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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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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11일 (토) 21:24:26 [조회수 :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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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9-13절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가.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13절b,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본문은 예수님이 세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말씀이다.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12절)라고 하셨고, 이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부르시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세리와 죄인은 같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이나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당시에 보편적인 생각이었는데 예수님이 과감히 깨뜨리셨다.

* 하나님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고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고,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창3장). 주님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에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요한15장). 즉 죄는 미워하나 죄인은 사랑하신다.

 

나. 성도의 성별이 차별은 아니다.

11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 바리새인들은 성별을 강조하던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은 히브리어 ‘파라쉬’(구분하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구분된 삶을 살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교만하여져서 보통 사람들을 정죄하고 차별한 것이 문제였다.

*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이지 그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 성도들은 죄인들의 삶의 양식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배척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성별과 차별은 다른 문제다.

* 기독교는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다. 그러므로 진리가 아닌 것은 분명히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포용 또한 중요하다. 즉 죄는 철저하게 배제하되 사람은 너그럽게 포용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는 죄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죄인에 대한 너그러운 포용의 상징이다.

 

다. 하나님의 측은지심을 배우라.

13a,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 예수님은 자신의 친절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호6:6)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배우라고 하셨다. 여기서 ‘인애’(헤세드)는 ‘열심’ 또는 ‘은총’을 뜻한다. 이는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와 열심’을 가리킨다. 그리고 ‘긍휼’(엘레오스)도 ‘자비’ 또는 ‘연민’을 뜻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신 자비’를 가리킨다.

* 제사는 자신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애와 긍휼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구원을 위한 제사도 중요하다. 제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위한 제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죄인을 불러 구원하려는 측은지심과 열심이 있어야 한다.

* 예수님은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만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마12:32). 인자를 거역하는 것은 개인구원의 문제지만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역을 훼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측은지심과 열심을 배워야 한다.

 

라. 측은지심이 감동을 일으킨다.

9절,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 예수님이 마태를 긍휼이 여기시고 불러주심으로 그를 감동시켰다. 마태가 과감하게 과거의 삶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 것은 기적적인 사건이다. 주님의 측은지심이 기적을 만들었다. 바리새인들의 차별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포용이 이룬 놀라운 사건이었다.

* 정죄보다 포용이 더 힘이 크다. 예수님이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 끌려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8:11)고 하신 말씀은 매우 유명하다. 예수님은 죄는 배척하면서도 죄인은 포용하셨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포용으로 구원받았다고 믿는다.

* 우리 주위에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악한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을 정죄하고 배척할 수만은 없다. 정죄하고 배척한다고 해서 그들이 구주를 영접하지 않는다. 죄는 배척하되 그들을 측은히 여기고 포용하는 것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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