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퍼스트 리폼드》 (First Reformed, 2017)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진실로 괴로워하는 목사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망가지는 세상에 대하여 진실로 괴로워하는 목사를 본 적이 얼마였던가? 지금의 시대가 모든 것에 당당하고, 품위 있고 세련되었으며, 사교성과 사회성으로 충만한 종교인들이 성공한 종교인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라면 영화 속의 주인공 목사는 그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존재하는 목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종목사였던 톨러 목사는 집안의 전통을 따라 하나뿐인 아들을 정당성도 없는 전쟁에 참전시켰다 불행하게도 자식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아내마저 떠나버리고 톨러 목사는 현재 ‘풍요로운 삶’이라는 꽤나 상징적인 이름을 지닌 대형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작은 유적지 교회를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 교회 이름이 바로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된 ‘퍼스트 리폼드’이다. 대형교회의 모체가 되는 이 작은 교회는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250년 전 세운 교회로 250주년 봉헌식을 앞두고 있다. 관광지 교회로 전락한 이 교회를 지키고 관리하며 주일에 10명도 안 되는 신도들과 예배를 드리고 방문객들에게 교회를 관람시키는 일이 톨러 목사의 주된 일과다. 그러나 이다지도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의 영혼은 날마다 치열한 영적 전투 한 복판에 있다. 그리고 목사는 이 영적 전투를 한 줌도 남김없이 기록하기 위하여, 자신의 위선과 죄성을 더 철저히 들여다보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영화는 바로 이 일기 쓰기와 함께 시작한다.

톨러의 무미건조하고 무채색 같던 목회적 일상은 한 여인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환경 파괴로 인한 세계 멸망을 염려하여 이런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 없다며 임신한 아내에게 낙태를 권하는 한 극단적 환경주의자의 아내가 톨러 목사에게 자신의 남편을 만나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와 신앙에 대해서만 괴로워하고 있던 목사는 세상에 대한 괴로움까지 자신의 영혼에 짊어지게 된다.

본인 스스로 비평가 출신이기도 한 폴 슈레이더 감독의 《퍼스트 리폼드》는 다른 많은 영화들을 생각나게 하고 실제로도 참고하고 있는 영화다. 일기를 쓰는 첫 장면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물론 실존주의 문학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0)다.(개인적으로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는 신앙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신학생이라면 더욱 더 권하고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톨러 목사는 핵으로 인한 종말을 두려워하는 신도를 상담하는 잉마르 베리만의 《겨울빛》(1963)의 목사를 닮았고,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86)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영화가 선사하는 약간은 당혹스런 결말, 현실과 비현실, 이성과 기적을 오가는 결말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오데트》(1955)를 모사한다. 언급된 영화들은 모두 단순한 종교영화라는 틀을 넘어 신앙의 고민과 성찰을 선사해주는 영화들이다. 그리고 《퍼스트 리폼드》는 자신 앞에 놓인 훌륭한 영화들에 부끄럽지 않게 그 뒤를 잇는다. 현대영화답지 않은, 옛 TV를 닮은 4:3의 화면비율은 톨러 목사의 고뇌를 더욱 깊이 관조하게 도와준다. 혹시나 확신에 가득 찬 목사님들의 음성에 왠지 모를 당혹감과 낯선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면, 치열한 괴로움으로 자신을 혹사하는 성직자가 나도 모르게 그리웠다면,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시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