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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잎 하나
박평일  |  BPARK7@CO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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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2월 21일 (금) 00:01:39 [조회수 :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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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잎 하나

 

그러므로 너는 온갖 것에

형도 되고 누이도 되어야 한다.

온갖 것이 네 몸을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네가 내 것 네 것을 구분하지 않도록.

 

별 하나 잎 하나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과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

그리할 때 너는 온갖 것과

시시각각으로 부활하게 되리라.

 

-헤르만 헤세-

 

어젯밤, 동쪽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떠오르던 보름달이,

돗대도 삿대도 없이 빈 겨울 하늘을 홀로 흘러가더니

오늘 아침 ,새벽녘에 서쪽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역시 동쪽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달은 해가 떠오르면 자신의 자리를 비운 채 사라져야 한다,

 

나도 보름달과 함께 떠울랐다가, 보름달과 함께 사라졌고,

오늘 아침에 태양과 함께 부활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어젯밤의 달이 아니고, 아침에 떠오르고 있는

찬란한 태양이다.

 

나는 알고 있다. 섬에서 살고있는 사람들 눈에는 달과 태양이

바다 속에서 떠올랐다가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달과 태양이 산 봉우리에서 떠올랐다가 산 봉우리로 사라지며,

도시 빌딩 사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달과 태양이 건물들 사이에서 떠올랐다가

건물들 사이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나는 또 분명히 알고 있다. 우주는 나의 위치, 나의 처지, 나의

입장, 나의 관점, 나의 생각과 해석... 들과는 관계없이 제

법칙들대로 한 치의 착오가 없이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 법정에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최후 법정진술에서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었다.

" 나는 기독교 교리인 천동설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믿음과는 관계없이 이 순간에도

지구는 태양주위를 여전히 돌고 있을 것입니다."

 

"Rose is a rose is a rose" (장미는 장미이고 장마다) 라는

미국 여류작가 'Gertrude Stein' 의 헷갈린 말은 두고 그 해석이

분부하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그녀 말 의미는

'생은 풀이지 않는 하나의 신비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지 말라. 네가 머릿 속에 '너' 라고 믿고 있는 '너'는

본래의 '너' 가 아니다. 너에 대한 생각이고 관념이다. 너는

'너' 가 아닌 '너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네가 장미라고 부르고 있는 있는 '장미' 가 장미가 아니다.

너는 장미에 대해서를 장미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장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네 자신이 한송이 장미가

되거라!'

 

네가 달을, 태양을, 별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네 자신이 달로, 태양으로, 별로 태어났다가,

달로,태양으로, 별로 사라져라.

 

어제, 금요일 아침에 진도북춤 교습을 마치고 '흑염소탕'을

점심으로 먹기 위해 한국 식품점 안에 있는 한 식당에 들렸다. '흑염소탕'은 지난 4년간 매주 금요일마다

즐겨 먹는 나의 단골메뉴다.

 

식당에서 우연히 옛 지인' H' 와 마주쳤다.

'H' 는 35여년 전 워싱톤 지역에 유일했던 생음악이 나오는

바겸 식당을 운영했던 분이다.

그때만 해도 나도 한참 젊은 나이라서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들렸었던 추억이 듬뿍 서린 곳이다. 그 덕분에 그곳에서 한국 연애인 현인, 최무룡, 김진규, 이석 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그도, 나도 서로를 몰라볼 정도로 늙었다.

그러나 마치 어린 시절 고향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본래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인정에 굶주려, 늘 인정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 미국 이민생활이다.

미국과 한국의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마지널(marginal) 인간으로 마음을 조이며 위태롭게 살아가는 삶.

일반적으로 미국에 사는 햇수가 더래가면 더해갈 수록 인정에 대한 그리움 또한 그만큼

깊어간다.

 

한 테이불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 모처럼 퇴색한 추억의

옛 상자들을 꺼내들고 이것 저것 실컷 떠들었다.

'H' 는 비록 얼굴은 50대 중반처럼 건강해 보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세살 아래, 70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박 선배님, 얼마전에 운영해 오던 사업체을 정리하고

박 선배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좋은 사업체인데 조금 더하시지 그랫어요. 아직 건강해

보이시는데..."

"사실은 말입니다. 얼마 전에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스토르크를

받고 큰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건강이라면 누구보다 더 자신이

있었는데....." 하면서 모자를 벗고 머리에 난 긴 수술자국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앞으로 뭘하며 살려고요?"

"그게 문제입니다. 평생 일만하고 살아서 그런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 별 묘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부인과 신혼부부처럼 새로운 기분으로 살면 되잖아.."

"말이야 쉽지요. 그런데 부부생활이라는 것이 처음 1-2년만

지나면 새로운 맛이 별로 없어요. 매일 그저 그런 것 같고.

35년 이상을 서로 몸을 비비며 살았는데 말입니다.

처가 없이는 하루도 혼자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날이 갈 수록 케롤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데.... 케롤도 나에게 그런 고백을 하기도 하고.."

"선배님,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무슨 대단한 비결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나는 거의 매일 같은 숲 길을 산책하고 있거던. 그런데

갈때마다 늘 낯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처럼 흥분이 되거든.

왜 그런줄 알아. 매일 걷고나면 그 길에 대한 선입견이나

기억들을 지워버리거든. 인간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이런 일화를 'H' 에게 들려주었다.

 

어느날 한 선사와 제자가 강변을 따라 난 숲길을

걷고 있었어. 일종의 보행 명상이었지. 한 참을 걷다가

제자가 발걸음을 멈추고 선사에게 물었지.

"스승님, 명상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좀처럼 명상이 되질 않습니다."

선사가 대답했지. "지금 물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리나?"

"아닙니다.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 그러면 물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올 때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그냥 걷게." 그 제자는 명상을 하겠다는

생각에 몰입이 되어 물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을 걷다가 제자가 선사에게 말했다.

"스승님, 이제 물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옵니다!"

"그래, 바로 그곳에서 명상을 시작하거라!"

한참을 걷다가 제자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선사에게 말했다.

"스승님, 이제 물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 바로 그곳에서 명상을 시작하거라."

 

'H' 가 내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할 지 목할 지는 나의 몫이

아니다. 100 %가 'H' 몫이다. 나는 다만 내 체험을 그에게

선물했을 뿐이다.

 

버지니아 숲 속에서

박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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