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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지남’(福音指南)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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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1월 03일 (일) 00:40:26
최종편집 : 2019년 11월 03일 (일) 13:04:46 [조회수 : 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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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중국에 다녀온 기억이 새롭다. 점점 진지하게 신학하기 힘든 한국교회의 풍토를 생각하면 절로 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생각하게 된다. 산둥성 칭다오(청도)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내가 경험한 청도는 40Km에 펼쳐져 있는 유명한 해변이 중심이었다. 이곳이 널리 세간에 알려진 까닭은 1896년 독일인들이 이 지역을 식민화할 의도로 조차(租借)했던 역사 때문이다.

  청도는 중국 4대 항구도시로 2008년 중국 북경올림픽 때 이곳에서 조정경기가 열렸다. 유려한 해변과 고즈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유럽식 붉은 지붕들 그리고 반듯한 정원을 갖춘 집들은 마치 문화유산처럼 보존되어 있었다. 청도 중앙역에서 이어진 옛 시가의 미카엘 성당과 개신교회 등 옛 흔적은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이다.

  해변이든, 시내의 교회든 역사현장에는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들이 수 십 쌍씩 몰려들어 야외촬영을 하고 있었다. 대개 서양식 신부드레스와 신랑다운 연미복을 차려 입었다. 중국이 아닌 중국 밖에서 온 전래상품은 관광청도의 역설을 보여준다.

  서양문명과 함께 들어온 그리스도교 역시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들었다. 16세기 말,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는 북경에 정착하여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중국어로 번역하였고, 유교문화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전례(典禮)에 관한 논란을 일으켰으나, 그가 지은 <천주실의>는 조선 전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초 로버트 모리슨와 이후 허드슨 테일러 등 개신교 선교의 개척자들도 중국을 향해 끊임없이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돌아보면 마치 물 위에 뿌린 씨앗과 같았다.

  사실 맨 처음 발자국을 남긴 전도자들은 주후 635년 장안(서안)에 도착한 20여 명의 시리아인이다. 그 장본인들은 주후 431년 에베소공의회에서 축출된 이들을 따르던 일부로 시리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다가 페르시아에서 실크 로드를 거쳐 당나라로 들어온 것이다. 당 태종은 멀리 옛 로마제국에서 찾아온 서양인들을 환영하였고, 종교 포용정책을 폈다. 땅을 제공하여 예배당을 짓게 하고, 사제들이 거주하도록 배려하였는데 그때 세워진 교회가 대진사(大秦寺)이다. 로마절이란 뜻이다. 200년 동안 자유롭게 전파되어 나가던 당시 그리스도교를 경교(景敎)라고 부른다.

  현재 중국의 그리스도인은 기관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통계에도 불구하고 대략 9천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셈법이 복잡한 이유는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공인교회인 삼자(三自)애국운동부터 지하교회 성격인 가정교회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교회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덕기금회는 공식적으로 성경을 번역, 출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교회는 여전히 박해받는 교회라는 인식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청도 시내에서 버젓이 십자가를 단 교회 건물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시내에 단 한 곳 있다는 기독교서점을 방문하였다. 이름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였는데, 간판에 푸른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내 관심사는 한자성구가 새겨진 십자가를 구하려는 것이었지만, 덤으로 서가에 진열된 책을 통해 중국교회 출판현실을 부분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중국어로 된 성경의 종류와 기독교 출판물은 아주 부족하였다. 서점 주인은 이내 방문객의 관심사를 이해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주기도 했는데, 의외로 중국어 찬양이 활발히 보급되고 있었으며, 사이버 상으로 읽을 만한 성경도 있었다.

  현지 선교사는 화교들이 세계적으로 확장된 만큼 앞으로 화교들이 주도하는 한자권 선교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놀라운 것은 중국 당국이 이러한 사이트를 차단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기대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중국 내부에서 만든 자료들의 흐름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물론 여행자의 귓가에 스친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어서, 오류가 많을 것이다.
 
  돌아오는 날 아침, 호텔 로비에 꽂힌 잡지 한권이 눈에 띄었다. 이름이 ‘청도지남’(指南)이었다. ‘지남’이 무슨 뜻일까 살펴보았더니, 기대와 달리 단순한 ‘Guide’란 뜻이었다. 신학생 시절에 학교 도서관에서 ‘신학지남’이란 월간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남’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실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남’은 지남철, 곧 나침반이란 의미이다. 한마디로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오늘 중국의 교회와 선교사의 사역을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보면서 다시 한국교회가 처한 형편을 생각해 본다. ‘복음지남’(福音指南),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복음은 그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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