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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살이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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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4월 24일 (금) 00:40:30 [조회수 : 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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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 되었으나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맴돌고 있다. 근 석 달째이나 아직 완전한 치료법은 더 있어야 할 것 같고, 설령 있다고 할지라도 매년 비슷한 증세로 인류를 괴롭힌다고 하니 앞으로는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코로나19로 내가 속한 교회도 가정예배로 대신하고 있다. 5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점심 즈음에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이 예배 순서지와 맛있는 음식을 싸서 갖다 주셨다. 음식을 준비하시는 번거로움이 클만한데 매번 기쁜 마음으로 심방을 하여주시니 고마운 마음이 크다. 어떤 교회는 동영상 예배로 드린다고 한다. 주일 아침 11시에 혼자 예배문을 통해 드리는 예배가 심심(?)하기도 하지만 기도에 있어서는 간절함이 배가되는 느낌이다. 지구의 모든 나라와 사람이 겪는 동일한 고통이자 아픔이기에 기도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할 수도 있겠다. 이 간절함은 나만이 아니라 믿는 자들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신나는 생명체가 있다. 자연이다. 인간의 문명이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자연은 되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매체를 통해서 본다. 인도는 네팔의 에베레스트 산이 환하게 보인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수로는 맑은 물로 정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도시는 원숭이들이 떼지어 다니며 논다고 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립공원의 사자들은 아주 오래간만에 늘어지게 편한 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디에서는 멸종위기의 생물체들이 돌아와 숨을 쉬고 춤춘다고 하였다. 위성에서 찍은 근래의 사진은 산업화 이전의 모습의 지구를 되찾은 기쁨을 감상하게 한다. 우리 마을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취해 핸드폰 카메라를 눌렀더니 화면 가득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이 눈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었다. 석 달 동안이지만 사람이 잠시 쉬니 그동안 몸살을 앓았던 자연의 치유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편리, 인간의 발달이 좋긴 하겠으나 더불어 살아가는 범지구적으로는 개발과 산업으로부터 잠시 손을 놓고 자연과 협력하여 살아가는 법을 되찾았으면 한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생육, 번성, 충만, 정복에 이끌려왔다. 내가 사는 음성도 8년 전의 모습과 비교할 때 참 많이 변했다. 논은 밭으로, 밭은 건물로, 산은 혁신도시나 산업단지로 바뀌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듬성듬성 나타나는 허리 잘린 산들의 모습과 빼곡히 올라가는 건물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10만 이하의 군에서도 아파트는 저렇게 많아도 즐거운 나의 집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집과 빌딩은 날마다 새로 생겨난다. 중소도시의 인구는 절감하는데 혁신과 산업의 블도우저는 멈추지 않는다. 새로 짓는 건물마다 임대라는 팻말이 크게 붙여져도 건물은 하늘을 찌른다. 사람사는 영역이 넒어지고 높아질수록 다른 생명체가 사는 공간은 좁아지기 마련이지만, 사람 사는 정은 떨어져도 사람 사는 집은 높아지길 바라는 것이 사람의 바램이기에 개발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한 때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개그 프로가 유행이었다. 일등과 일류라는 말은 많은 기업의 가치가 되었고, 사람들의 특히 청년들의 스펙에 적용됐다. 나만 잘 되면 된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교육은 수년 동안 우리의 뇌와 가슴에 각인이 되었고, 한 때의 우스갯소리는   사람의 살아가는 기준처럼 되어 버렸다. 나도 비슷하다. 꼭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협력과 협동과 공동체라는 말이 종종 어색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더불어, 함께 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면서도 생활 전반에 깔려있는 나의 삶의 방식을 볼 때면 더불어, 함께, 같이는 옆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잘 살라고 주신 인간의 책임이라고 본다.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공동체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시적인 것보다 미시적인 것부터 시작하는 것을 제안한다. “저 가로등 보이지? 여기 세 집이 사는데 밤에 가로등을 켜지 말자고 했더니 그거는 돼. 공동체도 그런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해.”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변하고 있다. 당연했던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오래 간만에 보는 파란 하늘, 미세 먼지 없는 깨끗한 하늘,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음으로 기쁨을 느낀다. 활짝 피어있는 꽃과 지는 꽃을 보면서 감탄을 한다. 친구와 이웃과 교우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예전과는 다른 반가움이 넘쳐 난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것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깨닫고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콕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덕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깊이 돌아보는 복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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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석 (39.7.53.115)
2020-04-24 11:28:26
진 술 서


사건명 : 명예훼손등
진술인 : 최웅석

상기 사건에 관하여 진술인은 아래와 같이 진술합니다.

1. 고소인에게 댓글을 달기 시작한 이유는

제가 댓글을 작성한 곳은 기독교대한감리회 민간사이트 '당당뉴스’입니다. 제가 작성한 댓글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 세계를 댓글로 달았습니다.
본인의 글은 세상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영적으로는 해석됩니다.

‘당당뉴스’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는 수많은 독자와 교인들이 글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글을 대외적인 올릴 후에는 그 글은 자기 것이 아니고, 읽는 독자들 몫으로 맡겨야 합니다. 이게 글쓴이의 기본자세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의 받아들임이 각각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글에 대하여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형사고소 제기하는 것은 감독(목사)의 역량과 자질에 의문점이 듭니다.

가. 민간사이트에 공적인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 옷을 입는 사진을 등록하고 글을 썼다는 겁니다. 이는 영적으로 해석하면 바리세인과 제사장으로 해석 했으며, 저의 개인적인 해석은 ‘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이니 내말을 들으라’는 간접적인 폭력과 권위의 의미로 받았습니다. 이는 성경말씀과 다르다고 해석 했습니다. 성경은 평등이며, 성도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위아래가 없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나. 기독교대한감리회 공식적인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사이트 ‘당당뉴스’에서 글을 쓸 때 글제목이 ~~하라, ~~하라,~~하라의 명령조였습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해석하면 ’나는 감독이고, 예수고, 하나님이니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성경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은 각 목사, 성도마다 다르게 해석 할 수 있고, 해석 될 수가 있는데, 글쓴이는 자기가 하나님인 것 처럼 내 글을 따르라는 아주 이단교파적인 생각 즉 사탄의 생각으로 저는 해석했습니다.

다. 그래서 제가 댓글로 ‘내가 당신 새끼가 아니니 명령조로 제목을 달지 말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명령조로 계속 글을 올렸습니다.(꿈*교회 홈페이지 설교 검색하시면 확인 됨) 이는 독단주의로 판단되어, 저는 이를 사탄의 계략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에 교회를 바로 세움을 위하여 ‘영적싸움이다’로 해석하고,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2. 결 어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사이트내에 있는 감독(목사)라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인 기독교에게 인격침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불특정 다수인에게 상대로 권위를 내세운 모양새가 있는 것 같아 제 개인 사익이 아닌 교회를 위해 비롯되어서 글을 쓴 것이고,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이 추호 없고, 영적으로 보고 깨달음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혹 본의 의도가 다르게 상대방에 피해나 상처가 되었다면 앞으로 주의를 하도록 하겠사오며 이번 사건에 대하여 관대하게 처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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