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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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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3월 05일 (목) 01:15:28 [조회수 : 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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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다. 사전적 의미로 미니멀 라이프는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생활’이다. 내 주위에 산적해 있는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누거나 버리며 살라는 것인데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때는 텔레비전에서도 비움 전문가를 초청하여 정리되지 않은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도 있었다. on-off 서점가에선 미니멀이란 단어만 검색해도 그와 관련된 책이 수없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책 제목을 클릭하여 훑어보면 목차의 배열만 다르지 대부분의 책 내용이 거기서 거기다. 공통점은 있다. 물건을 버리는데는 순서가 있고, 버리는 의지는 짧고 굵게 하란다. 한 날 한시에 집안의 물건을 왕창 정리하려는 자세는 금방 싫증이 나니 하루에 15분씩 정리하고, 버리기 쉬운 것부터 정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오히려 엄청 어려운 과제다.

내 경우에 물건은 친구와 같다. 한번 사귀게 되면 쉽사리 놓아지지 않는다. 그 사귐에는 크고 작고 높고 낮음의 기준이 없다. 손에 쥐어졌을 때 버리는 때를 놓치는 순간, 그것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씽크대 서랍을 열면 그 안에는 이미 수년 된, 서울에서 음성까지 함께 한 빵끈이 있다. 물론 잊고 산 것이기도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을 집어 쓰레기통에 던지는 때는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흘러야 할지 모른다. 가끔 빵끈이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이럴 줄 알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지”라며 스스로 뿌듯해한다. 이렇듯 빵끈, 철사, 못, 쪼가리 천 등과 같은 잔잔한 물건은 생각지 않게 쓰일 때 소확행을 느낀다. 일종의 손이 닿지 않는 등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기분이니 우정을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으랴!

그러나 지금은 고민이다. 싸고 자잘한 물건들을 수집하던 끝에 어느덧 포화상태가 되었다. 물건은 크고 작고 높고 낮음의 기준은 없어도 계절엔 구별이 생긴다. 겨울에는 물건을 짱박아 놓긴 수월하다. 옷과 이불의 부피가 커도 따뜻함을 추구하는 겨울엔 용서가 된다. 그러나 이제 곧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이 오면 무게와 부피가 큰 물건으로부터 놓임을 받고 싶어진다. 비움 전문가는 말한다. “그 물건을 만졌을 때 설레는가 설레지 않는가?” 설레면 남기고, 설레지 않으면 버리란다. 한번 실험을 해봤다. 우짜노! 모든 물건이 설레지 않는다. 그저 미련이 있을 뿐이다. 솔직히 첫사랑의 감정은, 봄바람의 상큼한 설렘은 전혀 없다. 그저 오래 사귄 연인의 마음처럼, 정월 지난 김장김치마냥 묵은내가 날 뿐이다. 고민은 깊으나 헤어짐은 어렵다.

얼마 전, 점심 식사를 하고 읍내에 있는 높은 산에 올랐다. 그곳에 오르면 음성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맑고 산뜻한 공기가 눈을 시원케 해주었다. 그 산 한켠에 작은 절이 있다. 대웅전과 사택과 사무실, 화장실과 주차장이 아담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날 하필, 주지 스님과 만났다. 차 한 잔 하자는 초청에 이끌려 귀한 녹차를 대접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차를 따라주시던 주지 스님이 일장 연설을 하셨다. 내용은 우리의 설교와 비슷했다. 끝날 듯 말 듯 혼자 20분 이상 얘기하시는데 순간, 뇌리에 스치는 생각. ‘혹 우리교회 교우들이 내 설교를 들을 때도 이 기분일까?’ 뒤통수가 후끈거렸다. 연세가 70이라 하신 주지 스님! 그런데 그 연세에 뭔 말이 그리도 많으신지. 말씀 속엔 비움에 관한 얘긴 많은데 정작 당신의 입은 비움에서 거리가 있어 보여 듣는 나의 기분은 무거웠다. 적막한 산에서 간만에 사람을 만나 그날만 그러셨으리라. 남만 탓할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도 한번 입을 열면 기차놀이만큼 길고도 길다. 그날 나는 내 입의 가벼움과 수다스러움을 덜어내자는 깨달음을 일흔의 노승에게 배웠다.

미니멀 라이프는 물건의 비움만이 아닐 것이다. 삶 전체를 통틀어 내가 쥐고 있는 모든 것에 필요한 일일 것이다. 덜어내지 못한다면 최소한 one plus one으로 쌓아두지 않는다면 비움으로 가는 길은 조금 쉬울 것이다. 버리면 버릴수록 행복이 찾아온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깨끗하게 소제된 방에 앉아 있을 때의 기분은 맑고 담백하고 경쾌하다. 이 기운이 쌓아지고 텅 비어 있음을 알 때 우리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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