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임종석 칼럼
신천지를 비난하면서 그들의 전철을 밟는대서야— 코로나19 팬데닉 상황에서의 주일성수 —
임종석  |  seok9448@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3월 16일 (월) 16:36:57
최종편집 : 2020년 05월 14일 (목) 12:00:15 [조회수 : 10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코로나19, 이제 듣기만 해도 지겹고 짜증이 난다. 경제는 침체되고 사람들의 활동도 크게 제약을 받는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보다 생활상의 어려움과 불편이 더 힘든다.

많은 교회들이 주일 대예배까지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초래되고 있다.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크리스천치고 누군들 이 사태가 어서 지나가 예배가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주일을 성스럽게 지키는 것은 크리스천의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그러니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성수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이르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주일날 예배에 참여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 주일성수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게 아니라 반박하기도 한다. 필자는 전자 즉 예배참여 쪽에 서는 입장이다. 주일날 특별한 사정도 없는데 예배에 빠지며 성수했다고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배, 얼마나 거룩한 행위인가. 온몸과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예배이니 이 얼마나 성스러운 축복의 행위인가. 경배는 자기를 부인하고 대상에의 순종을 다짐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성스러운 행위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의 순종,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배가 예배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에 이어지는 삶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그 뒤의 삶과 이어지지 않고 예배시간만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한낱 종교행사로 격하되고 만다. 그러니 진정한 주일성수가 되려면 주일 하루 종일을 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일성수만을 강조하다보면, 예배시간만을 강조할 때가 그렇듯이 큰 오류를 범하기 쉽다. 성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은 주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일외의 평일도 성스럽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일과 평일이 다른 것은 하는 일의 종류이지 마음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우리는 예배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삶 자체를 예배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 즉 ‘진정한 예배’라는 말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12:2)하여 사는 삶이 성스럽게 사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말이다.

 

 

예배지상주의와 성수주일

 

기독교가, 교회가 비판을 받으며 욕을 먹은 것은 ‘예배’(형식을 갖춘)만을 너무 강조하는 예배지상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배는 경건하게, 또는 뜨겁게 드리는데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믿지 않은 사람들도 하지 않는 지탄받아 마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하기 때문이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향하여 독한 말을 쏟아 내고, 집단이기주의를 애국이라 착각하여 나라에 해가 되는 일에도 적극적인 사람들, 이 같은 사람들도 예배에 열심이면 믿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현실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WHO가 ‘코로나19’라고 명명한 신종코로나를 굳이 ‘우한폐렴’이라 하여 상대국의 반감을 사게 하는 것이 어떻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우한폐렴’이라 하지 않은 것은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비난하기도 하는데, 눈치 보는 것과 국익을 위한 외교의 구분이 안 되는 처사이다. 우리는 사드(THAAD)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는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 우려가 있으니 옥외집회를 자제하라 하니까 군중을 비좁은 옥내로 불러들여 모이는 사람들, 그런 유의 사람들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기독교가, 교회가 비판을 받고 욕을 먹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도 눈앞의 조그마한 이익만 있으면 손을 잡는 부류의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를 비난하면서 그들의 전철을 밟는대서야…

 

이야기가 잠깐 곁길로 빠진 감이 없지 않은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코로나19의 감염을 막기 위해 당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면하고 있고, 국민들도 솔선수범하여 이를 지킴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마스크 부족 현상으로 인해 국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마스크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데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정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걸까. 신천지가 그렇고 콜센터가 그렇듯이 밀폐된 공간에서의 짧은 거리는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이 되고 있다. 예배를 통한 감염의 위험성도 크다는 말이다. 만약 예배를 통해 감염이 확산되기라도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아니 벌써 그런 현상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감염이 확산되는 한이 있다 해도 어깨와 어깨를 가까이 대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실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 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라고. 무슨 말인가. 예배드릴 장소와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그게 어디며 어느 때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는 전술한 롬12:1-2과 맥을 같이 하나 여기에서는 설명할 여유가 없다.

어떻든 부득이 한 경우라면 많은 교회들이 지금 참여하고 있는 인터넷 예배가 바이러스 확산 위험을 안은 채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보다 더 하나님의 뜻, 성경정신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데 아닌가.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도 3주째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한 자리에 모여 드리는 예배보다 설교자의 표정도 음성도 더 또렷하게 보고 들을 수 있어 좋은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은혜를 더하게 했다. 인터넷 예배가 어려운 나이 많은 어르신 성도들에게는 찬송, 성경 등 가정예배 형식으로 드릴 수 있는 예배순서를 알려 드려 같은 시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도와의 직접적인 교제가 아쉽기는 하지만 때로는 간접적인 만남이 더 애틋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럴 때 서로 전화든 문자, 메일 같은 소통수단으로 정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차제에 소식이 뜸했던 일가친척이나 지인들과도 연락하여 회포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예배 같은 것을 예찬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로 3번째인데도 벌써 실증이 나기 시작한다. 같이 모여 한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가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뉘라서 현 상황이 오래가길 바라겠는가. 어쩔 수 없으니 그리하는 것이 아닌가. 신천지를 비난하면서 그들의 전철을 밟는대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전철을 따르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비슷한 일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이고 사회를 선도해야 하는 것이 교회이다.

어떻든 이참에 예배 지상주의 신앙을 탈피하는 성과를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예배 지상주의는 주일을 성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성수의 방해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것은 그게 무엇이 됐건 그 종류나 형태가 아니라 그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주님, 이 사태가 어서 지나가고 예배가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진정한 주일성수를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임종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4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일봉성도 (122.101.20.21)
2020-03-17 09:40:35
이미 성남의 모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다가 드디어 대형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렇게 다닥다닥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을
했으니 지금이라도 다닥다닥 모여앉아 예배 드리는 교회들 결정을 해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문제 없이 잘 넘어가겠지 과연 누가 장담을 하겠습니까.
알다시피 코로나 확산은 순식간입니다....
리플달기
2 2
김경환 (222.100.38.174)
2020-03-16 20:48:27
(유머)집단예배 추종자를 씹고 떠들어봐야 욕을 곱빼기로 불러올 뿐이다
非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개독’이나 ‘먹사’라고 하면서 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욕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러려니 한다. ‘개독’, ‘먹사’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기독교인이 요즈음 신난 일이 있다. 아주 심심하던 차에 ‘집단예배 추종자’를 씹어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무한폐렴 때문에 집단예배가 갑자기 多衆으로부터 눈총을 받게 되자 여기에 영합하여 多衆으로부터 ‘개독’, ‘먹사’라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는 일부 기독교인이 오히려 한술 더 뜬다. 자기는 ‘개독’도 아니고 ‘먹사’도 아니며 多衆이 원한다면 집단예배 정도는 내팽개칠 정도로 다중의 눈치를 살피는 데 귀신같은 <지고지순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민감한 시기에 집단예배를 무조건 추종하는 <버러지 같은 기독교인>과는 전혀 다르다고 발뺌하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단예배를 당연하게 여기던 자가 설사 ‘개독’, ‘먹사’라고 욕을 얻어먹을지언정 ‘집단예배 추종자’란 욕만은 얻어먹지 않겠다는 기세다. 내가 보기엔 ‘집단예배 추종자’란 욕보다는 ‘먹사’, ‘개독’이란 욕이 더 크게 느껴져 부끄럽기만 한데... 이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니까 ‘집단예배 추종자’가 더 큰 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해할 수는 있다. 쩝쩝쩝...

‘집단예배 추종자’가 좀 못마땅해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多衆으로부터 욕을 덜 얻어먹을 터인데... 多衆은 “그게 그거다!”라고 생각하는 데 그는 “나는 집단예배 추종자와는 다르다!”고 하면서... 주위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데 혹시나 자기는 빠질까 싶어서 ‘집단예배 별로다!’로 변절한 주제에 성경까지 들먹이면서 열심히 씹어대니 多衆으로부터 얻어먹는 욕을 곱빼기로 더하게 만든다. 쩝쩝쩝...
리플달기
1 8
김경환 (222.100.38.174)
2020-03-16 18:13:37
정부에서 코로나19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족한데 언론이나 일반인이 코로나19를 사용하지 않는 게 그렇게 불만인가?
임종석 칼럼니스트 曰 WHO가 ‘코로나19’라고 명명한 신종코로나를 굳이 ‘우한폐렴’이라 하여 상대국의 반감을 사게 하는 것이 어떻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우한폐렴’이라 하지 않은 것은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비난하기도 하는데, 눈치 보는 것과 국익을 위한 외교의 구분이 안 되는 처사이다. 우리는 사드(THAAD)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는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외교부에서는 일본국왕을 일본천황이라고 하고, 이에 반대하는 언론이나 일반인은 일본국왕을 일왕이라고 한다. 외교공식문서는 언론이나 일반인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익을 위해 외교부에서는 일본천황이라는 공식직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한페렴도 마찬가지다. WHO가 명명한 코로나19는 국가공식문서 등에서 사용하면 언론이나 일반인이 무한폐렴이라고 해도 중국이 문제 삼지 않는다. 임 칼럼니스트 자신이 중국사대주의 노예근성에 찌들어 중국 눈치를 보느라 남에게 코로나19라고 하지 않고 무한폐렴이라고 한다고 난리를 치는 데 이거 웃기는 짬뽕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임 칼럼니스트는 일왕이라고 하는 언론이나 일반인에게 일본천황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난리 칠 것이 뻔하다.

중국이 우리에게 느끼는 섭섭함과는 별개로 사드는 우리의 國益을 위해 배치한 것인데,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이 우리를 갈군다고 하여 중국 눈치를 보자고 한다면... 묻고 싶다. 국익 우선인가? 중국 心氣가 우선인가? 중국의 심기를 살펴 우리의 국익을 포기하자는 건가? 임 칼럼니스트는 중국 사대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가치의 기준이 중국이므로... 조선시대의 그 지긋지긋한 對중국 노예사대주의가 아직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프다.
리플달기
2 11
changkyuchin (71.226.10.48)
2020-03-24 19:06:17
x여기도 역시나 축복받은 대갈님을 장식품으로 달고 사시는 분이 계시내요.^^ 무식함도 자랑입니다 ^^
리플달기
4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