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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제 성장에서 녹색으로” (아모스 9장7절~15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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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5월 03일 (일) 22:40:28 [조회수 :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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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제 성장에서 녹색으로” (아모스 9장7절~15절)

 

 

1.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

 

① (7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나라를 세우신 것처럼 아람과 블레셋나라들도 세우셨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사람인 아람이나 블레셋은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대표하는 구스족속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데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왜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구스족속과 비교하며 블레셋과 아람을 언급할까, 장차 하나님의 막대기인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이스라엘과 함께 멸망할 족속들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살아가던 이스라엘 족속을 고발하고 있다.

 

② (8절)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범죄는 살인이나 도적질, 강도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삶의 주관자 되심을 모르는 것도 범죄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이 죄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공로’라고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범죄에 해당한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나라들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도 몰랐다는 점이다.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때문이다.(삼하7:14~15)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긍휼을 온전히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만 하나님 되신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에 증거 하시기 위함이다.

 

 

2. 걸림돌과 디딤돌

 

① (9절)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맹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만국은 앗수르,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열강들이다. 이스라엘은 고대 제국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과 같이’ 체질은 ‘키질’이다. 곡식의 낟알을 겨와 분리시키기 위해 까부는 행위다. 앗수르와 바벨론 등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타작마당이며 불순물을 걸러내는 용광로와 같다. 똑같은 돌부리라도 거기에 걸려 넘어지면 걸림돌이 되지만 그걸 딛고 일어나면 디딤돌이 된다. 진정한 믿음은 인생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합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죄인은 고난과 위기에 걸려 넘어지지만 의인은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순금과 같이 정결하게 된다. ‘그 한 알맹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알곡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친히 지키고 보호하시고 마침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② (10절)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 (메시지성경) ‘우리 생애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쁜 일의 조심도 없을 거야, 하며 말하는 죄인들을 다 걸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겨 멸시하고 회개치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유일하게 용서받지 못할 죄는 ‘회개치 않는 죄’다. 누가 깨끗한 사람인가, 더러움을 인정하고 씻는 사람이다. 누가 의인이냐,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은 죄인이다. 더러움을 인정하고 씻어야 하는데 화장을 해서 감추고, 상처와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데 원인치료를 피하고 증상치료만 하는 격이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눈먼 지도자들 탓이다.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이 백성들에게 위장된 평화와 영원한 번영을 약속하며 안심시켰다. 오진으로 생사람을 잡는 돌팔이 의사처럼 실력도 없고 자격도 없이 전문가 행세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만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완고한 자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3. 징계의 목적은 구원

 

① (11절~12절)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 하나님의 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치유와 회복을 통한 삶의 변화다. 모든 예언서의 공통적인 결론이다. 아모스는 치유와 회복을 통한 구원의 날 이루실 다섯 가지 언약을 선포한다. 첫째 ‘다윗의 소박한 천막’은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과 대비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소박하고 진솔한 다윗의 성막과 같은 스룹바벨 성전이었다.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이 언약은 제2차 포로귀환 시에 학자이며 제사장이던 에스라에 의해서 모세의 율법을 통한 ‘말씀운동’과 ‘회개운동’으로 나타났다. 에스라를 통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셨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과제다.

▶ 둘째,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잃어버린 나라의 회복이다. 국가의 세 가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은 하나님의 소유된 나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 무엇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권의 회복을 선포한다.

 

② (13절~14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 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을 것이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를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 셋째 풍성한 물질이다. 곡식을 베자마자 밭을 간다는 건 풍요로운 이모작을 가리킨다. (메시지성경) ‘하나가 끝나면 곧 다음 일이 벌어져, 너희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날 것이다. 너희 눈이 미치는 곳에 복이 쏟아지리라! 산과 언덕 위에서 포도주가 흘러나오듯, 복들이 흘러넘칠 것이다.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내가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욜3: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젓을 흘릴 것이며’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회복될 것을 약속한다.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이 이스라엘에 일할 것을 선포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될 때 잃어버렸던 물질과 번영도 회복되는 일이 따라온다.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쟁취하는 복과 성질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축복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누려야할 복이다.

▶ 넷째,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포로 귀환을 가리킨다. 죄의 노예에서 해방된다는 의미를 전한다. 구원은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전환이다. 탐욕에 이끌려 살던 삶에서 말씀에 이끌려 사는 삶의 전환이다. 타고난 본능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이끌려 사는 삶이다. (메시지성경) ‘그들의 파괴된 도성을 재건하고 포도밭을 가꾸어 좋은 포도주를 마시며, 정원을 가꾸어 신선한 채소를 먹을 것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 더 풍성한 삶을 누린다. 이전에 부요를 추구하던 삶에서 자족하는 삶으로, 명예에서 섬김으로,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소유에서 향유로 더 풍성한 삶의 지경을 경험할 것을 약속하신다.

 

③ (15절) “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다섯째 ‘그 본토’는 약속의 ‘땅’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터전이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환경이나 상황, 장소나 공간이 아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관자로 고백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천국이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동행은 준행이다. 주와의 동행은 심미적인 차원이 아니다. 주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포로귀환으로 본토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에 선조들이 거주하던 동일한 장소에 머물렀지만 징계를 통해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성숙하고 달라졌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면 삶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

 

 

4. 아모스서를 마치며

-이제 성장에서 녹색으로, 부흥에서 거룩으로

 

▶ 수천 년 전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아모스의 예언처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한 예언자들의 경고가 있다. <2050년 거주불능지구>,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W 웰스 저, 김재경 역, 추수밭, 2020.04.22.) 기후재난과 환경재해로 인해 인간이 살 수 없는 미래를 예고한다. 22세기는 오지 않는다. 마지막 인류가 될 것을 경고한다. 무한경쟁과 정글의 법칙을 앞세운 야수자본주의로 인한 과잉생산, 성장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초래할 치명적인 생태계의 파괴다. 이구동성으로 멸망하지 않고 생존하려면 변해야 할 것을 역설하며 회개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한마디로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CBS정관용의 시사자키, 포스트코로나 대담에서> 중앙대 김누리교수는 생각의 전환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인간화’(인간의 소외, 사회공동체의 공존, 자연과의 공존)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며 공론화를 요청한다.

▶ 이제 전 인류는 ‘성장에서 녹색으로’, ‘개발에서 보존으로’, ‘부요에서 자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숙으로’, ‘부흥에서 거룩으로’ 목적을 바꿔야 한다. 한국교회는 에스겔의 환상처럼 성소에서 물이 흘러나와 온 세상을 뒤덮은 것처럼 생명의 강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본래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열방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남겨두신 것처럼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여전히 남겨두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며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한국교회의 뜻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길에 앞장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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