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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리교 인터넷 신문에서 발견한 두 개의 키워드
이정배  |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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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2월 12일 (목) 10:31:48
최종편집 : 2019년 12월 13일 (금) 08:10:55 [조회수 : 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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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리교 인터넷 신문에서 발견한 두 개의 키워드

-신학자 E.트뢸치와 ‘종교와 과학의 대화’- 

 

지인이 전해준 KMC뉴스 기사를 통해 위 두 단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쁘게 읽었으나 부족한 점이 있어 몇 가지 의견을 보완해야겠습니다. 상세한 이유는 거두절미하고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돕는 차원에서 제가 알고 이해하는 바를 짧게 적어 봅니다.

E. 트뢸치는 19세기 말기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큰 신학자입니다. 신학을 비롯하여 철학 그리고 법학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한 석학이지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독일 교육부를 이끌었던 정치(실천)가이기도 했습니다. 칼 바르트의 ‘변증법적(구속사) 신학’과 갈등한 적도 있었으나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P. 틸리히의 ‘종교사 신학’과 W. 판넨베르크의 ‘보편사 신학’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 활동하는 미국 신학자 P. 니터의 <<오직 예수이름으로만?>>이란 책도 트뢸치 신학의 배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조직신학 영역에서 트뢸치의 영향력은 애시당초 ‘신학 함에 있어 도그마적 방법인가, 아니면 역사적 방법인가?’라는 논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종래의 도그마적 방식 대신에 역사학적 입장을 선호했습니다. 그에게 신학은 별개(별종)의 학문이 아니라 당대 강단을 지배했던 역사(윤리)학을 통해서 그 절대성을 입증 받아야 할 학문이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나온 저서가 <<기독교의 절대성>>인바, 기독론의 새 지평을 열은 책으로 평가 받습니다. 이후 트뢸치는 <<신론(Gotteslehre)>>을 집필했고 이어 <<신앙론(Glaubenslehre)>>을 썼습니다. 후자의 책은 구원론과 관계된 주제를 다뤘습니다. 이런 틀에서 그의 교회론은 세상과 고립된 섹트 형을 지양하고 개방된 사회이론과의 연계 속에서 재구성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트퇼치는 ‘문화통합’이란 이름하에 목하 진행 중인 ‘유럽통합 이념’을 기초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지금도 독일 신학계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지요. 이런 정치, 사회적 영향력은 그의 신학이 보편사 및 종교사 신학으로 구현, 확장 된 것 이상으로 높게 평가받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유럽피안 드림으로 대치되는 현실에서 트퇼치는 교회 안팎에서 여전히 중요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에서 트뢸치 신학과 그의 영향사(史)를 결코 홀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는 신학 함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본래 조직신학(교의학)은 시원부터 변증학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성서학과는 달리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독교를 어찌 증거 할 수 있는 지를 논하는 학문입니다. 영미는 물론 독일 신학계에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별도의 학문 분야가 될 만큼 왕성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주제를 순수 이론적으로만 연구, 발전시키는

학문 분야(과학 신학)도 있습니다만 대개 신학자들은 과학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목적에서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예컨대 빅뱅이론을 비롯하여 진화론, 유전학, 장(場)이론 그리고 최근 유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가 말하듯 ‘포스트 휴먼’에 대한 배움을 통해 신학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수용정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신학적 입장이 달라지겠으나 기본적으로 달라진 과학이 신학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난 신학자가 되었으나 J. 몰트만의 저서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 역시 이런 배경 속에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통해 우선 전통적 창조론이 크게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창조론의 재구성은 의당 신론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신론은 기독론에, 그리고 기독론은 인간과 구원론에 영향을 미쳐 이전과는 다른 신학체계를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두는 과학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되 성서가 말하는 기독교 진리를 변증할 목적에서 감당할 신학적 과제입니다. 기후붕괴라는 생태적 위기에 직면하여 기독교적 답을 낼 수도 잇겟습니다. 이런 신학적 작업은 교회현실에 직접적으로(당장) 효용가치가 없을 수 있겠으나 미래의 기독교를 위해 요청되는 과제입니다. 교인감소를 걱정한다면 그만큼 더 미래세대를 위한 기독교 신앙을 준비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란 성공회 신학자인 스퐁 감독의 책자도 읽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모두는 감리교 신학전통에 속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J, 웨슬리 신학 속에 너무도 좋은 것이 많이 내재된 탓입니다. 하지만 그의 신학을 교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웨슬리 자신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인간 자유를 말살하는 예정론 신봉자와는 함께 일하기를 힘겨워 했습니다. 웨슬리가 훌륭한 것은 그가 동서방의 기독교 전통을 합류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을 크게 확장시켜 준(낸) 것이지요. 그로인해 감리교는 온갖 다양한 기독교 전통을 품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웨슬리는 루터 전통과 경건주의 사조를 합류시켜 인간의 완성을 ‘칭의’에서 찾지 않고 ‘성화’로 보았습니다. 살아생전 인간이 거듭날(거룩할) 수 있다고 확실히 믿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화’를 강조한 웨슬리 사상에 합당한 삶을 일궈 것이 우리들 책무입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전자의 은총론과 후자의 자유의지를 함께 강조한 웨슬리의 혜안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많이 벌어, 저축하고 나눌 것을 말했던 웨슬리, 그는 자본주의를 인정하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혁명가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놓치고 감리교 신학을 말하는 것은 전리(全理)가 아닐 것입니다. 교회현실을 존중해야겠으나 그것이 우리가 맞출 잣대이자 표준은 결코 아니겠지요. 감리교 신학은 교회를 감리교적으로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감리교 신학 속에 내포된 이런 정신입니다. 이런 대승적 에토스 없이 감리교 신학을 ‘교리’로 여기며 내세우는 것은 정작 웨슬리를 배반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대륙 아닌 영국에서 태동되었기에 감리교는 연역적 사실보다 경험적 진리에 익숙합니다. 더 많이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과 학문을 배우면서 진리를 경험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자체가 감리교적입니다. 이점에서 옛 스승 변선환은 대화 신학자 임에도 자신을 ‘감리교주의자’라 했고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여전히 그 정신을 따르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살며 글을 쓸 것입니다. 이제 눈앞에 있는2020년 한국 전쟁 70년의 해에 세계 감리교 대회가 한국에서 열린 답니다. 이 땅의 통일을 위한 세미나가 열릴 것인 바, 그 준비 작업에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리교적 방식으로 통일신학을 어찌 구상할지 고민 중입니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2020년을 잘 맞이하십시다. 21세기 남은 시간을 감리교 정신으로 채워 세상을 달리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감리교가 사라지는 것보다 감리교 정신의 실종을 더욱 염려했던 웨슬리는 정말 자랑할 만한 신학자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감리교 선후배들께 성탄과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2019년 12월 12일 대강절 아침에

이정배 교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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