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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와 종교폭력으로서의 분단신학
이형규  |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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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14일 (화) 11:19:30
최종편집 : 2020년 01월 15일 (수) 03:47:21 [조회수 :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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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와 종교폭력으로서의 분단신학

 

이 형규 박사 / 숭실대, 종교와 사회

 

I.서 론

 

본 연구는 경제적으로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국제정치적으로 ‘냉전 체제’의 하위 체제로서 역할을 해온 한반도의 ‘분단체제’의 생성과 재생산에 지속적으로 역할을 한 분단 문화가운데 ‘분단 의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던 종교에 주목한다. 그 가운데 분단의 논리에 기여한 기독교의 ‘분단신학’을 점검하고 분단체제에서 평화통일체제로의 이행을 촉진시키기 위한 해방의 사회과학 (logic of liberation)으로의 전환의 가능성 또한 탐구한다.

이를 위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와 종교분석을 통하여 종교의 상대적 자율성과 사회변혁을 위해 종교적 생산수단의 점유가 중요함을 주장한 베네주엘라 출신 종교사회학자 오토 마두로(Otto Maduro)와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을 통해 인간의 ‘자유추구’ 의지 즉 인간의 ‘자기 해방기획’으로 사회과학의 목적을 제시한 영국의 사회과학철학자 로이 바스카(Roy Bhaskar)의 사회적 존재론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 종교학계에서 논의가 활발한 ‘종교폭력’(religious violence)이론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종교와 정치(정교분리)의 바른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

 

   
▲ 이형규 박사

II. 본 론

 

1. 분단체제론

 

한국사회는 네 개의 체제를 거쳐 왔다. 1948년 해방과 함께 좌우 갈등 속 이승만을 비롯한 극우세력이 만든 ‘48년 체제’라는 극우반공체제, 다음은 박정희의 ‘61년 체제’인데 경제발전을 위한 발전국가라는 측면이 극우반공체제에 첨가되었다. 개발독재체제로서 경제개발5개년계획 같은 국가주도형 경제와 정치적 독재라는 두 축으로 움직여졌다. ‘72년 유신체제’는 87년까지 지속된다. ‘87년 체제’는 박정희 61년 체제의 정치적 독재를 해체해 불완전하지만 민주화(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로 발전한다. 국가주도경제는 유지되지만 이마저도 97년 IMF로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와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다. 이 체제는 비정규직의 일상화, 청년실업, 스펙전쟁 등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다 (손호철 2017; 24). 이 아래 부분체제로서 헌법의 변화로 생긴 헌정체제, 경제체제, 민주주의 체제들이 각자 변화되어 왔다. 분단체제는 한반도의 남북을 아우르는 상위체제라고 백낙청은 주장하였고 이것은 48년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단이 최종적으로 완결된 것이 한국전쟁후 53년이기에 53년 체제라고도 부른다(백낙청, 2009:62). 나아가 그는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615남북공동선언)을 분단체제의 ‘동요기’ 내가 ‘해체기’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윗글, 62-63).

백낙청은 한반도를 벗어나 왈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을 이용하면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한반도의 문제를 분석하였다. 그에 의하면 분단체제는 남과 북의 개별적 체제와 달리 남북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윗글, 81). ‘체제’(system)라는 것은 일정한 독자성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단체제는 나름의 생산메커니즘을 가지고 남북모두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 분단국가체제로 세 가지 층위 속에서 존재한다(윗글,45-46). 한반도에서 작동하는 복합적인 분단 체제는 그에 따른 다수 민중에게는 희생과 부담을 지운다. 그러나 남북이 대립하는 분단체제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은 체제유지와 확장이라는 상호 이익의 측면에서 일정한 공생, 공모, 닮음 관계가 성립한다. 분단 체제 속에서 남북은 “적대적 의존관계”나 “거울이미지효과”를 가지는데, 적대적 의존관계는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과의 적당한 긴장과 대결국면 조성을 통해서 이를 대내적 단결과 통합 혹은 정권 안정화에 이용하는 관계”이며 거울이미지 효과는 “일방의 행위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일으키는 효과”를 말한다(이종석, 1995: 146-8).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단체제가 독자적 완결성을 가진 체계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하부체제라는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남북의 개별적 문제들인 정치적 민주화, 자주화 등 이 분단체제 극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분단체제는 실재하는가? 역으로 분단체제가 없었다면 남북에 근대국가들이 모두 경험한 내적인 민주화와 외적 자주화의 실현이 더 빨리 혹은 앞으로 완전히 실현될 수 있냐는 것이다. 한반도의 많은 내외적 문제들은 분단체제 없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물론 다른 나라나 지역에도 세계체제 아래 우리와는 다르지만 생존과 발전을 가로막는 체제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의 민주화, 자주화와 한반도의 분단체재 극복은 연결되어 있기에 세계 시민들과 연대하여 자유와 번영의 길로 함께 나가야 한다.

그러나 체제이기에 이미 재생산을 통해 깊게 남북 모든 시민들의 삶에 분단구조와 분단의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고착되었는데 어떻게 극복이 가능하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즉 이것은 남북의 정치적 국가연합 같은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재생산되는 분단의 문화와 심리를 분석하고 총체적인 변혁의 과정을 제시해야 하는 짐이 우리에게 있다. 물론 백낙청은 “단순히 국토의 분단 만이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의 모든 분열, 우리 마음속의 모든 병들과 결합되어 있는 분단체제를 우리 마음이 통일을 향해 열리는 일과 분단체제의 외부적 기구들을 몸으로 허물어 가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백낙청, 1994: 87). 그러나 분단체제 극복이 마음의 문제인가? 이런 인식론적 해결이 현실을 반영하는가? 인식한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백낙청은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흔히 내세우는 그 불안정과 잠재적인 폭발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지속적인 패권자 역할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식민성을 또 다른 형태로 재생산하고 그리하여 국가주의, 민족주의, 개발지상주의,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 등 근대 세계체제의 제반 이데올로기를 강화함으로써 이 체제의 충실한 구성요인으로 복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분단체제의 폭력성과 군사주의의 영향에 대한 지적은 후학들이 주시하고 더 연구해야할 부분이다(백낙청, 2009, 39). 또한 분단체제는 남북의 사회와 구성원들의 신체 안에 체화되어 우리 삶의 비합리적인 양식과 태도, 정서에 영향을 주어왔다. 남이나 북이나 여전히 분단체제 아래 있지만 여타의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들은 세계 냉전의 해체 속에서 우리와는 다른 발전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예로 독일, 중국, 베트남을 보라). 분단체제론의 자기완결성에 대한 논쟁은 해방 후 많은 변화 속에서도 그리고 상위 체제인 냉전체제의 소멸한 후에도 다른 국가들의 발전 경로와는 다르게 한반도에서 여전히 분단체제만이 깊숙이 우리 안에 박혀서 유지 강화 되고 있음을 직시한다면 완결성이 높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은 분명하다. 이 체제의 유지를 바라거나 이 체제 아래서 소극적 평화를 누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인지 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모든 체제는 체제유지를 위한 강압적 수단이 있는데 분단체제는 여전히 강고한 분단폭력의 구조를 가지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2. 분단 폭력: 군사주의

‘폭력’이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물리적 수단이나 힘이다. 폭력에는 상해의 물리적 행위뿐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위협적인 태도와 말도 포함된다(갈퉁, 2000:414). 분단폭력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저해하는 것으로 분단으로 야기된 폭력적 활동과 구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 담론을 총칭”한다(김병로 2016:15). 이것은 자본주의 공산주의 같은 이념이나 정전체제, 국가보안법 등으로 대립적 남북관계를 공고하게 하며 물리적 살상과 폭력적 행위의 정당화 합리화로 구조화 되어있다. 분단체제가 아니면 발생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을 분단폭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들이 사람들 속에서 인과적 힘으로 작동하여 사회적 실재인 분단 체제를 만들어 내고 사회적 실재로서 동시적으로 우리에게 힘, 폭력을 통해 유지-재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분단을 처음 욕망 하였는가? 누가 38선을 그었는가?

흔히 분단을 세시기로 분류하는데 1)3.8선이 그어져 남북이 잘린 1945년 8월, 2)남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수립을 한 1948년 8월, 그리고 3)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분단이 완결되는 시기이다.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은 “38선을 한국의 분단선으로 정한 것은 국제적인 토론의 대상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은 일본의 전쟁기구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한반도에 진공상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제안한 것 이었다”고 고백하였다. 물론 한반도의 절반이라도 지배하고자 했으며 동유럽에서의 지배권을 보장받을 거라는 기대에 스탈린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해방 후 한반도에 분단선이 그어지고 외국군에 의한 군사정권(분단폭력집단)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남쪽에서는 미군정과 그 지지를 받던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족 자치를 원하던 약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국전쟁 전까지 폭력적으로 제거 되었다(장순, 2016:204). 세번째 분단이 완결되는 시기에는 한국전쟁이라는 분단폭력에 의해 인류 현대사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비전투요원인 민간인 대학살이 발생하였다. 민간인 75%를 포함한 46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민간인사망자 1차 세계대전: 5%,2차:65%). 그중 3백만 명의 사망자는 9백만이 채 안 되는 북쪽 지역의 모든 도시에서 유엔군에 의해 특히 정전회의 중 공중 융단폭격의 결과로 발생하였다(윗글, 322). 북한 전 지역에 대한 폭격은 김일성이 정전협정을 서두르게 된 원인되기도 하였다. 전쟁이후에도 남북은 상대방에게 무장공격과 납치, 테러 등 폭력적 행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여 왔다.

폭력에는 이런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힘의 행사뿐만 아니라 제도와 문화적인 폭력도 있다. 즉 인권유린과 그리고 빈곤과 착취 등 제도와 이를 정당화하는 사상과 담론 등 문화적 폭력도 강화되어 왔다. 특히 미군정체제이후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정권은 “철저한 반공주의와 이에 근거한 전사회적인 군사적 규율과 훈육체계를 통해 공고화된 지배력을 행사했다(박재환, 2009; 422).”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체제 이데올로기도 폭력의 빌미가 되었다. 남북은 각자의 이념을 절대적인 가치로 추종하고 지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였다. 대표적으로 북의 핍박을 피해 월남한 청년들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은 북의 체제와 이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반공주의에 근거한 분단폭력집단이 되었다. 정전체제를 명분으로 끝나지 않은 ‘아직 전쟁 중’ 이기에 일단 적으로 분류되면 그들에 대한 폭력 사용은 정당화 된다. 적에게 동조하는 행위나 사상도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늘 전시상황이기 때문이다.

남의 국가보안법과 북의 형법은 다른 근대시민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사상에 대한 처벌’을 정당화 시킨 분단체제하 분단폭력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정부를 참칭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제2조)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의 형법은 ‘조국반역죄’(62조)와 ‘민족반역죄’(67조)에서 “조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쳤거나 투항, 변절하였거나 비밀을 넘겨준” 조국반역 행위와 “조선민족으로서 제국주의의 지배 밑에서 ... 제국주의자들에게 조선민족의 리익을 팔아먹은” 민족반역 행위를 엄중한 죄로 규정하고 있다. 남북은 서로를 정상적 국가로 대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기에 반국가세력으로부터 체제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권리이며 의무가 되기에 폭력사용은 국가에 의해 정당화된다. 분단폭력의 특징은 가해자가 국가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극우주의자들이 ‘빨갱이’, ‘종북’이라 상대를 규정하고 테러를 가하는 행위가 자주 발생하는 것도 내 뒤에 국가가 있으며 나의 행동은 합법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김병로, 2016:35-37). 서구에서는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이념도 분단체제하 남쪽에서는 공산주의와 동일시되고 냉전적, 친미적, 극우적, 반공적, 반북한적 가치를 선점하는 정치집단이 주류가 되는 정치질서를 형성하였다. 나아가 분단체제는 군부의 위상을 상승시켰고 군사주의가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상호작용 하면서 민에 대한 군의 지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인권보다 안보가 우선인 사회를 남북 구성원 모두에게 강요하여 왔다. 특히 ‘마음속의 군사주의’는 문화적 폭력으로서 기능하는데 생명과 고통에 대한 무시, 적에 대한 비인간화, 물리적 해결의 우선 선택, 군대 상징들에 가치부여 등으로 근대시민으로 누려야할 정치적 자유와 시민권을 수시로 제한 당하였다(서보혁, 2016: 75-6).

분단폭력은 “분단대결 구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활동” 즉 문화적 폭력을 포함한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안전/안보가 최고의 가치이며 늘 이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 주위를 경계하며 내적으로는 자기검열을 일상화한다. 상대를 타자화 하고 우리와 분리하며 배제, 소외시켜 물리적 폭력 행사를 용인하는 환경을 만든다. 교육, 영화, 매스미디어, SNS등 각종 문화적 기제를 통해 확산된다(윗글, 41). 문화폭력들 중 “분단 이데올로기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남한과 북한의 대립과 분리를 정당화하는 신념체계”로서 대표적인 담론은 ‘빨갱이’와 ‘종북’이다. 전쟁후의 분단체제에서 이러한 호칭은 상대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군사정권은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정치적이며 시민적인 권리를 박탈하곤 하였다. 당연히 북에서도 ‘남조선 첩자’나 ‘미제 간첩’이라 낙인 받으면 사회로부터 배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남쪽에서는 종교를 통해 분단체제를 정당화 하는데 공산주의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악마화 하였다.

 

3. 종교 폭력으로서 분단신학

노정선은 “분단신학이란 1945년 ... 남과 북의 분단 상태가 영구화 된지 47년의 역사 속에서 분단을 직접, 간접으로 강화시켜주거나, 정당화시켜 온 신학”이다. 분단신학은 한반도 내에서 남과 북 뿐만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자, 지역 간 분단, 계급 간 분단, 남녀분단 등 여러 “분단 구조를 강화하고 합리화하는 신앙 구조와 신학 구조를 형성시켰으며 한반도 교회 구조를 구성시켰다”(노정선, 1994: 458-9). 교회는 1920년대 이후 일제에 의해 기독교민족주의 운동과 지도자들이 뿌리가 뽑히면서 일제의 반공정책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순응하게 된다. 특히 서북지역의 개신교인은 일제에 저항하던 지도자들이 제거되고 종교적 진공상태에서 일제에 순응하는 것이 진보적인 것이라는 ‘종교적 진보성과 정치적 어용성의 결합’이라는 기형적인 모습이 지배적이 된다(강인철, 1995: 345). 1930년대 초반에는 일제의 반공정책에 따라 반공주의를 교리적인 수준으로 만들었으며, ‘반일주의=극단적인 종교적 보수주의,’그리고 ’친일주의=종교적 진보주의’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반공은 친일과 동의어가 되었다(윗글, 347). 이러한 천주교와 개신교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후 분단체제에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북이 공산화가 되고 기독교를 탄압하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북의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신분이나 사상적 성향이 더 컸었다(서정민, 1995: 406).

필자는 분단의 첫 번째 시기인 1947년 두 번째 시기인 미국 주도 유엔에 의한 남한 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발생한 1948년 4-9월까지 발생한 제주4.3 항쟁을 주목한다. 앞에서 분단폭력에서 언급하였지만 월남한 기독교청년들이 주축이 된 서북청년단의 참여하에 군경이 진압한 사건은 이후 전개될 분단체제하 국가의 반공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북의 악마화와 분단을 선과 악의 우주적 전쟁(cosmic war)으로 신학화하는 ‘종교적 폭력’(religious violence)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러한 공산주의를 악마화한 분단신학의 종교적 폭력은 남한의 교회에서 남북협상론자인 김규식을 용공으로 몰아 붙였고, 한국전쟁 중에는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관계 맺은 교파나 단체들 또한 용공으로 매도하기에 이른다(이덕주 1990: 163-164). 1945년 미군정은 행정고문 11명중 3명을 목사로 임명하였으며(김흥수, 1995:427) 기독교계는 미군정이 원하는 냉전체제와 분단체제하 반공주의의 첨병이 되어갔다. 평북지역에서 월남한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가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가 되기 위해 공산주의를 박멸해야 할 “묵시록에 잇는 붉은 용”으로 묘사하며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성서 속 천상의 전쟁, 종말론적 우주적 전쟁으로 해석하였다(김흥수, 1994: 426). 일상속의 거짓말, 도둑질, 테러 등 생활의 죄도 공산주의의 악영향으로 생긴 것이라고 설교하였다(윗글, 427). 모든 게 북한 탓이 되었다. 상대를 나와 분리하고 사탄화하는 종교폭력이다. 좌우익의 대립 속에서 남쪽의 기독교인들은 분단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분단폭력의 덫이라는 악순환에 깊이 빠지고 말았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한반도 분단체제에서 생겨난 분단폭력은 모두에게 전염되어갔다.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적으로 규정된 타자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구분하여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종교는 세속 폭력보다 더 폭력적이었다. 종교인에 의한 폭력은 너무도 잔인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는 탄식이 나올수 밖에 없었다(최태육, 2018). 분단폭력과 분단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거리를 활보 하고 있다. 이제 오늘 한국사회와 종교를 되짚어 보아야할 지점에 왔다. 종교사회학과 정치학에서 논의되는 종교, 폭력, 그리고 근대국가의 폭력성을 논하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해방의 철학을 제시하겠다.

 

4. 종교 폭력(Religious Violence)과 종교의 미래

최근 북미 종교사회학계는 ‘강한 종교’(Strong Religion) 담론이 유행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사회현상중 하나는 정치와 경제 같은 종교로부터 분화된 공적영역에 종교가 다시 주요 행위자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적영역에서 종교의 등장은 종교의 쇠퇴와 사사화를 예견하였던 세속화론에 심대한 도전이었다. 이때 종속변수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 변수이자 사회적 행위의 동기로서 ‘실재’하는 종교 그 자체를 강조하는 이른바 ‘강한 종교’개념이 등장하였다(김성건, 2013, 2015). 저겐스마이어는 ‘종교적 폭력’이론을 통해 특히 종교가 갈등과 과격한 폭력에 영감을 주고 그런 행위에 권위를 부여한다고 보았다. 종교적 폭력은 이 세상 너머의 목표를 지시하며 의도적으로 강하고 선명하게 야만적으로 연극적이며 상징적인 종교의례로서의 폭력을 시연한다. 종교폭력은 세속폭력과 달리 타협이 없고 폭력사용의 목적도 실용적이지 않다. 이 싸움은 전설 속 오래전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수백 년을 싸워야 하는 선과 악의 우주적 전쟁이 된다. 물질적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이 걸려 있기에 전투에 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전쟁의 전사는 예배자이고 악마적인 적은 개선이 불가능하기에 파괴하고 사라져야할 대상일 뿐이다(Juergensmeyer, 2003). .

종교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며 갈등의 상황 속에서 너무 쉽게 폭력으로 기울기에 근대 공적 영역으로부터 제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정교분리위에서 세워진 세속화된 근대 서구의 국가와 시민이다. 어거스틴과 루터를 이어서 내려오는 하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의 분리는 서구 정치사와 종교의 오래된 질문에 속한다. 윌리암 캐버너는 종교와 정치를 대비시키는 것을 거부하며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한다. 즉 종교와 세속을 대척지점에 놓는 학문적 기획이 궁극적으로 종교와 세속을 분리시키기 어려운 비서구 특히 이슬람권 사회들을 비합리적 종교와 사회로 규정하고자 하는 신식민지 기획이자 서구의 신화라고 평가한다. 아랍세계를 종교적이고 비합리적이며 폭력적이라고 규정한 후 아랍세계를 향한 이러한 학문적 기획을 정치적으로 이용 한다. 캐버너에 의하면 종교와 정치는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다. 오히려 현대국가가 정교분리가 되기 전 부족공동체 보다 더 종교적이지 않은가? 국가를 위해 충성을 강조하고 국가를 위해 죽은 자를 숭배하는 것은 그것이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하여도 민주적 현대 국가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아니 그것이 신성한 절대왕정의 몰락 후에도 모든 근대국가가 간직하고 있는 종교적 본질의 모습이다. 뒤르케임이 말했듯이 자아사랑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자아보다 더 큰 사회와 국가를 위해 살라고 요청하는 오늘날의 국가공동체를 종교적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근대국가는 너무 종교적이었다(Cavanaugh, 2009). 근대초기부터 서구제국주의의 팽창 때 식민지 확보에 매진하면서 국가의 폭력을 합리적인 것으로 은폐하기 위한 신화라고 마빈은 지적하면서 종교가 자신의 집단을 위하여 희생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라고 한다면 근대민족국가는 종교적 공동체라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은 국가를 위해 죽을 강한 의지 같은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나 지라르처럼, 마빈은 희생을 종교적 의례의 중심으로 본다. 뒤르케임처럼 국가공동체를 종교적 헌신의 본질적 실체로서 본다. 실제 조사에 의하면 미국 시민들은 신앙 보다 국가를 위해 좀 더 죽을 의지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시민종교의 폭력적 성격은 국가적 희생 제의인 전몰장병기념일 행사와 대통령선거라는 국가적 풍요축제에서 잘 드러난다. 이 둘은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의식 형성에 있어 중심적인 행사인데 의례의 역할인 집단을 통일하고 집단의 기억이 국가 의례를 통해 국가의 자기의식이 재생산된다(Marvin, 1999).

정리해 보면 종교가 비합리적이고 폭력으로 기울기에 근대정치는 종교를 배제해야 개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현대정치철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근대국가는 너무도 폭력적이었다. 세속화이론이 정치로부터 종교를 분리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근대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철학의 권력배열(국가 아래 종교라는 Erastianism)을 정당화하고 국가의 종교성과 폭력성을 은폐하기 위한 학문적 기획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가에 대한 공적 충성과 신에 대한 사적 충성을 분리하면서 ‘합리적 세속’과 ‘종교적 폭력’을 나누고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의 종교와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반도 분단체제하에서 분단폭력의 기제로 사용되었던 분단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분단신학 자체가 독립적으로 폭력적인 특성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분단국가 형성과 유지를 위해 국가에 의해 분단신학을 표방한 한국기독교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소비되었다고 본다. 물론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중후반부터 자신을 변모 시켰고 그것을 충실히 수행할 ‘세속 정권 친화적’ 종교지도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분단체제의 유지,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였다. 그러면 기독교는 세속정권에 근본적으로 종속적인가? 로버트 벨라는 기독교를 기축종교(Axial Age religion)라 정의내리면서 이전 부족종교나 고대왕국의 종교들과 달리 세속적 행복이나 권력소유를 넘어 종교를 고양시켜 그런 욕망을 돌파해 나가는 자기 성찰적 종교라 분석하였다.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이념을 창조해 내고 세속국가들의 잔인함과 불평등한 구조들에 대항해 신앙의 윤리화(사회윤리)를 만들어낸 기독교는 기축시대에 등장한 진화된 종교다. 이것은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내적 능력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이러한 인간의 종교적 능력이 인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Bellah, 2011). 인간은 자유를 향하여 끊임없이 믿음의 발명품들을 내어 놓았다.

르네 지라르가 인간이 모방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타자의 욕망을 소망함으로 그 둘은 독특성을 잃은 '작패‘(double)가 되어 무한 경쟁을 시작하고 이것이 사회로 확대되어 전면적 파괴에 직면하여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 내고 그 죄 없는 자를 죽여 사회의 폭력의 파괴적 에너지를 상쇄하여 왔다는 이론은 일견 맞지만 그것만 가지고 인간의 욕망 그중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 의지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프로이트도 후기에 문명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무로 돌아가고픈 ’죽음의 욕망‘으로 향하는 문명의 타나토스적(Thanatos) 특성에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형제애적 연대'(libidinal bond)였다(프로이트, 2014). 새로운 관계로 자신의 완성을 갈구하는 이 에로스의 집단적인 긍정적 기능을 복원할 수는 없을까? 분단체제로 형제와 자매가 나뉘어져 80여년을 서로 하나가 되길 갈망하면서도 미워하고 죽여 버리고 싶은 작패가 되어 살아온 한국인에게 평화와 통일 앞에서 집단적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전쟁으로 끝내버리고 싶은 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죽음의 욕망으로 우리가 쌓아온 문명의 노력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냉전체제의 마지막 분단의 땅 한반도의 구원의 가능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5. 해방의 사회과학

자신을 기독교 마르크스주의자라 명명한 베네주엘라 출신의 오토 마두로에게 있어 종교는 소통과 갈등의 사회적 장이며 사회 변혁의 매개체로서 기능을 한다. 하여 종교는 변혁적 운동을 방해하거나 새로운 세계관을 통해 사회의 변혁적 운동들을 추동시킬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지배체제는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종교적 생산수단을 탈취하여 피억압계급의 세계관 생산능력을 제거하고 그들을 비도덕화 시킨다. 마두로에게 깊은 영향을 준 안토니오 그람시는 지배계급은 대중적 동의가 필요하고 지배 이념을 생산하기 위해 학교와 종교를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지점으로 활용한다고 보았다. 삐에르 브루디외는 문화의 상대적 자율성과 문화가 사회계급들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분단체제 하에서 기독교 분단신학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분단폭력의 상징적 기제로서 소비되었다. 마두로는 여기에 포섭되지 않은 유기적 지식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종교적인 새로운 언어와 신학의 창조를 통해 잃어버린 종교적 생산 수단을 다시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해 비성화(desacralize)된 것을 다시 성화(sacralize)하여 다른 출구가 없는 사회에서 사회변혁의 새로운 통로(channel)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마두로, 1988). 다시 벨라의 진화된 기독교와 진보적 종교엘리트들이 분단체제로 막힌 분단선을 돌파할 도약의 능력에 기대해 본다.

이것은 단순히 인식론적 차원의 관념적 소망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사회과학철학자 로이 바스카가 밝혀낸 인간과 사회의 실재하는 인과적 능력에 대한 기대이다. 욕구와 의지가 존재하고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목적적 행위가 발생한다. 바로 우리의 정신성은 이러한 목적적이며 의도적인 행위에 타당한 이유를 제공함으로 인과적인 효력을 행위를 통해 행사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 필연성에 따른 실재하는 내적인 작동 메커니즘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의 방향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주체는 사회구조 속에서 위치해 있기에 사회가 행위 주체의 바램에 모순적인 때로는 허위적인 것을 요구하고 부과하기도 한다. 의도와 목적을 가진 즉 이념을 가진 인간 행위의 주체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이다. 이러한 인간의 믿음에 대해 허위나 오류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목표를 성취하고 결핍을 충족하는 것을 훼방하는 것일 뿐이다. 한반도 분단체계는 체계의 모순과 불평등을 은폐할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욕망에 대한 인식을 봉쇄하고 원자화된 '분단적 개인'만을 지각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오도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욕망과 믿음의 근거를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위인가? 이제는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통일을 향한 형제애적 욕망, 하나가 다시 될 수 있다는 믿음, 자유를 향한 전세계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의 목적과 의지를 꺾어 버리고 그릇된 믿음을 여전히 만들어 내고 있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스카는 사회과학은 비판적일 수밖에 없고 가치지향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믿음이 오류라고 자각하게 되면, 여태까지 그 믿음에 따라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 믿음에 기초한 행위들을 변경할 적절한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구조와 제도를 변경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이게 된다. 그릇된 믿음의 허위나 오류를 논증하고 그것의 발생과 지속의 필연성을 인과적으로 해명하는 사회과학의 설명은 그래서 비판적인 것이다. 여기서 도덕적이고 정치적 판단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올바른 입장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나 제도의 존속이 오류에 근거한 믿음에 의지해 있다면 이제 비판은 전복(顚覆)을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은 비중립적이며 필연적으로 비판적이고 물론 자기비판적이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가치를 표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개념적 비판은 사회비판과 변동을 동반한다. 설명하고, 비판하여, 변동하여 전복한다. 전복은 자동이다. 현실 속에 잠재한 해방을 향한 충동은 우리를 해방으로 이끈다. 우리 한민족은 이제 분단체제와 분단폭력으로 인한 일상적 전쟁의 불안과 학살의 공포에서 벗어나 민족적 행복을 욕망한다. 분단체제를 해체하여 폭력의 가해자와 희생자가 아니라(부정의 부정) 자유의 맥박에 따라 한국인의 본성에 맞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이루게 될 것이다.

 

III.결 론: 신학적 도약

평화-통일체제로의 이행은 2017년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새 체제를 이끌 평화-통일 신학은 아직 확연히 나타나고 있지 않다. 1980년대부터 일군의 신학자들이 많은 학문적 노력을 하였다. 특히 박순경의 변증법적 관계의 통일신학은 탁월하다(박순경, 1992; 신혜진, 2018). 자기 성찰적이며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북의 사상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것에 보편성을 부여한 것은 이미 우리 사회 안에 내재 되어 있는 통일된 한반도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표현이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 사상의 검열을 하고 있는 분단체제 속에서 신학적 도약의 돌파를 보여 주고 있다. 분단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은가? 통일을 하고 싶은가? 그러면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라. 어느새 너와 나의 차이는 소멸되고 내 안에 네가 있었음을 그리고 너로 인해 내가 새로워진 나로 도약 할 수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너 또한 나로 인해 바뀌어 가고 있음을 함께 알게 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자유와 상호연대로 서로 의존하는 유적존재로서 인간의 본래적 동학을 박순경은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북과의 대화는 넘어야할 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선군사상으로 군사주의를 추구하며 다른 한편 ‘대가족주의’의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선군의 폭력(민보다 군우선)은 가족의 희생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군사주의로 인해 가족은 도덕적 호혜관계 속에서 유지 강화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는 참혹한 고난의 행군과 대기근과 가족의 아사였다. 가장은 가족에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복지와 안녕을 보장해야 한다. 빨치산 유격대 국가는 실재할 수 없는 오류이자 허구이다. 국가와 카리스마적 공동체로서 항일 유격대는 정치체계의 지속성에 대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갈등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인민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만개시키기 위해 다시 그들은 선군의 군사주의에서 인민의 품으로 돌아가 인민들의 욕망과 의지에 의지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한반도 분단체제에서 남과 북의 분단시스템이 거울효과로 연동되어 있으면서도 다르게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즉 북에서는 남과는 다른 인과의 동학에 따라 욕망과 믿음이 그들의 행동의 이유를 다르게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행동하는지 탐구해야 한다. 남은 경제적 욕망이지만 북은 정치적 열망이 인과적 힘의 작인이다(권헌익, 정병호, 2013).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 속에서 여전히 구시대를 지탱하여 준 이데올로기는 강고하게 저항을 하고 있다. 새로운 해방의 철학이 요청된다. 어떤 믿음이 사회 변혁의 담지자들의 이념이 될지는 우리 사회 전체구성원들의 새 체제를 향한 열망과 구성적 능력에 달려있다. 사회변혁은 의식화된 사람들이 조직화 되어 폭넓은 대중이 담지자가 될 때 가능한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사회에 대한 변증법적 성찰과 실천의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통일을 바라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주와 자유를 향한 강한 열망이라면 곧 이루어질 것이다.

 

<도움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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