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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권력을 잃으면
박효원  |  hyo1956@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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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5월 13일 (수) 23:37:17
최종편집 : 2020년 05월 13일 (수) 23:39:49 [조회수 : 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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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5일, 매년 1,300만 관광객이 찾는다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불탔다. 성당은 1163년에 짓기 시작해서 100년도 더 넘긴 1272년에 완공했다. 예수가 썼다는 가시관도 갖다 놓았다니, 노트르담 성당은 가톨릭의 성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영광스러울 것 같았던 이 성당은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큰 수모를 겪었다. 파리 시민들이 몰려가 성당을 약탈하고 파괴한 것이다. 군중은 프랑스 왕들 조각상의 머리를 모두 잘라버렸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다 왕들의 조각상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성당 제단의 마리아 상은 ‘자유의 여신’ 상으로 바뀌었다. 성당 건물은 포도주 저장고, 음식 창고, 마구간으로 전락했다. 성당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계획도 있었다. 가톨릭 성지가 왜 이렇게 됐을까?

유럽은 1776년 미국의 독립운동과 함께 자유사상이 한창 고조될 때였다. 1788년에 흉년이 들었다. 농민들의 불만이 파리 시민의 봉기와 결합하자, 1789년 혁명이 집어삼켰다. 살해와 폭력이 해를 넘기며 계속됐다. 혁명당원은 종교개혁자들을 불태웠던 자리에 단두대를 세웠다. 단두대는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힌 자들의 목을 쉼 없이 쳐댔다. 광기와 공포가 프랑스를 휩쓸었다.

혁명세력은 가톨릭의 조직과 신앙에 환멸을 느꼈다. 혁명의회는 프랑스가 무신론 국가임을 선포했다.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 이름을 ‘이성의 신전’(Temple de la Raison)으로 바꿨다. 노트르-담(Notre-Dame)이 ‘우리 동정녀’(Our Lady)라는 뜻인 만큼, 마리아는 프랑스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1793년 11월 10일, 혁명당원들은 마리아를 대신 할 ‘이성의 여신’을 뽑아 추대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했다. 그들은 한 매춘부(다른 기록은 오페라 여가수)를 데려왔다. ‘여신’은 흰옷을 입고 하늘색 겉옷을 걸쳤다. 흰옷에 삼색 띠를 하고 머리에 화관을 쓴 젊은 여자들이 ‘여신’을 에워싸고 합창하며 행진했다. “성직자들은 사라졌다. 신들은 없다. 오로지 이성만이 있을 뿐.”

화려한 수레를 탄 ‘여신’이 군중 사이를 누비고 나서, 혁명의회 의장이 ‘여신’을 맞았다. 군중의 환호 속에서 의장은 ‘여신’과 입을 맞췄다.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 아니 ‘이성의 신전’으로 들어갔다. 성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이 환호했다. 모두 제단 앞에 있는 여자를 ‘이성의 여신’으로 경배하고 합창했다. 혁명의회는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해서 행사 때 부를 합창곡을 만들어 뒀다. 작곡가 고세크(François-Joseph Gossec, 1734-1829)는 부탁을 받고 셰니에(André de Chenier, 1762-단두대1794)의 시에 곡을 붙였다. 합창은 천장이 떠나갈 듯 요란했다. “강림하라, 자유여, 이성의 딸이여. 민중은 불멸의 힘을 되찾았노라. 오만한 옛 사기꾼 잔당들을 물리치고, 민중의 손으로 그대의 제단을 더욱 높이리니...”

신성한 교회가 타도 대상이었으니, 프랑스 혁명은 정치 권력만 뒤엎는 민중봉기가 아니었다. 교회 권력도 혁명으로 엎어졌다. 가톨릭 사제는 세속권력을 누리고 있었고 프랑스 사회에서 상위 계급이었으니, 혁명의 적이었다. 혁명당은 성직자에게 명령했다. “로마 교회에 복종하지 말라.” 이 말은 더 이상 성직자가 아니라 평민이라는 뜻이다.

교회가 소유한 땅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1790년 교회의 재산은 프랑스 전체 땅 면적 10분의 1을 넘었다. 혁명당은 교회 재산을 국가에 귀속했고, 혁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다. 모든 교회 의식은 중단됐고 교회는 폐쇄됐다. 교회 건물은 창고와 헛간이 됐다. 중세 교회의 특징은 ‘국가 교회’와 ‘교회의 세속권력’이었다. 그런데 혁명으로 국가와 교회의 고리가 끊겼으니, 중세교회는 막을 내린 셈이다.

1798년 장교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했다. 그는 교황청을 없애려 했다. 군대는 교황 피우스 6세(Pius/Pio VI, 1775-1799)를 감금하고, 보호를 구실로 재산을 빼앗았다. 교황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중병에 걸렸다. 이듬 해 교황은 프랑스 남부 마을 발랑스(Valence)로 끌려가 감금됐다. 그리고 양 우리에서 쓸쓸히 죽었다.

피우스 6세가 죽은 다음 우여곡절 끝에 교황제도가 부활했지만, 교황이 다스리던 신성로마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교황제도가 부활하자, 바티칸과 로마교회는 더욱 보수적이 되어 세속권력을 지키려 했다.

프랑스 혁명 후 교황청은 오락가락 했다. 교황령 재산이 위협받으면 숨죽이고, 교황령 재산이 이상 없으면 전제군주처럼 행동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과 오스트리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 전체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시대가 되었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교황은 반대했다. 산업혁명이 사회 곳곳을 바꿔놓았는데도 가톨릭 교회는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유주의, 평등주의, 민족주의의 새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자기 주장에 매몰돼 있었다. 아직 교황령 땅들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톨릭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도 민족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화국의 수도를 로마로 선포했다. 이것은 교황청과 교황령 땅들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위기에 처한 교황 피우스 9세(재위 1846∼1878)는 프랑스 군대를 끌어들여 민족주의자들을 진압하고, 외국 군대에게 로마를 위탁했다.

공화국 지지자들에 의해서 교황과 교황령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교회 안에서조차 자유주의자들이 생겼다. 위기를 느낀 교황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것이 ‘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다.

공의회에 상정된 의제는 6개로 모두 가톨릭 정통 교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교황무오성’(Papal infallibility)이었다. “복된 베드로 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때문에 교황은 오류가 없다. 따라서 로마 교황이 내린 정의들은 변경될 수 없다.”

무슨 의미인가? 교황무오성을 선포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보수성’이 정점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교황무오성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권총 방아쇠에 손을 얹고 연설한 자도 있었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이 일어났다. 공의회는 다른 의제를 다루지도 못하고 끝났다.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1882)는 교황청 반대자였다. 교황청을 보호하던 프랑스 군대가 철수하자마자, 신생 이탈리아 군대가 교황청을 접수했다. 군인들은 교황 피우스 9세를 에워싼 후 교회의 권한을 깡그리 빼앗았다. 교황이 항의하고 파문까지 했지만 통할 리 없었다. 1874년 교황은, 시민들의 참정권이 교회에 해악을 준다고 해서 선거를 반대했다. 선거를 거부하라고 명령해 봤지만, 정권은 교황령에 반대하는 정당에게 돌아갔다.

프랑스 가톨릭에 이어서, 로마 교황청도 소유한 땅과 세속권력을 모두 잃어버렸다. 드디어 가톨릭 교회의 세상 권세와 영화가 끝난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교회가 속수무책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권력과 재산을 잃었지만 찾은 것이 있었다. 교회 본연의 모습이다. 세속 권력을 잃어버린 가톨릭 교회는 신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땅을 차지하고 관리하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 사람들의 신앙과 정신으로 파고들었다. 새 길을 찾은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타의에 의해서’ 세속권력과 땅을 빼앗기고 나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5년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스스로’ 환골탈태했다.

‘교회와 권력’ 또는 ‘교회와 재산’을 말할 때, 프랑스 혁명과 가톨릭 교회에 얽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일은 18세기 러시아 정교회에서도 일어났다. 어디 러시아 정교회뿐일까? 한국 개신교에서도 일어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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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석 (220.85.171.138)
2020-05-15 06:46:42
스승님 감사합니다.

세종대왕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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