가 예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코로나 사태 이후에 대하여 세미나도 많고-
- 많은 학자들- 미래학자들이  온갖 이론과 학설 많이 내는데
-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 코로나 이후에 대하여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 어떻게 되리라 섣불리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라고 아무도 예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 하나님만 아신다.
- 또 한 가지 위로는 – 한국교회는 좀 시간이 걸리고 좀 당분간 충격은 있겠지만- 또 다 시 잘 모이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만 현재 보다 미래 즉 10- 20 –30  년 후에는 문제가 심각해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된다
- 주일학교가  줄어드니까- 아이들과 청년들이 교회에 열심히 안 나오니까- 오늘은 당장 예배를 주제로 삼지만
- 나는 주일학교 어린이와 중고생들과 청년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 아이들이 교회에 성경을 배우고 기도와 찬송을 배우면서 자라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인데 말이다.
- 나는 요즘 고향에 내려가 살면서- 내 인생의 제일 행복한 추억을 더듬으며 즐거워하며 감사한다
-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 들과 바다와 산으로 달려 뛰며 놀던 추억이고 또 하나 는 교회에 다니며 성경 배우고 찬송을 부르던 추억이다.


<주일성수>

1) 어떤 변화와 요구와 이유에도 주일 예배를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든지 주일 예배를 생명같이 지키게 하라 이것이 목회이다
-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린다- 교회 안 가니까 편하다 시간이 많아- 여유가- 다른 일- 여행도 좋다- 이거는 죄다
- 죄송하다고  갈급하다고  해야
2) 교회에 나와서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게 하여야
3) 못 나오면 있는 곳에서 성수주일하고 주일 예배를 바르고 경건하고 드리게 자신을 거 룩하게 하여야 한다.
4) 수를 나누어서- 시간대를 나누어서 드리게도
5) 영상예배도 만들어야
6) 예배문도 만들어야


<성만찬 어떻게 하나>

- 천주교회 문제 심각- 왜-
- 웨슬리의 실천-
- 성만찬 어떻게- 설교의 길이를 줄이고- 성만찬을 거룩하게-
- 영국에서 글라스고우대학에서 성찬 받을 때에- 무릅 두손으로- 뜨거워져
- 천주교회가 영성체를 어떻게 영상으로 했는지?- 과연 영상으로 온전한 영성체를 할 수 있는지
- 교회는 성례전적 공동체- 모여서 함께 떡과 포도주를 받고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교회이다.


<속회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 웨슬리의 묘수였다.
- 교회 속의 작은 교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 영원한 대안이다.
- 목사가 직접 지도, 관리해야 한다.
- 유능한 속회지도자를 길러내야

 

<주일 오후나 저녁예배>

1) 어떠한 예배도 없애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 없애버리면 다시 시작하기 참으로 어려워진다- 한 번 잃어버리면-
2) 나누어서 또는 기도회로 바꾸어서 순번제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도회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1) 가족기도회 제공
2) 기도문이나 기도집을 만들어야
3) 주보에나
4) 기도편지


<모이는 교회와 동시에 영성생활을 잘 가르쳐야>

- 영성목회와  영성 생활을 키워야 한다
- 신자의 영성 형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영상 심방, 영상 상담>

- 어떤 상담가- 영상 상담 더 좋다고
- 전화 심방도 필요
- 매스메디아와  영상 전달의 유익과 위험
- 영국 BBC의 경험


<웨슬리의 편지 목회>

- 편지는 만남이나 전화와 또 다른 감성이나 효과 있어
- 웨슬리는 일생 편지 목회를 하였다.
- 웨슬리 편지 전집 12권
- 지난 겨울에 웨슬리의 편지 전집을 읽으면서 은혜- real wesley를 발견- 왜냐하면 편지 에는 사람의 깊은 진심이 담기기 때문이다.
- 새로 쓴 책 ‘웨슬리의 행복론’에 편지에서 많이 인용
- 웨슬리는 은혜의 방편으로서 <편지의 날>을 운영- 은혜로운 편지를 함께 읽고 또 편지 쓰기도 했다.
- <영상  편지>  찍어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유튜브에 <무여 스님의 아름다운 사찰 여행>


<결론: 정리>

1) 모이는 교회를 더 잘 만들어야

2) 주일예배를 더욱 은혜롭게 만들어야

3) 성서적 복음주의 신앙과 복음주의 구원의 확신을 더욱 분명하게 심어야
- 신앙은 죄와 죽음 때문에 필요하다.
- 교회는 영원하다.
- 예배는 영원하다.
- 목회는 영원하다.
- 목사는 영원하다.

4) 짧은 설교와 성례전을 조화롭게 만들어야

5) 다른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예배, 기도회, 등 다양하고 효과적인 영성 훈련 목회 프로 그램을 발전시켜야

6) 교회가 세상적 물량적 성공주의 욕심을 버려야
- 교회는 이제 진정으로 본질적인 의무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곧 예배이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돌보는 일이다.
- 교회는 영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고 더욱 진질하고 충실해야 한다.

7) 교구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8) 교회는 거룩하고 순수하고 진실해야 한다.
- 일상과 세속에서
- 도덕성에서

9) 교회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길러내야 한다.
- 더욱 좋은 국민, 시민을 만들어야 한다.
- 정직한 사람
- 사회와 나라에 봉사하는

10) 성서적인 창조 신학을 가지고 자연 환경을 지켜야 한다.

11) 교회는 시대에 따라서 발생하는 이단과 무신론과 반기독교적인 불신앙적인 사상과 문 화에 대하여 경계하고 영적 전투에서 이겨야 한다.

12) 주일학교 살리기에 순교적인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한다.

 * 아래 논문에서 각주는 생략해 편집했음을 알린다 - 편집자 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한국 교회 예배:

온라인 예배는 주일 공중 예배의 확장인가 변질인가?

 

임성모 목사
감신대 및 대학원 졸 에모리 Th.M 예일대 S.T.M 옥스포드대 Ph.D
강화권능교회 담임 역임 현)웨슬리안 조직신학연구소장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65:4, 개역개정)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대부분 교회가 두 달 가까이 예배당 주일 예배 대신 가정에 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소위 진보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는 이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예배당에서 드릴 필요 없다. 어디서나 예배드리면 된다. 앞으로도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다’ 등등의 견해가 그것이다. 보수측은 온라인 가정 예배를 비상시국 가운데 어쩔 수 없는 선택 정도로 여겼고, 진보측은 기존 공중 예배에 대한 대안으로까지 추켜세웠다. 최근에는 온라인 성찬식을 인정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발제자는 주일 예배 중단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 신학자 목회자에게 예배 신학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나서 더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 교회가 명쾌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은 채 교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고 있다.

목회자는 주일 공중 예배를 드릴 때나 중단할 때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신학적 근거와 정당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신자들이 혼란스러워할 뿐 아니라 예배는 결국 종교적 관습이나 사회적 모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번 경우처럼 공중 예배가 상대화되면, 앞으로 평신도들은 한국 교회가 강조하던 ‘주일 성수’나 ‘성전 건축’에 대해 시큰둥하게 반응하지 않을까싶다.

이런 관심사를 가지고 발제자는 주일 예배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신학을 제공하고자 한다. 응용은 그 다음이다. 신학 없는 방법론은 공허하다.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한다. 예배 신학 기본을 튼튼히 세운 뒤, 즉 성서적 예배 이해를 정확히 한 뒤 시대적 상황에 대해 탄력성 있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제자는 성전과 교회와의 관계, 예배의 정의, 안식일과 주일과의 관계, 온라인 예배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차례대로 설명 하겠다. 결론에서 예배 관련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열어둘 것인가에 대한 제언을 하겠다.

 

성전과 교회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시139:7-10)1). 영어로는 omnipresence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자유 하시므로 어느 한 장소에 매여 있지 않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의 거처를 특정해서 하늘로 보았다 (신 26:152); 왕상 8:303)). 예수님도 제 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라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 앉으신다(사 6:14)). 지상에도 하나님의 거처가 있다. 성소(the Tabernacle)와 성전(the Temple)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자유로이 거하시고 떠나신다. 에스겔 10장에서, 하나님은 성전에 임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신다(겔 4, 185)).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소와 성전에서 당신의 백성과 만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아브라함, 야곱, 모세 등에게 나타나셨다. 그러나 계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성소와 성전을 통해 임재(presence)하셨다(출 25:8-96); 왕상 8:1-21) (Peterson 2000: 858).

성막과 성전은 이스라엘 영성의 핵심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종교성의 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였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막이 수축되고 제사 양식이 규정되었다(출25-30).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위해 진 중앙에 세워지고(민 2:17)),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다(출 29; 레 1:1-17: 16). 솔로몬 성전에서는 성가대 활용(대하 5:12-138)) 등 예배 양식이 발전했다.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벨론 침공에 의해 파괴되었다. 스룹바벨성전(기원전 516년 완성)에 이어 기원전 20년경부터 헤롯이 성전을 크게 만들고 장식을 화려하게 꾸몄다 (Meyers 1996: 1096).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의 성전 제사와 포로기 이후 발전된 회당(synagogue)이 공존하고 있었다. 회당에서는 희생제를 드리지 않았고 주로 성경읽기와 기도가 행해졌다(Saldarini 1996: 1079).

이런 배경 지식을 가지고, 이제는 예수와 성전 그리고 교회와 성전의 관계를 차례대로 알아보자. 단적으로 말하면, 예수가 성전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임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임마누엘이다(요 1:149); 마 1:2310)).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구체적인 몸으로 임재하신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 자기 백성을 이끈다. 구세주이며 화해자다. 대제사장이며 제물이다(히9:2611); 요1:2912)). 성전의 역할을 하신다(참고 Chilton 2005: 782). 반복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다(요 2:19-2113)).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전이고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성전이다(Alexander 2012: 23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임재의 진정한 핵심이다(Hays 2016: 176).

예수의 몸이 교회다(엡 1:2314)). 따라서 교회도 성전이다(고전 3:1615); 고전 6:1916), 여기서 ‘너희’는 복수다. 단수 ‘너’가 아니다. 즉 교회를 가리킨다). 예수와 별개로 교회가 성전인 것이 아니다. 예수가 성전이기에 그의 몸인 교회가 성전인 것이다.

다시 분명히 하자. 교회는 성전인가? 당연히 그렇다. 예수가 성전이기에 교회도 성전이다. 분명히 교회는 성전 전통 가운데 있다. 그렇다면 예배당(church building)이 성전인가?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예수와 교회가 성전이지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은 교회 공동체이라는 내용을 담는 그릇과 같다. 음식과 그릇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초대교회 가정 예배도 신자의 집이라는 예배당에서 드렸다. 가정 예배는 가족 예배와 전혀 다르다. 다양한 신자가 특정한 신자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초대교회는 신자의 집(골 4:1517)), 회당(행 18:418)), 성전(행 2:4619))에서 모였다. 박해 시 주로 신자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고 (White 1993: 38) 기독교 공인 이후 예배당을 특징있게 건축하기 시작했다(Krautheimer 1965: 18). 예배당은 예배와 교육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예배당 자체가 신학을 반영했다(McNamara 2009: 16). 회중의 예배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눈에 보이도록 예배당에 반영되었다(Long 2002, 65). 개신교 예배당은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 예배당과 다르게 단순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단을 가지고 있는 점 에서 구약 성전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리고 회당은 성전과 달리 제사 장소가 아니지만 성전을 본 따 지성소 휘장을 설치했고 모세 오경 두루마리를 보관했으며 등불을 켜놓았다. 예배당이 성전을 모방했든 회당을 모방했든 결국 성전 전통에 서 있다(참고 Block 2014: 322).

그리스도의 몸 즉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도 이해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약에서 לֵהָק(qahal), 신약에서 ἐκκλησία(ekklesia)다 (Giles 1995, 24).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시고 성령 안에서 확증을 가진 이들을 교회 공동체로 묶으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동체로 성장한다 (Küng 1967,82). 성서는 이것을산돌/모퉁이 돌이신 (벧전 2:4-720); 엡 2:2021))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간다(엡 2:21-2222))고 표현하다.

예배의 기원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언약적 만찬시 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고전11:23-2923); 눅 22:14-2024)) (알멘 2010: 17). 예배의 기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주님 에게 있다. 예배 기원이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기에 수많은 혼란이 야기된다. 예배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명심하자.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자의 경배를 받는 객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배란 인간 종교심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하신 크신 일을 찬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다가오셨기에 사람이 응답하는 것이다. Donald Bloesch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에 대한 [회중의] 창조적인 응답이다. 그 응답은 찬양, 선포, 기억, 기도의 형태를 취한다” (Bloesch 2002, 119).

교회의 가장 숭고한 목적이자 활동은 곧 예배다(참고 Van Dyk 2005, xv). 예배를 통해 신 자는 그들이 계약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임을 거듭거듭 확인한다. 관계의 확인이다(vander Kooi & van der den Brink 2017, 324). 관계적 삼위일체 하나님을 매번 찬양하고 배우고 순종하는 가운데 자아를 벗어나서 관계적 인간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 된다(참 고 Witvliet 2005: 25). 따라서 예배는 다른 모든 활동에 진정성을 불어넣는다. 예배 없는 활동 선교 신학 그 무엇이든지간에 쉽게 동력을 상실하고 오염되기 쉽다.

최근 드러난 예배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는 사사로이 예배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이후 확립된 정의는 ‘corportate worship’이다. 한국어로는 공중 예배라고 번역한다. 사사로운 예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동방 정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인 George Florovsky의 인간관(‘기독교인은 교회적 존재, 즉 공동체적 존재’)을 활용해 감리교회 예배학자 James White는 예배는 공동체로 드려야 하고 하나님은 공동체 예배 가운데 거하심을 분명히 한다(White 2000:23). 미국 장로교회 대표적 조직신학자인 Michael Horton은 개인주의적 영성은 종교 개혁자들이 반대하던 것이라고 일갈한다(Horton 2008, 77). 물론 공동체에 개인이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공동체가 예배드리면서 개인도 삼위 일체 하나님을 온 맘과 몸을 다해서 경배한다. 그러나 개인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쳐 교회 공동체를 떠난 개인주의적 예배 옹호는 전혀 반기독교적이다. 개개인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 공동체에 연합하여 더불어 예배한다. 이 점에서 예배학자 Evelyn Underhill 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기독교인의 예배하는 삶은 심오하게 개인적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의 일원으로서다’(Underhill 1948: 83). 존 웨슬리도 고독한 개인주의적 종교 (‘solitary religion’)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단언했다(Wesley1831: 593). 그렇다면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도 여전히 연합한다는 감을 느끼면 되지 않을 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 예배에서 공동체성이란 감이 아니다. 생각에 그 치지 않는다. 그것은 몸과 몸이 만나는 실제적 구체성이다(Bouyer 1982, 294). 교회의 몸 성(구체성, 현실성, 실제성, corporeality)은 구체적 개개인이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도 있지만, 성찬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단지 교회는 예수를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예배 가운데 그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신다. 그의 몸에 연합한다.

다음으로 주일 예배를 생각해 보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공중 예배와 주일 예배, 즉 주일 공중 예배에 대한 해체주의적 생각이 스며들고 있다. 예배는 아무 때나 드릴 수 있나? 물론 그렇다. 그러나 감리교 운동 당시 즉흥적 예배에 대한 존 웨슬리 입장은 확고했다: 모든 신자는 영국 국교회(성공회)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한다. 물론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에서 일어나는 예배를 경시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영국 성공회 주일 예배를 대체 한다고 보지 않았다(George 1996, 32).

유대인에게 성전과 안식일이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날이었듯이 초대 기독교인에게 주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순교자 Justin의 2세기 기록에 따르면, 교인들은 일요일에 모였다. 인근 각처의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말씀을 읽고 성만찬을 하고 연보를 하고 온갖 좋은 일에 대한 교훈을 들었다(Weber 2008: 92. 93). 안식일과의 관계를 알아보자. 초대 교회는 이방 기독교도에게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지 않았다(Bradshaw 2010:84).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다(White 2000: 50, 53). 단지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중요했다(Bradshaw 2010: 86; Johnson 2006:63).

이제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자. 교회는 숫자의 많음과 적음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님으로 모신 신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니지만, 성전인 주님과 연합했다는 점에서 교회는 성전이다. 주님은 우주적이지만 특히 신앙공동체 가운데 임재 하신다. 교회, 곧 신앙 공동체를 떠난 사적 예배는 가능하지만 성서적이지 않다. 권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배는 더불어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일은 거룩한 주님의 날이다. 주일 공중 예배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온 가장 성서적이고 신학적 예배다.

 

온라인 예배 이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주일 공중 예배가 중단되는 사태가 왔을 때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니 좋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위기 때 활용도가 높다. 평소 홍보용과 전도용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가 주일 공중 예배를 대체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온라인 예배가 주일 공중예배를 보조할 수는 있으나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영지주의적이다. 영지주의는 몸을 거부한다. 성육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반대 한다 (Hall 2009: 51, 52). 같은 논리로, 온 몸으로 드리는 예배를 거부하는 것이 영지주의다.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 성도가 지체로서 연합하여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면, 온라인 예배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예배드린다 하더라도 온라인 예배는 여전히 관념의 세계다.

둘째, 개인주의와 가족주의를 조장한다. 교회는 모든 담을 허문다. 인종 남녀 빈부 계급 정당 선호 등을 뛰어넘어 함께 예배드린다. 온라인 예배는 개인주의와 가족주의 담 안에 머물게 한다.

셋째, 영적 성장이 불가능하다. 설교나 예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기저기 채널을 바꾼다. 기독교를 소비한다. 결국 설교가 약한 교회는 신자를 잃게 된다.

 

결론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와 교회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지구가 모처럼 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소비지향적인 삶을 반성하면서 혹시 대안적 삶이 가능할지 모색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예배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있다.25)

예배로 좁혀서 어떻게 할 것이냐를 제안하겠다.

첫째, 예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교회 핵심은 하나님 백성의 예배다. 다른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파생된다. 주일 예배당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 예배가 왜 양보 불가능한 것인지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시대 흐름에 따라 우왕좌왕하지 않게 된다.

둘째, 행사를 줄여나가고 예배에 집중하자. 예배가 확신과 생명력을 준다. 존 스토트 목사는 주중에 교인들이 너무 자주 교회 들락거리면 야단쳤다고 전해진다. 예배드리고 나서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지 왜 자꾸 교회에서 소일하나며 싫어했다.

셋째, 본질과 비본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는 본질이 아니다. 보조적으로 활용하자. 젊은 세대가 인터넷 다루는데 익숙하다고 해서, 그리고 점점 개인주의 풍조가 강해진다고 해서 그것에 영합만 할 수는 없다. 교회는 문화를 활용도 해야 하고 변화도 일으켜야 한다. 온라인 예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성찬도 신학적으로 온전치 못하나 애찬(love feast) 정도로는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비본질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하자. 그러나 본질은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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